도덕의 쓸모라. 여러분은 도덕과 쓸모의 조합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 도덕에 감히 쓸모라는 단어를 들이대냐며 역정을 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도덕의 숭고한 가치를 믿는 사람들에게 쓸모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도구적 느낌이 짙어서 별로일 겁니다. 쓸모가 없어진 물건을 굳이 억지로 보존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조금의 가치도 남아 있지 않은 물건이라면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입니다. 보관하기보다는 쓰레기장으로 보내는 게 맞을 겁니다. 물건은 아니지만 여태껏 도덕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삶에 쓸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많고 많은 것 중에 도덕의 쓸모냐고요? 확실히 쓸모는 있는데 그 활용도는 매우 저조한 까닭입니다. 만약, 활용도가 떨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경향이라면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도덕을 굳이 부여잡을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정말로 쓸모가 없어져 폐기 처분하는 거라면 그리 문제가 될 거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도덕이 우리 사회에 강력하게 요구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애써 외면하거나 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그 존재의 필요성에 대해서 인정하는 사람조차 도덕을 잘못 이해하고 있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사회가 급변하고 미래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사람들의 불안이 증대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할 수 있을지 염려하지만, 근본적인 불안은 해소하지 못한 채 생존 투쟁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합니다. 도덕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물질적 쾌락과 돈이 지배하는 사회 풍토에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이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그저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때때로 경제적 합리성에 묻힌 도덕은 고리타분한 과거 조상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도덕의 권위는 추락했고, 심지어 도덕을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 비아냥거리며 꼰대로 치부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상황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마치 도덕이 자신의 생존에 방해가 되는 성가신 존재쯤으로 여기는 거 같습니다. 잘 살기 위해 자기 삶에 열중할수록 도덕과는 거리가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떤 이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내 행복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뭐 그렇게 잘못일 수 있느냐며 자기합리화합니다. 눈앞에 행복이 선명하게 보일 때까지 자신을 불편하고 피곤하게 만드는 도덕을 잠시 마음 깊숙한 구석 어딘가에 처박아 놓고 문을 걸어 잠급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도덕의 상실입니다. 마치 문이 잠긴 상태로 열쇠를 잃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다가 도덕이 멸종되는 건 아니겠지요? 우리 사회가 무한경쟁 속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앞만 보며 내달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정의 실현은 물론이거니와 반목과 갈등이 팽배해질 것입니다. 불안정한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행복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더욱이, 타인과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한 개인은 자신을 지탱하는 삶의 의미마저 상실한 채 공동체 밖에 표류하게 됩니다.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도덕성을 찾으려 하지만 쉽지 않을뿐더러, 설사 도덕성을 회복한다 해도 이미 망가진 관계망을 복원하기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입니다.
우리는 종종 쓸모없다고 판단하고 버린 물건이 한참 뒤에 다시 필요해져서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도덕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일찌감치 도덕을 내팽개치고 살아가다가 자신의 도덕성 결여가 원인이 되어 일을 그르치게 되고 망연자실하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값비싼 물건이 아닌 다음에야 다시 구매하면 그만이지만 도덕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도덕이 인간에게 온전한 성품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인고의 세월이 필요합니다.
수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겹겹이 쌓인 도덕성, 타자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서 빨리! 우리는 ‘다시’ 도덕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꺼져가는 도덕의 불씨를 살려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복원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도덕을 공부하는 학자라면 마땅히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문득, 학자로서의 쓰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도덕의 쓸모에 대해 설파해야 하는 절실한 사회상이 저로 하여금 ‘도덕의 쓸모’라는 책 집필에 착수하도록 이끈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의 쓸모에 관하여 이야기한다는 것은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가 그것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곱씹어 보는 시간을 갖게 만듭니다. 흔히,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합니다. 도덕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무턱대고 뭇사람들에게 도덕을 요구한다면, 자칫 그들에게 지금까지 삶의 여정에 대한 비난과 도덕에 대한 강요로 비춰질 수 있어서 오히려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
습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도덕의 본래 의미가 무엇이고, 도덕이 우리 삶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지 차근차근 친절하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이 책에서는 여러 지식인의 논의를 중심으로 도덕을 조명하고, 도덕적 삶에 관하여 탐구합니다. 논의할 학자 선정에 있어서는 일차적으로 우리나라의 도덕과 교육과정 총론에 소개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적어도 이들의 사상은 국내의 윤리학 및 도덕교육학 전문가 집단이 교육과정 개정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검증해 왔고, 중요성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 합의가 된 내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필자가 도덕에 관한 탐구에 있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판단한 레비나스와 니체의 사상을 추가하였습니다. 공화주의적 전통에 근거하여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시민적 덕성을 논의한 마이클 샌델도 그 일환입니다. 총 13개 장에 걸쳐 소개되고 있는 지식인들이 살던 당시에도 도덕은 늘 위태로웠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았고 도덕에 접근하는 방식도 제각각이었지만, 도덕의 쓸모에 대해서만큼은 시공을 초월하여 공감하는 바가 컸습니다. 도덕의 회생을 위해 전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독자들의 마음에서 도덕을 꺼내주는 열쇠가 되어줄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