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퇴고적 글쓰기
나는 왜 쓰는가. 질문에 답을 구하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자발적 쓰기의 충동은 언제 어떤 계기로 처음 생겨났는지, 쓰기는 어찌하여 이처럼 은밀한 쾌락과 환희를 선사하며 그것을 지속하게 하는지, 심지어 고통스럽게 비참할지라도 오히려 그렇기에 지속을 포기하지 않게 되는지. 기원을 추적하는 일은 기억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온전히 회상할 수 없는 공백과 누락을 메꾸기 위해 상상이 발동한다. 글쓰기의 충동과 욕망이 생성한 기원의 자리에 되찾아 맞출 수 없는 사건들의 사실성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소환된 인상, 정념, 감각의 모서리 어긋나는 단편들이 수집된다. 기원과 생성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그것은 하나의 신화로 덩어리진다. 그리고 모든 신화가 그렇듯 언제든 번복되며 새로 쓰일 것이다. 무한히 퇴고될 것이다. 『연인을 위한 퇴고』는 무한한 퇴고의 감각으로 기원을 향해 간다.
■ 현실 법칙의 제약을 받지 않는 환상적 서사
『연인을 위한 퇴고』에서 나무, 괴물, 늙은 여인, 젊은 여인, 소녀, 유령처럼 개별자로 한정할 수 없는 존재들은 아무런 현실 법칙의 제약을 받지 않는 환상적 서사의 장에 출몰한다. 이들은 한 장소에 못 박혀 그곳의 역사적 부침과 자기의 생애를 동일시하기보다 꿈속의 우화 같은 공원, 묘지, 예배당, 성, 동굴을 헤매는 편을 택한다. 고유명과 특정성 없는 이들은 일인칭의 자리를 자유롭게 점유했다가 다른 존재에게 넘겨주면서, 결과적으로,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인, 거듭되는 변신에 피아의 변별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융합의 상태를 지향한다. 분화 이전 태초의 생성을 더듬어 가는 작용이 궁극에 이르면 목소리의 연원은 말하는 나무든 괴물이든 아니면 어떤 연령의 여성이든 인격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껍데기를 완전히 떨쳐버린다. 오로지 이야기가 목소리의 주인으로 스스로 이야기하는 지점에 근접하는 것이다. 『연인을 위한 퇴고』는 이 이야기의 순수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퇴고를 멈추지 않을 것처럼 나아간다.
■ 시간과 공간을 물크러지게 하는 아름다운 표현
자유자재로 이루어지는 변신, 현실의 법칙들에 구애받지 않는 서사는 읽는 이를 낯선 감각 속에 헤매도록 한다. 그 헤맴은 모험의 길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혼란과 지체의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영건 소설에서 독자들은 그 같은 방황에 붙들릴 염려가 없다. 미로 같은 소설이지만, 앞길을 막고 있는 곳에서 만나는 벽으로서의 문장이 하나하나 다 훌륭한 건축물처럼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뚫고 지나가기보다는 그 앞에 서서 잠자코 기다리게 되는 문장들. 독자들을 그 침묵의 순간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자신을 더 걸어갈 수 없게 하는 기억의 벽이 무엇이었는지를 상기할 수 있다. 『연인을 위한 퇴고』는 ‘나’의 기원을 만나기 위한 퇴고의 길이되 그 길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새로운 미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