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원형, 접힌 질서, 무, 혼돈으로도 명명되는 자연은 경계에 산다. 경계에서 감응이 일어나고, 감응이 일어나야 생성이 가능하다. 감응하기 위해서는 존재의 경계로 나아가야 한다. 경계로서 시는 물이 언덕에 제際한 것과 같다. 천지가 명사적 자연이라면, 마음은 생성하는 힘으로서 동사적 자연을 함의한다.”(이성희, 「무의 들녘에서 만난 매화」) 이 동사적 자연의 언어와 세계, 혹은 자연과 인(간)사에 대한 이치와 흥취가 김인강의 이번 시집 『꽃이 되는 길』의 전경과 배경으로 작용한다. 시인은 농부의 다른 이름이다. 농부農夫의 ‘농農’은 ‘노래曲’와 ‘별辰’의 합성어, 즉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다. 해와 달이 만나 서로를 기리는 밤하늘의 뭇별과 새벽빛은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일인가. 그러나 그 밤과 낮 사이엔 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상처가 숨어 있는가. 노래와 현존재의 시간을 우리는 그저 그렇게 건너갈 따름이다. 자서(“화려함이 좋아 향기가 좋아 / 꽃을 심고 옆에 두고 싶었는데 / 어느 날 / 흙의 살을 만지고부터 / 나는 아주 작은 씨앗을 뿌리는 / 농부가 되었다 / 장미보다 민들레가 더 좋은 이유가 되었다”)에는 과정과 생성(~되기)의 말이 특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김인강의 시에는 아이비와 슬피꽃의 비밀이 있다. 숲의 내면과 꽃이 되는 길이 있다. 그 마음의 빛과 소리가 빚어낸 서정의 시와 세계는 오월의 장미처럼 햇살에 바로 드러나기도 하고, “아무도 모르는 꽃과 잎의 비밀스런 만남”처럼, 혹은 “깊고 깊은 속울음의 인연”처럼 에움길에서 만나기도 한다. 보이는 사물과 보이지 않는 마음 사이에 자리해 있는 그것은 빛과 소리, 색채와 향기, 가시와 비가시, 풍경과 상처, 울음과 울림, 생명과 사이가 한데 어우러져 불협의 화음을 이루고 있다. 농農의 시인 김인강이 부르는 별의 노래, 별의 마음은 이제 온전히 누리는 자의 것이다. 이번 시집은 비교적 평이한 진술과 묘사가 많이 눈에 띄지만, 그 이면에는 전경과 배후를 잇는 실재의 숨은 깊이와 정서적 감응이 있다. 가만히, 또 깊이 빠져드는 가운데 읽으면 읽을수록 주어지는 자연과 생명의 기운, 인간의 희비와 애락이 있다. 다만 밀도 있는 구성과 견고한 언어, 미의식과 모던한 서정 등은 별도의 과제로 남겨 둔다. 노을 꽃이 지고, 새벽하늘의 별이 뜨기까지 찰나가 너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