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관해觀海』는 열두 살 이전의 어린 눈[目]에 비친, 고향 바다의 실제 이야기이자, 시적 공간 속에 스며든 허구의 바다이다. 동해·남해·서해·울릉도·제주도, 그 밖의 섬을 돌며 쓴 내 사유의 창窓이다. 바다는 감각과 이미지, 운율과 반복적 리듬의 대서사시이다. 존재와 비존재, 의성擬聲과 의태擬態, 숨김과 드러냄의 방식으로 은유하는 바다는 물의 신령스런 말[言]이다. 충돌과 반동, 번짐과 점묘의 방식으로 언어를 구성하는 바다의 변주는 환상적이다. 푸른 하늘과 흐르는 바람으로 연聯 구분을 한다. 천둥과 번개의 소리, 그 메타포는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태풍과 해일로 시적 전환을 꾀한다. 바다는 물의 이동을 통해, 소낙비로 지상의 나무와 풀과 꽃의 행갈이를 한다. 이런 만물 생성 시법은, 음양오행, 춘하추동을 빌려 고저장단의 성음聲音과 율조를 만든다. 바다는 지구의 무한한 상상력의 여백이다. 의미를 지우고 무의미를 지우고, 끝내 천지의 ‘아름다운 위험’이 된다. 바다는 시간과 공간의 생멸이 지속되는 환유의 고리이자, 부분으로 전체를 드러내는 제유의 표상이다. 사물의 이치를 극대화하고, 연상과 스밈의 방식으로 관념을 무화시킨다. 악과 선을 동시적으로 정화하는 모순 어법oxymoron이다. 샘물과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원융圓融과 무애無碍의 세계가 된다. 바다는 물고기들의 원초적 이미지로 한순간도 정지하는 법이 없다. 감각적 물질이자 공감각적 이미지인 바다는, 숭고한 위로다. 걷잡을 수 없는 인간을 치유하는 유일의 명의名醫다. 바다는 고독한 철학의 공간이다. 경쟁과 속도, 굴절과 왜곡, 전쟁과 살인, 상승과 하강을 단박에 ‘수평의 시’로 사로잡는다. 바다는 언어의 구각舊殼을 버리고 언어 이전의 속살을 드러낸다. 유무를 떠나 현상과 본체를 초월한다. 하여, 바다는 밑도 끝도 없는 무명無明의 미학이 된다. 장자의 말처럼, 우리는 그저, 한 마리 즐거운 물고기가 되어, 저마다 인생의 바다에서 노닐면 된다. 지구의 위대한 작품이 인간이라면, 우주 빅뱅의 놀라운 마스터피스masterpiece(걸작)는 바다다. 하늘[天]이란 개념으로 하늘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낼 수 없듯이, 바다는 바다란 말[言]로 그 현묘한 이치를 다 담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