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에 참여하는 시민으로서의
‘좋은 삶의 방식’을 위한 『가정경제학』
가정관리 차원뿐 아니라
공적 영역에도 개입했던 ‘오이코노미아’
『가정경제학』은 ‘가정의 일에 관련된 것(oikonomokos)에 대한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으로, 가정관리의 차원뿐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일’에도 ‘오이코노미아’가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해 준다. 이는 즉 공공의 재화를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오늘날의 ‘경제학’의 영역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대의 ‘오이코노미케’(가정경제학)는 어떤 가치를 지향해서 폴리스의 통치에 참여하는 시민으로서의 ‘좋은 삶의 방식’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윤리학과 본성적으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가정’으로 번역되는 헬라스어 ‘오이코노미아’는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가정(家政)의 사전적 의미는 ‘집안을 다스리는 일, 가정생활을 처리하는 수단과 방법’이다. 가정(家庭)은 집안을 의미한다.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오이코스’(oikos)는 ‘집’을 가리키는데, oikia나 dōma, domatis(거주하는 집)와는 달리 집이나 가족뿐 아니라 그 가족이 소유한 ‘재산’의 총체를 의미했다. nomia는 법률(관습)을 가리키는 nomos, 즉 그 동사인 nemein에서 유래했으며, 그 동사는 ‘나누다, 관리하다, 경영하다, 감독하다, 세상살이를 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오이코노미아라는 말은 고대 헬라스인들에게 가장 전통적인 의미로는 ‘여성에게 맡겨지는 가정 내의 가사 관리’를 가리켰지만, 일반적으로는 남성에 의한 ‘가장’(家長)으로서의 집안 재산 관리를 의미했다. 특히 주요 재산은 도시 외곽의 농촌에 있는 영지(領地)이기 때문에 그 관리와 농업 경영이 오이코노미아의 가장 중요한 관심이자 과제였다. 이런 측면에서 오이코노미아는 주로 의식주와 육아 등 가정생활에 대처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가정학’(家庭學)과 달리 국가의 경제나 재정 논의를 포함함으로써 가정학이 아니라 ‘가정론’(家政論) 내지는 ‘가정경제’를 대상으로 삼는다고 보아야 한다.
통치 원칙을 의미하는 ‘오이코노미아’
폴리스의 본래 기능은 외적으로부터의 시민 보호였다.
많은 시민과 가족을 거느린 공동체로서의 ‘폴리스 혹은 도시국가’도 하나의 큰 집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오이코노미아’는 폴리스의 통치 원칙을 의미하게 되었다. 『가정경제학』 제1권은 크세노폰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가정관리술과 정치학이 어떻게 다른지, ‘집’에는 어떤 것이 포함되는지, 남녀의 결합과 아이 낳는 일의 의미, 노예의 일이 무엇인지와 가장의 임무, 그리고 환경적 요소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다. 두 부분으로 구성돤 제2권에는 제1권과는 전혀 다른 글이 실려 있다. 첫 부분은 왕, 총독, 국가(폴리스), 개인의 재정 경제를 구분하고 있고, 두 번째 부분은 군주, 지방의 총독(지방장관), 폴리스의 총독, 군대 지도자들이 돈을 얻기 위해 사용한 계략과 방책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권력과 부의 분배, 폴리스 공동체가 존재하는 기본적인 목적과 목표라는 측면에서 고대 헬라스 역시 오늘날에 존재하는 국가와 유사한 정치 제도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고대 헬라스에는 1500개에 달하는 폴리스가 있었다고 하며, 대부분의 폴리스에는 성인 남자가 1000여 명 정도에 불과해서 시민들 서로 간에 친숙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작았다. 폴리스가 갖는 하나의 중요한 성격은 ‘친애’라는 특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얼굴을 마주하는 사회 시민이라면 누구나 정기적으로 폴리스에 한데 모여야 하며, 민회에 참석해야 하고, 축제에 참석해야만 한다. 폴리스를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이니 요소는 ‘폴리테이아’(정치체제)다. 즉 폴리스는 단순히 지정학적 위치나 법률, 제도와 같은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폴리스는 그 구성의 공동체(연합체)이며, 그 구성원들의 활동이며, 그들의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표시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가 자연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공동의 삶이 자연적이라는 것이고,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좋은 삶, 즉 행복을 위해서 공동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고대 헬라스 폴리스의 본래 기능은 시민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지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것이 아니었다. 폴리스의 중요한 수입원은 국토의 특산물이나 거래소의 사용료, 관세이며 시민의 수입에 대한 직접적 과세나 노역의 부과에 의한 것이 아니다.
중세 이슬람 세계에도 큰 영향을 끼친 『가정경제학』
유럽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대까지 널리 읽히다!
‘오이코노미아’라는 용어는 비유적 의미에서 복잡한 구조를 잘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의미하는 데 사용된다. 시대가 진행됨에 따라 오이코노미아라는 용어는 한 도시국가의 범위를 넘어 더 일반적으로 쓰이게 된다. 오이코노미아는 우주와 자연의 원리들의 좋은 질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수사술의 경우에는 기술적 명사로 오이코노미아는 논의 부분들의 구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른 경우 오이코노미아는 실제로 폴리스에서 ‘부’를 조직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사용되며, 따라서 ‘정치 경제’라는 현대 개념에 더 가까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가정경제학』 제1권에서 눈에 띄는 독특함은 ‘가정경제학’을 ‘정치학’에서 분리한다는 점이다. 또한 부부의 의무나 역할에 대해서는 당시 관례와 달리 윤리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다. 제2권에서 기술하고 있는 네 가지 재정 분류와 수입원의 구별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인 주장이다. 또한 국가 재정에 대한 설명 부분은 현대의 political economy로 통하는 ‘폴리티케 오이코노미아’라는 개념이 문헌에 최초로 나타난 전거로도 알려져 있어, 이를 현대 ‘재정학’의 출발점으로 보는 경제학자도 있다. 제2장은 실천적 권고 사항을 활용하기 위한 군주, 속주나 도시의 지배자, 위정자, 군 지휘관들이 금전이나 재물을 획득한 책략을 모은 사례집이라 할 수 있다. 제3권에서는 남녀를 결합하는 다양한 의무에 대한 생각이 섬세하게 논의되고 있다. 유럽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오이코노미카』가 널리 읽혔는데, 그 이유는 결혼 생활에 대한 지극히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성격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높은 명성 때문이었다. 『오이코노미카』의 성공은 유럽 세계에 그치지 않았다. 그보다 앞서 중세 이슬람 세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