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 2001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곰곰』 『이별의 재구성』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깊은 일』 등의 시집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해 온 안현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미래의 하양』이 걷는사람 시인선 101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구원 없는 세계에서 삶의 비애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안현미 시인이 『깊은 일』 이후 4년 만에 49편의 시를 모아 낸 시집이다. 이전 시에서 보여 준 언어 유희, 부조리한 현실에서 벌어지는 비극, 전망 없는 미래에 도달하기 위한 시적 모험은 보다 극대화되었고, 완전한 절망과 죽음의 상태에서도 비극에 함몰되지 않으려 안간힘 쓰며 ‘하양’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미래를 보여 주려 한다. 그의 시는 박장호 시인의 말처럼 “들숨과 날숨, 구원 없는 불행과 부조리,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고, “아픈 유희의 극치를 쓴다.”
안현미의 시적 화자는 현실과 초현실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시를 쓰기 위해, 혹은 생을 견디기 위해 죽은 사람으로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시인으로 되살아난다. 시인으로 되살아남으로써 죽은 사람으로 출근할 수 있고, 죽은 사람으로 출근함으로써 시인으로 되살아날 수 있는 순환 고리 속에서,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초현실인가. “주제넘게도 정규직을 때려치우는 모험을 하며 시대착오를 즐기며 산다 번뇌를 반복하고 번복하며”(「빌라에 산다」), “가난과 시를 섞”(「누누더기 시)」으며 그는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며 어머니가 전화해 ‘어디니이껴’ 묻는다 해도 어디에 있는지 대답하지 못한다. 그는 지금 현실에 밀착해 있지도 않고 초월해 있지도 않은, 그러면서 현실에 밀착해 있고 시공간을 초월해 있는 아이러니한 존재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초월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는 서로 대화하고 간섭한다.
첫 시집에서부터 줄곧 그를 따라다닌 가난과 운명의 실타래에 매여 있지만 그는 그것을 “부끄러워한 적은 없고 부끄러워하며 죽지도 않을 계획이다”(「사과술」).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그는 한 항아리의 사과술을 담그며 술에 취해 잠들 것이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거짓말을 타전하다」, 『곰곰』)던 인생을 살았으므로, 그는 누구에게 도움 받으며 살 수 없는 존재였기에 “낯설고 두려운 세계로 초대된 우리들//내 불행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라 당당하게 말한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목소리이며 동시에 스스로를 타이르는 자기 암시이다. 시인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고난은 자신에게 도래할 것이라 생각했고, 시인이기에 그것은 모두 견딤과 극복과 승화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여자도 남자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남자도 여자도 아닌 시인으로 “삼만 살처럼 피곤”한 인생을 살며 “동문하고 서답하자//내 물음과 내 울음은 내가 알아서 할 것”(「뛰어다니는 비」)이라고 매 순간 중얼거린다.
“삶을 이해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해하듯”(「날아다니는 꽃」) ‘구직도 구애도 구원도 없는’ 밤을 견디며, 타자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그는 이것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질문한다. “매일 밤 삶의 비애를 견디려 민생국숫집에 나와 혼자 술을” 마시는 한 시인이 있던 그 자리에서 그는 술을 마신다. 지금은 사경을 헤매고 있는 그 시인의 “외상값을 대신 갚으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시인이 벌떡 일어”날까(「인생국숫집」) 하는 염원의 마음으로 외상값을 대신 갚는다. 지금 신이 지구를 떠나고 있으므로… 신이 사라진 시대, 신이 갚아 줄 수 없는 외상값을 시인이 대신 갚아 준다.
“배고픈 신이//고달픈 신이//과로사한 신이”, “신발도 신지 못한 신이//빨간 실로 친친 엉켜 있는 신이//마이너스 통장도 없는 신이//이름도 없이 사망하는 신이”(「빨간 실」) 여기 있을 뿐이다. 시인은 죽어 가는 인간 하나하나가 곧 신이며 신성성을 지닌 존재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불행한 운명을 살다 간 사람도 “가만히 들여다보면//누구나 환한 구석이 있기 마련”(「흰, 국화 옆에서」)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끊임없이 탐구한다. 인간에 대해, 엄마에 대해, 고척동 고모와 숱한 ‘그녀들’에 대해. “어디로도 갈 수 있으면서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방범창 안 여자가//대추들처럼 매달려 있다”(「대추」)는 증언은 스스로 아름다웠던 존재들에 대한 찬사이며, 이때 ‘아름다운 존재’란 무엇인가를 건설하고 개발하며 미래의 시간을 서둘러 당겨쓰는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이다.
시인이 오랜만에 찾아간 고향 ‘비두리 옛집’은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채 “자신으로 죽고 있었다”. 이는 존재의 소멸인 동시에 이미지 부활이다. 시와 인생에 있어 뒤로 물러서지 않고 그 자신으로 살아내는 것, 그렇게 부끄럽지 않게 죽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해탈지경이요 하양의 세계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더 이상)//새도 노래하지 않고/꽃도 피어나지 않아도//(끝끝내)//돌아와 라켓을 잡듯/사랑을 붙잡겠다고”(「(나의)/탁구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