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웃김과 웅숭깊음을 어떻게 형언할 수 있을까
마치 한국문학의 장○돌침대! 김홍 두번째 소설집
소설집의 문을 여는 단편 「인생은 그라운드」를 보자. ‘나’의 집안이 망한 이유부터가 지극히 현실적이다. ‘나’는 과수원 부지를 둘러싼 기획 부동산 사기에 걸려들었고 이모는 가상화폐 사기에 넘어가 전 재산을 잃었다는 연령대를 반전한 설정, 나아가 KBO조차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바람에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사라져버린다는 거침없는 전개는 김홍식 ‘비틀기’로서 독자의 예상을 의도적으로 배반하며 신선함을 안긴다. 소설 곳곳에서 일확천금에 목맨 시대정신과 국가기관의 불도저식 상황 진압에 대한 풍자가 빛을 발한다. 야구가 사라진 세상에서 꿋꿋하게 야구를 하려는 ‘나’가 프로야구 선수 우규민과 야구 용품 중고 거래를 하는 장면은 독자를 둘러싼 현실의 맥락을 소설에 직접적으로 연동시키는 중요한 순간이다. 실존 인물을 언급함으로써 발생하는 이러한 현실감은 김홍 소설이 디테일을 획득하는 주요한 전략이다.
표제작 「여기서 울지 마세요」는 어떤가. 이 소설은 현실을 반영할 디테일로 MBTI 성격유형검사를 택하고 그에 사주풀이를 결합시켜 유머를 발생시킴으로써 비과학적인 유형화에 휘둘리는 사회를 풍자한다. 에너제틱한 ESFP 알바생 ‘산해씨’를 고용한 빵집 주인은 밝게 일해주는 만큼 임금을 인상하겠다는 자본주의적 약속을 한다. 소설에서 산해씨의 다정한 온기와 밝음은 조도를 측정하는 단위 ‘럭스’로 수치화된다. 3000럭스 정도로 시작했던 산해씨의 밝기가 2만 5000럭스를 돌파하자, 빵집 주인은 약속을 지키는 대신 산해씨를 해고한다. 하지만 산해씨의 밝아짐은 멈출 줄 모르고, 그가 내쏟는 에너지를 미국의 핵융합 연구소에서 눈독 들이면서 소설은 점차 파국으로 나아간다. “너무 환하지 말아요. 우리 견딜 수 있는 만큼만 밝아요.”(103~104쪽) 소설이 산해씨를 포함해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수행하는 감정노동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본문에 달린 18개 주석의 분량만 원고지 32매, 총 6,400자에 달하는 독특한 형태의 단편 「z활불러버s」는 현실계와 상상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김홍 소설의 백미를 보여준다. 비관적인 전망이 가득한 현대 한국사회에 인간의 몸으로 환생한 부처(활불活佛) ‘정소려’를 둘러싼 인간군상의 존경심과 시기심이 흘러가는 양상을 짚어나가며, 수많은 허구의 출처를 동원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소설이 펼쳐진다. 소설은 활불을 믿는 티베트 불교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을 시작으로 그간 광장에서 성토되었던 불의와 폭력을 하나씩 호명한다. 이 비극적인 세상에서 고통받는 모든 존재를 구원하려던 정소려는 결국 구원에 실패하고 자취를 감추는데, 이때 김홍은 환생을 거듭하는 활불의 특성을 온라인 게임과 접목시킨다. 이제 새로운 활불은 게임 캐릭터가 되어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하고, 정소려가 보여준 신화적, 전설적 행적들은 게임 속 이펙트처럼 축소되고 고결함을 잃는다. 이 ‘쪼그라든 세계’를 마주하는 회한이야말로 김홍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여기서 울지 마세요』는 수록된 단편소설뿐만 아니라 ‘작가의 말’까지 남다르다.
「그러다가」의 화자는 『엉엉』*의 동그람씨가 맞다. 동그람씨는 지금도 〈슬사모〉** 회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귀는 동그람씨와 화해하기 위해 배치 크라우더의 ‘킹 프라이스 마트’를 찾아간 바 있다.*** 나 역시 그들의 관계 회복을 간절히 바라지만, 당분간은 요원해 보인다.(「작가의 말」, 340쪽)
* 민음사, 2022.
** 슬픈 사람 모이세요.
*** 『프라이스 킹!!!』, 문학동네, 2024.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들이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맺는 연관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작가의 말’을 읽다보면 김홍 소설들이 어느덧 서로 연동되면서 광활한 영토를 형성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김홍이 자신의 영토를 넓혀가는 방식은 단지 질주하는 상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경이롭다. 통통 튀는 상상의 틈바구니를 꽉 채우는 날카롭고 세밀한 현실 인식. 가상의 단체명부터 인물 간의 대화 흐름, 시공간적 배경까지 허투루 만드는 것이 없는 디테일한 설정. 이러한 미덕 덕분에 김홍 소설의 상상력은 현실세계의 맥락과 밀착되어 탄탄하고 실감 넘친다. 분명 이전까지 접해보지 못한 엉뚱한 설정에 웃음이 터지는데 어색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각각의 소설들이 이음매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세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홍 소설 안에서 독자는 자유롭다. 그 어떤 작가도 쉽게 형성하지 못할, 드넓은 동시에 견고하며 신선하기까지 한 상상의 세계를 마음놓고 유영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