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윤 시인의 시선집 『금강』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선집은 그동안 시집을 낼 때마다 수록했던 금강 시편들을 한데 모았다.
김종윤 시인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충남 금산과 대전에서 자란 후 금산, 부여, 논산 등 금강을 곁에 두고 생활하였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금강에 머물러 있으면서 금강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금강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금강 줄기 걸어서 하루의 끝입니다
발원지인 뜸봉샘에서 내리는 길을 따라
수분리 고개를 지나 장수 읍내를 지나서
강과 길로 걷다가 중동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나무 밑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하루종일 동행하던 금강은
어둠 속에서 소리로 흐르고 있습니다
강물에 더운 몸을 씻고
소쩍새 소리를 이불 삼아 누웠습니다
머리 위 느티나무에서 우는 소쩍새를 향해
할머니! 하고 불러봅니다
-「소쩍새」 부분
금강 종주를 계획할 때 가장 큰 두려움은 ‘작은 텐트 속에서, 인적 없는 강변이나 다리 밑, 큰 나무 밑에서 자야 할 텐데 무서움을 어떻게 극복할까’였다. 그런데 그건 길을 나서기 전의 염려에 불과했다. 너무 피곤해서 무서움을 느끼기도 전에 “소쩍새 소리를 이불 삼아” 깊은 잠에 떨어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물이 차오르기 전 이 길은
사과 과수원과 고구마밭을 지나 마을에 닿았다
햇살 뜨겁던 날,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던
소년은 어디로 갔을까 굽은 허리로
고구마를 캐던 노인의 눈동자는
어느 갈피에서 흔들리고 있을까
장수 지나 천천, 옥수(玉水)로 흐르던 금강은
골 깊은 죽도에서 막혀 용담호가 되었다
동백꽃 피듯, 붉은 체열로 달려온 함성이
이곳에서 차갑게 식어 가라앉고
초승달 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는
아름다운 묵색의 빈 편지지 한 장이다
용담골을 떠나지 못하고 호숫가에 둘러앉은
낮은 불빛들을 향해 편지를 쓴다
잔설 위로 노루귀꽃이 피고 육각정 정자 옆
산수유 꽃망울에 봄물 오른다고 쓴다
어제는 고사리밭에 새 묘가 이사 왔다고 쓴다
호수 옆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실향 불빛들처럼 세상에
그리움보다 더 큰 이념이 어디 있냐고 쓴다
초승달 빛 밝혀 용담호 물이랑에 쓴다
밤바람 달래면서 용담호 수면에 가만가만 쓴다
-「용담호에 쓰는 편지」 부분
순조롭던 금강 종주 여정이 금산에서 사달이 났다. 무리한 계획에 맞추느라 행군처럼 걷다 보니 양쪽 다리가 굳고 두 발바닥에 물집이 열 개 정도 생겼다. 그뿐만이 아니다. 금산 원골유원지 근처 다리 밑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묵었는데 텐트가 좁아서 밖에 놓은 허리 가방을 밤사이에 야생 동물이 가지고 사라진 것이다. 가방 안에 든 마른반찬 냄새를 맡고 가져간 것 같은데 그 가방 속에는 핸드폰이 들어 있었다. 아픈 다리를 끌고 주변을 찾아보았지만 텐트 주변에 흔적만 있을 뿐 끝내 찾지 못했다. 반찬 없는 아침밥을 먹고 오전을 걷다가 천렵하는 사람들에게서 점심을 얻었다. 점심 동냥의 시작이었다.
상처가 길이 된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상처와 상처가 만나는 것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있다
-「상처가 길이 된다」 전문
금강을 따라 내려가는 여정은 한결같이 금강 곁을 지키는 길의 여정이다. 금강을 따라나섰지만 사실은 길을 따라나선 것이었다. 길을 따라 하루종일 걷다가 길 위에서 눕고 길 위에서 일어난다. 부여, 강경, 나포, 하구둑, 모두 길 위에서의 여정, 금강은 곧 길이다.
“금강 천 리 길”처럼 시인 또한 한결같은 마음, 한결같은 시의 길을 걷는다. 그 길은 ‘한 줄기 샘물로 천리 밖 바다를 마중하는 뜸봉샘처럼, 바다를 꿈꾸는 수분령 고개의 늙은 수분송처럼’ 가슴으로 내는 믿음의 길이다. “저문 강길을 붉게 울며 걸어”보면 “외로움이 벙글어 노을로 빛나고” “눈물이 강물 되어 맑게 흐”른다.
금강(錦江)의 금(錦)은 비단이란 뜻이다. 따라서 금강을 비단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수 뜸봉샘에서 발원해 무주. 금산, 영동을 지나 경부고속도로 휴게소가 있는 금강유원지와 옥천 동이면, 그리고 안남면으로 내려가다 보면 왜 금강을 비단강이라고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산과 강이 굽이굽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그래서 김종윤 시인은 금강을 다정한 강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