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세련된 도시 서울이 아닌
역사적 트라우마를 지닌 슬픔의 도시 서울을 걷다
‘모던 서울’의 역사는 ‘모던’이라는 단어가 주는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의 근현대 시기는 제국주의의 물결에서 시작된 식민, 이후 전쟁으로 말미암은 국가의 분단 체제, 그와 함께 뿔뿔이 흩어진 이산의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반도의 중심도시로 오랫동안 기능해 온 서울은 그 모든 역사를 함께해 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서울을 대한민국의 성공 신화를 대표하는 밝은 이미지로만 기억하길 원하는 듯하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역사적 트라우마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서울의 여러 공간 속에 켜켜이 쌓여 있다. 이 책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서울의 공간에서 식민, 분단, 이산의 흔적과 만난다. 무의식중에 외면해 온 오래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그 상처와 마주하는 일이다.
‘모던 서울’의 공간이 품은 사건과 이야기,
인물과 역사, 예술과 문학이 교차하는 17편의 이야기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의 젊은 연구진들과 교수들이 ‘모던 서울’의 공간을 걸으며 그 속에 쌓인 아픈 기억을 17편의 이야기에 담았다.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 사람들의 선망의 공간인 화신상회(현 종로타워), 젊은 룸펜들의 아지트였던 커피숍 낙랑팔라(현 더플라자 호텔) 등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등장하는 장소를 걸으며 식민지 수도 경성의 모습을 떠올리고, 1945년 해방부터 분단 체제가 공고히 되는 1948년까지 백범 김구를 포함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임정봉대론, 신탁통치 반대운동, 남북협상 등 굵직한 정치적 사안을 다루었던 경교장, 한반도 문제를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좌절되자 일부 좌우 세력이 합작을 논의했던 덕수궁 석조전, 해방 정국에서 정당 활동과 교육 활동의 발원지로 활용된 서북학회회관 터, 몽양 여운형 선생이 주도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본부 터 등 분단 체제에 항거한 인물과 관련된 장소도 함께 걷는다. 그 외에 일본 제국의 식민지 자본화를 고스란히 담은 용산·영등포 공업기지(현 용산역 철도정비창 부지, 경방 타임스퀘어), 중국 동포 타운의 변천사(가리봉연변거리, 대림동포타운, 자양동 양꼬치거리), 해방과 전쟁에 휩쓸린 성북의 예술가들 이야기(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 권진규 아틀리에, 박경리 가옥, 최만린미술관), 서울의 기념관과 박물관(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전쟁기념관, 민주화운동기념관) 등 ‘모던 서울’을 품은 100여 곳을 다룬다. 본문에서 소개하지 못한 서북 지역의 장소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간략한 정보를 실었다.
오천년의 한국사에서 식민, 분단, 이산으로 대표되는 근현대사는 역사적 트라우마로 우리에게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던 서울’을 걷는다는 것은 편안함과 유쾌함보다는 긴장감과 당혹감, 분노와 슬픔을 안겨 준다. 하지만 삶은 지속되며 생명은 강인한 법. 이 책은 한쪽에 묻어둔 아픈 상처의 기억을 불러와 우리가 그 기억을 ‘마주하고 애도하며 성찰적으로 극복’하여 치유의 길로 나아가도록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