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 장기 해외 자유여행을 자주 다녔고, 여행 인솔자도 해봤고, 엄마랑 이모들하고는 종종 여행도 떠났던 저자로서는 “아빠 한 명 추가되는 건데 뭐 얼마나 어렵겠냐?”라고 안일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난생처음으로 아빠와 함께 자유여행을 떠나면서 아빠의 여행 패턴은 하나도 고려하지 못한 채 안일했다는 게 입증되는 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여행이 좋아 나 홀로 여행을 즐겨 했고, 그러한 자유여행을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해 이미 관련 여행 에세이 처녀작을 출간한 여행 작가다. 평소에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틈틈이 세상 구경하는 것을 낙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특히, 뭉게구름 가득한 새파란 하늘 아래 여유 부리는 여행을 제일 좋아한다.
저자는 평소 나 홀로 또는 엄마와 이모들 등 집안의 여성 동지들과 해외 자유여행을 즐겨 왔는데 어쩌면 일(한의원)에 톡톡히 중독되어 평소 해외여행을 외면하던 아빠의 회갑 기념 가족 유럽 자유여행을 손수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저자의 아빠는 현존하는 모든 나라의 수도를 꿰차고 있는 자타 공인 지리학 박사다. 저자의 아빠는 저자의 어린 시절, 각 나라의 수도 관련한 질문에 답을 정확하게 답하면 상금으로 오백 원을 준다는 말에 열심히 세계 각국의 수도 이름을 외우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 저자에게 어린 나이에 당시 오백 원은 슬러시 한 컵을 사 먹어도 남는 돈이었다. 저자는 세상에 알아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인선아, 세네갈의 수도는 어디지?” 등의 듣도 보도 못한 나라의 수도까지 알아야 했는지 회의감이 들면서도 그 오백 원을 얻기 위해 수도 이름을 열심히 외웠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지리와 역사에 흥미가 지대했던 저자의 아빠는 자녀들에게도 본인의 관심을 그렇게 표명해주었고, 덕분에 저자는 자연스레 다양한 나라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저자는 30여 개국을 섭렵한 여행 작가가 되었다. 반면에 저자의 그 넘치는 지리 사랑이라면 세계 일주 여행을 해도 모자랐을 터인데 역설적으로 해외여행 경험이 거의 없다. 어쩌면 묵묵히 가장의 자리를 지켜오다 보니 그의 인생에는 쉼표가 없었다고 하겠다.
그렇게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저자는 가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세계 테마기행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홀로 여행을 다닌 저자의 지난날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저자의 아빠는 같은 일을 수십 년 동안 해왔는데 ‘평생 직업’이라는 단어가 낯선 요즘, 새삼 대단하다 하겠다. 갓 서른을 넘긴 저자만 해도 직업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 그의 끈덕짐은 박수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쉬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저자의 아빠. 주 5일제로 바뀐 지가 언젠데 여전히 토요일은 물론 공휴일마저 문을 열고 있다. 해외여행 가려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 자리를 비워야 하는데, 그런 그에게 그러한 장기 휴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까짓것 문 닫고 잠시 다녀오면 됐지만, 우리가 감히 알지 못하는 책임감이 발목을 잡았을 거다”라며 “그렇다 해도 남들이 여행 갈 때마다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 여행의 욕구를 꾹꾹 참으며 자리를 지켜온 아빠가 마침내 커다란 결심을 했다”라고 밝힌다.
집요한 설득 끝에 저자는 아빠로부터 “그래, 비행기 표 끊자!”라는 승낙을 받아내 아빠가 세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는 동안 처음으로 자신에게 주는 휴식, 잠시 쉼표를 찍기까지 주도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과 젊음의 패기를 무기 삼아 배낭 메고 지구촌 방방곡곡 여행을 다녔던 필자의 그러한 가족 자유여행 계획을 접한 주변 지인들은 “친구들이랑 가더라도 힘든 걸 부모님 모시고 간다고? 그것도 이모들까지?”, “다른 곳도 아니고, 유럽을 자유여행으로 간다고?”,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쉽게 생각할 문제 아니다, 이거.” 등등으로 큰 우려를 표명했다.
그 연장선에서 가족 단위 해외 장기 자유여행에서 좌충우돌 일어날 여러 갈등을 미처 간파한 필자의 대학생 남동생도 이런저런 핑계로 이 여행팀에 합류하길 거부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