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마땅한 곰이란 있을 수 없다.
모두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며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들이다.”
★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정세랑 소설가 추천 ★
★ 최태규 수의사,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 추천 ★
★ 〈뉴요커〉, 〈이코노미스트〉 선정 2023 최고의 책 ★
★ 〈NPR〉, 〈사이언스 뉴스〉 선정 2023 가장 사랑한 책 ★
★ 〈가디언〉, 〈커커스 리뷰〉 강력 추천 도서 ★
멸종의 길을 향해 걸어가는 전 세계 여덟 종의 곰들
이들이 직면한 위험은 무엇이며 생존이란 희망은 존재하는가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먹으며 동굴에서 100일을 버텨 인간 여인으로 변한 단군 신화 속 ‘웅녀’,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벌로 곰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그리스 신화 속 숲의 요정 님프 ‘칼리스토’, 모글리의 스승 역할을 자처하며 어린 동물에게 정글의 법칙을 가르쳐주던 《정글북》 속 인자한 불곰 ‘발루’, 꿀을 가장 좋아하는 매사에 긍정적인 성격의 곰돌이 ‘푸’, 파란 더플코트를 말쑥하게 차려입고 빨간 모자를 쓰고서는 작은 갈색 가방을 손에 쥔 채 패딩턴 역사를 돌아다니던 꼬마 곰 ‘패딩턴’.
이처럼 곰은 토착 설화와 신화에서부터 19세기 동화나 소설, 현대의 애니메이션과 영화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집단 기억에서 늘 중심의 자리를 지켜왔다. 종에 따라 성별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몸무게가 최대 800킬로그램에 달하기도 하고, 그 키만 2.5미터를 능가하며, 거슬리기만 하면 말 그대로 사람을 찢는 이 무시무시한 존재를 향해 우리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며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처음 접한 동물의 형상이 대개 곰이고, 인격 형성기인 유아기에 머리맡을 지켜주던 친구가 곰인 경우가 많았으며, 유년기 시절 잠자리에서 부모님이 읽어주던 동화 속 주인공이 곰이었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곰에게 엉뚱한 매력을 불어넣으며 복잡하고 깊은 관계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영원히 사랑만 받을 것 같던 곰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기후 위기로 서식지를 잃은 곰들이 도시를 향해 서식 범위를 넓히면서 인간과의 충돌이 급증했다. 우리는 갑작스레 이웃이 되어버린 곰과 어떻게 그리고 왜 공존해야 하는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했고, 생사의 기로에 선 곰들은 인간에게 위협을 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피해를 입히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최악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기후 변화와 인구 증가, 서식지 소실, 먹이 부족, 종국에는 멸종이라는 문제에 부딪혀 인간과의 갈등이 불가피해진 곰들과 이들을 향해 총을 겨눌 수밖에 없는 우리. 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벗어나 서로가 함께 공존과 공생의 길로 나아갈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일까?
대왕판다부터 북극곰까지,
신화 속 존재에서 멸종우려종이 되어버린 곰 여덟 종에 관하여
놀랍게도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곰은 겨우 여덟 종에 불과하다. 갯과 동물이 약 35종, 고양잇과 동물이 약 41종, 고래목이 약 90종, 영장류가 대략 500종인 것에 비하면 곰종은 그 수가 터무니없이 적다. 그런데 이 사실을 코알라나 레서판다를 예로 들며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 멸종과 절멸의 위험에 어떤 동물보다 가까이 닿아 있는, 그야말로 동화 속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 곰들의 이야기를 저널리스트인 글로리아 디키는 널리 알려야 했다.
《에이트 베어스》는 지구를 떠나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를 곰 여덟 종의 이야기를 담은 과학서이자 일종의 르포르타주다. 사료에 근거한 곰의 생태와 역사, 신화 이야기를 생생한 현장 탐사 기록과 교차해 엮어내며 한때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으며 위엄과 권위를 상징했던 곰이 어떻게 작금의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지, 인간과 곰이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가 곰 형제들을 멸종 위기에서 구할 방법은 과연 존재하는지를 과학적이면서도 시적이고 가슴 아프면서도 희망적인 관점으로 풀어나간다.
오늘날 현존하는 곰 여덟 종은 잘 알려진 대왕판다(중국), 미국흑곰(미국), 북극곰(캐나다), 불곰(미국)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느림보곰(인도), 반달가슴곰(베트남), 안경곰(에콰도르, 페루), 태양곰(베트남)이다. 눈과 귀에 그려진 검은 무늬 하나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대왕판다와 코카콜라를 들이켜는 모습으로 인기 마스코트로 자리매김한 북극곰, 인간과 공생하는 법을 깨우치고 있는 미국흑곰이 곰을 대표한다면, 인간과의 잦은 충돌로 보호 대상에서 제외될지도 모를 불곰, 숲 가장자리로 밀려나 파편화된 서식지를 배회하는 느림보곰, 패딩턴의 모티브가 된 에콰도르와 페루의 운무림에 사는 겁 많은 안경곰, 웅담 채취 농장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반달가슴곰과 태양곰은 우리의 많은 관심을 더욱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곰들을 괴롭히고 희생시켰는가
지구를 떠나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를 곰들을 위한 마지막 변론
저자인 글로리아 디키는 지구 곳곳을 다니며 곰들의 이야기를 탐험하는 여정에 올랐다. 안데스산맥 운무림에서 북극 해빙까지 이어진 대장정 속에서 그는 자신이 만난 곰들은 대개 갇혀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웅담 채취 농장에 살던 반달가슴곰과 태양곰, 춤추는 곰으로 살며 잔인하게 학대받은 느림보곰, 아직까지는 야생화가 불가능에 가까운 대왕판다가 그랬다. 인공적인 환경 밖에서 볼 수 있었던 곰들 역시 야생에서 살고는 있지만 파편화된 서식지 탓에 가장자리에 갇혀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녹아버린 해빙 탓에 해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북극곰이 그랬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갈 곳을 잃은 불곰이 그랬고, 수줍음 많은 안경곰은 얼굴조차 내보이지 않았다.
이족보행이 가능해 앞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걸로 유명한 곰은 똑똑하다고 알려져 있다. 유인원을 능가하는 높은 지능 수준을 가지고 있으며 사물 구별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 역시 뛰어난데, 야생 불곰은 주변 환경을 분류별로 정리해 목록화해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른 곰 친구는 어느 구역에 사는지 등을 기억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런 영리한 곰들을 경제적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좁은 철장이나 우리에 가둬 생활하게 하고, 재갈을 물리려고 주둥이를 뚫거나 이빨을 뽑고, 덫에 걸린 곰의 발을 자르고, 배에 주사기를 수십 번 찔러 넣으며 웅담즙을 채취했다. 고문과도 같은 잔인하기 그지없는 무차별적인 폭력 앞에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을 곰들은 과연 죽음 앞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곰을 이용한 경제적 착취는 합법적으로든 불법적으로든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 전반에 깊이 관계되어 있는 곰종은 당연 대왕판다다. 중국 내에서도 전 세계에서도 문화적 정점에 오른 대왕판다는 다른 일곱 종의 곰은 물론이고 다른 어느 야생동물보다 인간과의 막강한 문화적 유대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대왕판다의 세계적 문화 가치가 거둬들이는 연간 수익은 7억 900만 달러, 대략 99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대왕판다가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저자는 멸종을 막기 위해 들인 돈과 시간 역시 다른 어떤 동물과 비교해도 대왕판다가 압도적이었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대왕판다의 지속적 생존이 곧 다른 멸종우려종을 위한 희망의 등대라는 점이 이해되면서도 참으로 아이러니한 지점인 것은 부정할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서식지를 잃어버린 곰과 삶의 터전을 곰들에게 빼앗긴 인간
곰의 미래가 곧 인간의 미래라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물론 그간 우리는 곰들에게 놀라울 정도로 큰 연민과 이타심도 여러 번 발휘했다. 하지만 기후 변화와 무분별한 개발이 원인이 되어 촉발된 곰과 인간의 충돌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임이 분명하다. 해빙이나 구름은 일단 한번 사라지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 팜유 플랜테이션 확대를 위해 숲을 파괴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결국 곰들은 해안과 도시로 내몰리게 될 것이며, 갈 곳을 잃어버린 곰들은 인간의 손에 죽임을 당하거나 종국엔 절멸을 받아들일 것이다. 저자는 이번 세기말을 넘겨서도 번성할 운명인 듯한 곰을 대왕판다와 미국흑곰, 불곰뿐이라고 전하며 우리는 ‘곰 세 마리’라는 동화 같은 미래를 조만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씁쓸한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도시로 삶의 터전을 넓혀 들어오는 곰을 침입자로 받아들이고 인간에게 해를 가하는 곰의 공격성과 무자비함에 성토하며 개체수를 강제적으로라도 줄여야 한다고 강하게 규탄하고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곰들에겐 잘못이 없다. 침입자인 인간이 촉발한 기후 위기로 형제, 가족, 친구, 종국엔 서식지까지 잃어버린 명백한 피해자다. 우리가 그간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곰들에게 자리도 내어주지 않는다면, 동물원이나 박물관의 유리창 뒤에만 존재하는 그들의 미래는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다.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는 위기를 마주하고 살아가는 인류세 시대 속에서 어떤 존재에게도 영원한 존속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는 것은 곧 가여운 곰 여덟 종을 보존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 존재 역시 살아 있음을 장담할 수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언젠가는 지구라는 서식지를 영영 떠나는 날을 마주하게 된다는 뜻이다. 인간과 비인간, 사람과 동물, 주인과 침입자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태곳적부터 인간이 곰과 맺어온 긴밀한 관계의 역사를 앞으로도 이어나갈 수 있도록 곰 여덟 종의 장기적 생존, 더 나아가 그들과의 공존과 공생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