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 단지 ‘뇌의 신호’가 아니다
인지ㆍ신체ㆍ환경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마음’ 개념에 대하여
마크 롤랜즈의 『새로운 마음 과학』은 제3세대 인지과학으로 분류되는 ‘체화된 인지’에 관한 대표적 저술로서, 심적 과정이 사고하는 유기체의 머릿속에서 독점적으로 일어난다고 가정하는 데카르트적 인지과학의 마음관에 반박하면서 새로운 마음 과학의 논리적·개념적 토대를 구축하고자 한다. 체화된 인지에 관한 많은 문헌들 가운데서도 새로운 마음 개념에 대한 논의를 단일한 이론 안에 통합시키고 있으며 기존 논의들보다 독창적이고 유용하다.
고전적 인지주의를 반박하는
‘새로운 마음 과학’의 정초
데카르트적 인지과학에서는 감각정보가 입력되면 뇌가 이를 표상해서 인지 유기체에 의미 있는 정보로 변환시킨다고 설명함으로써 인지과정이 뇌에 독점된 과정이라고 말하지만, 저자가 추구하는 반데카르트적 인지과학은 인지과정이 머릿속에서만 수행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인지적 과제와 관련된 정보를 뇌 외부의 신체 및 환경 구조가 보유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가 외부 구조를 올바른 방식으로 이용하여 이 정보를 활용할 때 외부 구조가 인지과정의 부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인지 과정을 신경적 구조 및 과정, 신체적 구조 및 과정, 환경 구조 및 과정의 ‘연합체’로 간주하는 것이다.
“체화되고, 확장되고, 착근되고, 행화되는 마음”?
-4E에 대하여
오늘날 흔히 4E로 불리는 체화(embodied), 확장(extended), 착근(embedded), 행화(enacted)의 개념은 데카르트적 인지과학의 핵심 가정을 부정하거나 의문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롤랜즈는 이 4E 개념들에 주목하지만, 이 중 ‘체화’와 ‘확장’이 진정으로 반데카르트적인 마음 개념을 구성한다고 본다. 이렇듯 4E 개념들이 각각 주장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이며, 데카르트적 인지과학의 중심 가정을 정말로 부정하는지, 그리고 4E 개념들 가운데 어떤 개념들이 서로 양립 가능하거나 불가능한지를 면밀히 고찰함으로써 이러한 자격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길을 찾아 나선다.
롤랜즈에 따르면 ‘마음의 체화’란, 심적 과정이 뇌 과정뿐만 아니라 뇌 과정과 그 외 신체 구조 및 과정의 조합에 의해서도 구성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마음의 확장’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신체 내부 및 외부에 걸쳐 있는 혼성적 과정이며, 일부 인지 과정은 부분적으로 환경 구조의 조작, 활용, 또는 변환으로 구성된다. 두 가지 모두 마음의 ‘존재적 구성’에 대한 주장인 것이다. 그는 체화된 마음과 확장된 마음을 ‘연합된 마음’으로 통합한다. 연합된 마음은 새로운 마음 과학의 토대가 되며, 책에서는 이를 옹호하기 위해 여러 반론들에 대응하고 있다. 특히 ‘인지의 표식 반론’은 체화된 마음 및 확장된 마음이 호소하는 종류의 과정들을 인지의 자격이 있는 것으로 간주할 인지의 기준이란 없을 것이라는 반론인데, 저자는 여러 반론들이 결국 인지의 표식 반론으로 귀결되며, 인지에 대한 적절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마음 과학의
이론과 실제를 연결짓는 혁신적인 접근
롤랜즈는 인지과정이 신경적, 신체적, 환경적 구조 및 과정의 연합체로 간주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인지과정이 인지적 주체에게 속한다는 소유권 개념을 설명한다. 인지의 적절한 기준에 대한 제시, 기능주의에 대한 배제, 그리고 체화된 마음과 확장된 마음의 결합에 대한 시도는 4E의 다른 지지자들의 입장으로부터 롤랜즈의 입장을 구별해 주는 독특한 면모다. 특히 이 책의 후반부 전체를 할애할 정도로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지의 기준에 대한 논의 역시 4E에 대한 기존의 문헌들에서는 찾기 힘든 것이다. 즉 인지의 기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소유권 개념에서 찾을 수 있으며, 연합된 마음은 이로부터 자연스럽고 명백한 결과로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새로운 마음 과학의 토대가 될, 진정으로 반데카르트적인 마음 개념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자 하는 이 책의 기획은 지금까지 상당히 산발적으로 제시되어 온 새로운 마음 개념에 대한 논의들을 단일한 이론 안에 통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야심차고 참신할 뿐만 아니라 발전적이다. 또한 소유권 개념과 지향성 개념 등의 도입은 체화된 인지를 이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면서도 유용하다. 체화된 인지에 관한 많은 문헌들 가운데서도 단연 이 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