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명희의 시는 그 어떤 장치나 굴절 없이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내면의 세계를 특화하는 힘을 가졌다. 그 어떤 감정의 이입일지라도 가감 없이 객관화한다. 군더더기가 없다. 간결하고 명료하면서 대상에 따라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개성적 감성이 굴절 없이 특장을 이룬다.
시인만의 강한 서사적 요소가 만들어 내는 주관적 정서가 때론 감정에 치우칠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다. 자신이 펼쳐낸 세계 또는 자신에게 펼쳐진 세계를 잘 버무리면서 대상과 시적 자아와의 거리를 객관화하는 것이 그러하다. 서정적 자아가 펼쳐낸 세계는 그 어느 부분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적 대상과 공간이 자아와의 합일을 이루는 동시에 시편 곳곳에 장치된 감정 그리고 세계와 자아 동일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며, 시인이 마주한 삶의 주변적 요소와의 내적 상호작용을 동시적으로 이루어 내는 「풍경」 시편이 주는 미덕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세계 인식이란 대상에게 적극적으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에 있음을 시인은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로 가족과 나에 관한 시편이며, 그 두 번째는 꽃과 식물에 관한 시편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세 번째로는 삶과 자연과 현실을 통한 시편으로 나뉠 수 있다. 우선 ‘가족과 나에 관한 시편을 살펴본다.
한옥 대청마루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난다//
곱디고운 세모시 입으시고/ 따스하게 웃어주던//
어머니,//
하얀 고무신/ 눈물처럼 반짝이는데//
어느새 내 곁에 앉아/ 함께 눈물짓는 이슬비
-「고택-풍경·1」 전문
새벽부터 내리는 비/ 그칠 줄 모른다//
빗물 주름 사이사이/ 밀려드는 그대 생각//
그리움 접지 못하는/ 비 오는 날
-「그리움-풍경·2」 전문
돌아가신 엄마가/ 꿈에 오셨다//
말없이 미소로만/ 쓰다듬어 주신다//
엄마!/ 소리내어 부르지도 못했다//
이른 아침/ 눈을 뜨니//
창밖 감나무에/ 참새 울음소리만 요란하다
-「참새-풍경·6」 전문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에게나 없다. 대상을 통해 깊이와 넓이 그리고 무게를 통해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며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간이 능동적으로 감지할 기초적 단서조차 없다. 무형의, 추상의, 막연하나 그 어떤 실체처럼 여겨 수시로 감지할 뿐이다. 시계나 달력이 그나마 조력자 역할에 약간의 도움이 될 뿐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매 순간 오감을 동원하여 현실에 적용, 구체화하는 것에 애를 써야 하는 것이다. 가족의 경우 그 범위가 정해져 있기에 오감을 통한 삶의 깊이와 넓이와 감정과 기억이 각각의 역할을 하면서 구성원의 정체성에 있어 현실 인식은 생래적일 수밖에 없다. 「고택-풍경·1」, 「그리움-풍경·2」, 「참새-풍경·6」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펼쳐내었다면 작품 「벚꽃-풍경·12」에서는 역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이 그렇다. ‘화사한 꽃잎들/ 성급한 봄바람에/하르르/ 떨어졌다//성미 급하셨던 아버지/봄바람에 꽃잎처럼/먼 길 떠나셨다’의 짧은 시에서 만나는 시간과 공간의 설정 역시 시인에게 체화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