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노래가 있었다
애플TV+에서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파친코(PACINCO)’의 한 장면을 기억하는가? 일본으로 떠나는 여객선 안에서 한국인 여성 소프라노가 일본인 관객들 앞에서 결연하고도 비장한 표정으로 춘향전의 ‘갈까부다’를 열창하던 모습을. 어찌나 구슬프고 화면 구성이 강렬하던지 쉽게 잊히지 않는 명장면이었다. 그렇다. 식민치하에서도 노래는 우리 곁에 존재했다. 어쩌면 노래가 있어 견뎌냈을지도 모른다.
『화녕가(歌)』는 실로 ‘파친코’의 그 장면과 동일한 시기를 배경으로 윤심덕과 같은 실존 인물들이 모티프가 되어 소설화된 작품이다. 실로 1920~40년대 한국 가요사는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저항의 메시지를 담아낸 중요한 문화적 유산으로 이 시기의 가요들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민족의 슬픔과 절망 또 동시에 희망과 저항의 상징이었다.
소설가 이영희는 『화녕가(歌)』에서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개인의 삶과 사회적 투쟁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그 시대의 절절한 정서를 문학적으로 재현한다. 1920~40년대는 일제의 수탈과 탄압이 더욱 가혹해진 시기이면서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사람들은 스타에 열광하며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 했던 것일까? 『화녕가(歌)』는 이 시기에, 불꽃같은 열망을 품고 자신의 꿈을 추구하는 화녕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당시 한국 대중음악이 가진 역사적, 민족적 의미를 섬세하게 탐구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또한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의 적〉,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김서정 작사·작곡의 〈강남달〉 등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중요한 곡의 가사를 소설에 삽입하여, 화녕의 마음을 그 음악적 의미와 함께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현대 K-pop과 화녕의 유산
『화녕가(歌)』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로 기능하며 작가 이영희는 화녕이라는 인물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고통과 저항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현대 K-pop의 뿌리와 연결된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화녕이 노래를 통해 민족의 혼을 불태웠던 것처럼, 현대의 K-pop 아티스트들은 음악을 통해 전 세계 팬들과 소통하고, 한국의 문화를 알리며 새로운 형태의 저항과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화녕의 삶과 그의 노래는 그 시대를 넘어 현대에도 큰 울림을 주며, K-pop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작품으로 기대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