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솔한 어린이의 속 시원한 한 말씀
어린이의 천진하고도 엉뚱한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때론 말이 안 되고 이상해 보이는 것투성이다. 이런 마음을 아이들 눈높이의 시로 유쾌 통쾌하게 풀어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독자에게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다.
딸 딸 아빠 딸! /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 어서 아빠 보고 말해 봐 // 이럴 땐 정말 눈사람이 되고 싶다 // 딸 딸 엄마 딸! / 엄마 닮았나, 아빠 닮았나? / 어디 엄마 좀 봐 봐 // 이럴 땐 정말 꽝꽝나무에 숨고 싶다 // 누구의 딸도 안 하고 / 어디론가 딸 딸 딸 딸 굴러가 // 어디 한번 딸 찾아봐라! / 그러고 싶다 // 그러면 아빠랑 엄마랑 부둥켜안고 / 동네방네 딸 딸 딸 딸 우리 딸! / 하면서 나를 찾겠지? // 흥! -「이럴 땐 정말」 전문
돼지를 죽인 어른들이 돼지에게 빕니다 / 참다못한 어린이께서 한 말씀 하십니다 // “이게 말이 돼?” -「말이 돼?」 中
우리 아영이 걱정이다, 걱정 / 너도 이제 2학년인데… / 엄마, 뚝! / 하고 싶을 땐? 문경애 씨를 부른다 / 문경애 씨! 저, 완두콩 좀 더 주세요 // 우리 문경애 씨, 완두콩 찾느라 / 뚝! 그쳤다 -「뚝!」 中
사이좋게 지내면 좋을 텐데 이상한 질문을 하는 엄마 아빠가 이해되지 않는 아이(「이럴 땐 정말」), 동물권과 더불어 어른 사회의 모순을 짚는 아이(「말이 돼?」), 잔소리하는 엄마를 되려 뚝! 그치게 하는 법을 터득한 아이(「뚝!」) 등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회적 문제, 가정 내에서의 다양한 관계성에서 예리한 시선으로 나름의 의견을 당돌하게 내놓는다. 명석한 어린이는 세상의 밝은 면과 함께 씁쓸한 면도 일찌감치 알아채게 마련이다. 남들과 달라 속상할 때도 있지만, 이 동시집의 화자들은 숨김없이 진솔하게 자신의 모습을 내비친다. 학교에서 간혹 마음이 째깍째깍 씹히는 듯한 기분이 든 적 있는 아이에게 위로를 건네는 한편, ‘누구나 이럴 때 있지 않아? 나만 그런가? 내가 이상한가?’ 하는 듯한 시 속의 물음들은 가슴속에 비범함을 간직한 모든 어린이에게 공감과 용기를 심어 준다. 얼핏 짓궂고 삐딱해 보이는 물음에는 저마다 품은 보석처럼 빛나는 개성을 마음껏 뽐내도 좋다는 응원의 토닥임이 담겨 있다.
내가 선아를 만나고 록쇽쇽한 기분을 알게 되었듯
이 동시집을 읽는 어린이 친구들도 만날 수 있길!
저마다의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어린이들을,
남다름을 숨기지 않는 귀한 보석들을 말이야.
- 시인 박진경
■ 과감하고 자유로운 표현이 돋보이는 동시
엉뚱 발랄한 의성어, 의태어를 풍부하게 사용하여 입소리가 주는 미묘한 어감에 주목한 시어들은 곱씹을수록 소리 내어 읽는 재미를 준다. 글자가 지닌 물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창의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구체시도 곳곳에 돋보인다. 기호를 조합한 이모티콘을 활용하는가 하면 글자 배열로 만든 케이크도 등장한다. 또 자유로운 연과 행의 구분으로 감정의 폭을 넓힌다.
두 // 두두 / 둑 // 두둑 / 뚜두둑 / 뚝 / 뚝. 뚜두둑뚝. 뚝 뚝 / 뚜두두두 뚝 뚜다다닥 뚜두뚝따따다닥! / 으 다 다 닥 ----------- 뛰어! -「비 온 다!」 전문
「비 온 다!」에서는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해 소리와 형태로 재치 있고 신선하게 펼쳐 보인다. 리듬감을 살려 소리 내어 따라 읽어 보면 풍성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빗소리에 이어 친구들과 함께 비를 피해 소란하게 뛰어나가는 아이들의 외침이 더해져 활력 있는 이미지를 생생히 불러일으킨다.
또 맛깔나는 지방 사투리와 입말체를 살린 시어를 사용해 입에 감기는 말맛과 정겨운 정서가 담뿍 담겼다. 바다를 압축해 만든 까만 네모 한 장을 밥 싸서 호롤롤 쏘오옥 후딱 묵어 삐면(「바다.zip」) 할머니의 푸짐한 마음이 한결 더 포근히 다가온다.
■ 세상을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럽게 비추는 일러스트
일러스트레이터 간장 작가의 귀엽고 담백한 그림은 아이들이 시를 더욱 쉽고 가뿐하게 느끼게 해 준다. 부드럽고 연한 색감이 눈과 마음에 편안하고 촉촉하게 와 닿는다. 동식물과 사물을 의인화해 동그란 눈동자와 익살맞은 표정, 유머러스한 말풍선을 덧붙인 그림들은 생명력이 불어넣어진 자연물과 정물들이 서로서로 안부를 묻고, 오늘도 안녕한지 다정한 인사를 나누는 동시와 잘 어우러져 온기를 한 겹 더해 준다. 자연이 오손도손 나누는 속삭임을 아기자기하게 담아낸 그림은 세상을 따사롭고 사랑스럽게 비춰 보여 주며, 동시와 더불어 생명과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도록 안내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