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사의 두건이라는 독초로 독살당한 부유한 영주
그리고 캐드펠 앞에 나타난 옛사랑의 그림자
내란의 상처가 차츰 아물어갈 무렵,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는 뜻밖의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스티븐 왕에게 미움을 산 헤리버트 수도원장의 거취가 불안해진 상태로 종교회의 참석을 위해 먼 길을 떠나게 되고, 내심 수도원장의 지위를 노리던 로버트 부수도원장이 수도원장 대행을 맡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전 재산을 내놓고 수도원에 노년을 의탁하기로 한 영주 거베이스 보넬이 독살당하면서 수도원은 삽시간에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독살 사건에 캐드펠 수사가 제조해 병자들을 치료하던 ‘수도사의 두건’이라는 약초가 사용된 것이 밝혀지면서 캐드펠은 이 사건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사건을 조사하던 캐드펠은 독살당한 영주의 아내를 보고 충격에 휩싸이는데…….
잉글랜드와 웨일스 간 접경지대에서 벌어진
두 지역 간의 갈등과 복잡한 가족사가 얽혀 불러온 비극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수도사의 두건》(원제: Monk’s hood)에는 시리즈의 주인공 캐드펠 수사의 과거가 드러난다. 독살 사건에 희생된 영주의 아내 리힐디스가 바로 캐드펠 수사가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기 전 그의 연인이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의 사랑을 노년이 되어 만난 재회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보넬을 살해한 범인으로 리힐디스가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 에드윈이 지목되고, 시간이 흐르며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복잡한 가족사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웨일스는 잉글랜드의 한 구성국이지만 잉글랜드의 치세와는 별개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언어 및 사회문화적 관습을 지니고 있었다. 캐드펠 수사 역시 웨일스 출신으로, 웨일스어 통역이 필요한 상황에 투입되곤 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두 지역 모두를 이해하고 있던 캐드펠 수사는 결국 웨일스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다채롭고 생생한 캐릭터의 매력과
인간 감정에 대한 설득력 있는 통찰이 돋보이는 수작
이 작품에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독보적인 매력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특히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매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신에게 귀의하였지만 치열하고 드라마틱했던 과거 젊은 시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캐드펠 수사, 경건한 신심 외에도 지극히 인간적인 시기, 질투, 욕망 등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수사들, 리힐디스의 아들 에드윈과 동생 에드위의 우정과 용기, 증오에 휩싸여 살인을 저지르고 두 번째 살인까지 저지를 뻔했지만 후회하고 속죄하는 범인 등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다양한 캐릭터들이 긴박감 넘치게 펼쳐내는 이 이야기는 페이지 터너로서 엘리스 피터스의 재능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라고 보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