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한국학 제1물결, 제1.5물결, 제2물결: 너무나 혼성적인
이 책은 서양 선교사가 선교의 목적으로 수행한 한국에 대한 앎에의 의지를 근대한국학 제1물결,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지식-권력으로서 일본 학자의 조선학 연구를 제1.5물결, 조선 학자의 조선학 연구를 제2물결로 지칭하면서, 이 세 물결이 중첩되고 서로 밀고 당기면서 만들어내는 근대한국학의 형태와 무늬를 그린다. 근대한국학이 한국인의 고유한 관점으로만 형상화되지 않았을뿐더러, 한국다움이나 한국적인 것, 한국과 한국인을 이해하기 위한 근대한국학의 계보에는 서양 선교사의 오리엔탈리즘과 제국주의, 일본 학자의 식민사관, 그리고 이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던 조선인 학자의 ‘과학적 방법론’(실증주의)에 대한 강박, 서양 및 일본 따라 하기, 지적 방황이 모두 새겨져 있다.
■ 근대한국학의 출발, 오리엔탈리즘과 서구우월주의로 점철되다
근대한국학을 발명한 주체는 프랑스의 가톨릭 선교사들이었다. 샤를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는 프랑스 선교사들과 조선 가톨릭 신자들의 고난과 순교 이야기를 기록한 책으로, 서두에서 프랑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선 역사와 문화를 간략히 소개한다. 샤를 달레의 조선 이해에는 오리엔탈리즘과 기독교 문명의 우월성, ‘선교사 제국주의’의 시각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병인양요에서 프랑스 함대를 안내한 이는 프랑스 선교사 리델이었다), 이것이 문제적인 이유는 식민시대 일본 관학자가 이러한 견해를 타율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 등의 식민사관으로 변형, 반복한다는 점에 있다. 개신교 선교사들 역시 한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진보사관에 입각한 서구우월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독교 선교사들의 국제적 네트워크로 기능한 학술 잡지들은 일본 언론매체와 활발히 교류하며 한국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교환했다. 또한 한국의 언어문화뿐 아니라 자연과 환경을 서양 과학의 보편적 체계로 포섭함으로써 근대적 ‘앎과 지식에의 의지’를 발현했다. 저자는 서양 선교사들이 발명한 한국학은 이후 일본 관학자들과 조선 지식인이 참조했다는 점에서 근대한국학의 출발이자 주요한 요소로서, 결코 무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 식민지 지배를 뒷받침하는 ‘앎과 지식’
일본제국 인류학자와 민속학자의 조선 민간신앙 연구는 역설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라는 제국의 사명을 뒷받침하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와 관학 아카데미가 협업한 대표적 성과 중 하나는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 간행이다(1932~1938). 『조선사』는 “일본 관학자들이 창출ㆍ축적한 조선학 연구”로서, 실증사학의 방법론이 구현되었다. 실증사학은 식민지 시기 일본 관학자들이 견지한 연구 방법론으로, 그들이 가르친 경성제국대학의 조선인 제자들에게 전수되었고, 해방 이후 한국 역사학계에도 장기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실증주의는 인문사회과학 방법론으로서 그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바 있으며, 특히 식민시대의 실증사학은 과학적 방법론을 표방하며 현실참여적 역사의식을 억제하고 식민사관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 일본 관학자와 조선 지식인의 결합과 공모: 앎과 지식의 식민성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인』(1921)과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조선사 길잡이』(1936)는 조선총독부가 의뢰하고 일본인 관학자가 실천한 ‘식민지 한국학’의 결정판이자, “조선 통치를 위한 지식-권력의 길라잡이”다. 다카하시 도루는 조선반도의 지리학적 특성이 사상의 독창성 결여, 사대주의와 정체성(停滯性), 순종 의식을 낳았다고 평가하는데, 나중에 조선인 학자들이 이 지리결정론, 문화본질주의를 그대로 따라 했다는 점은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다카하시 도루의 경성제국대학 제자 조윤제는 스승이 『조선인』에서 범주화한 조선인의 특성을 재연하기라도 하듯 ‘은근과 끈기’로 한국인을 규정하기도 했다.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조선사 길잡이』는 조선의 “오천년 역사를 ‘발전’과 ‘계몽’에 이르기 위한 필연적 과정으로 종합”하는 식민사학의 압축판이다. 이 책은 일제의 패망으로 생명이 다하지 않고 약 20년 후에도 지속되는 놀라운 운명을 보여준다. 1963년 유엔 국제기구인 유네스코가 한국 역사를 전 세계에 소개하기 위해 간행한 『짧은 한국사』(A Short History of Korea)의 원본으로 바로 조선총독부가 기획ㆍ출간한 이 『조선사 길잡이』가 번역되어 재활용된 것이다. 저자 육영수는 한국 학계에서 이 사건에 침묵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경성제국대학 일본 관학자와 그들에게 배운 한국인 학자 간의 암묵적 공모를 의심한다. 이 암묵적 공모는 근대한국학 담론의 엄연한 현실이다. 근대한국학 담론을 제대로 알고 성찰하는 것은 “앎과 지식의 식민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