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MBTI 대신 생활기록부다!
완전무결한 생기부를 책임지는 쌍둥이 남매의 등장
‘전 국민 생애 궤도 추적제’의 지침으로 입시는 물론 취업과 결혼에도 생활기록부를 필요로 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과거의 잘못을 감추고 떵떵거리며 사는 몇몇 유명인을 떠올리며, 생기부를 공개하는 것에 사람들은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물론 그 여파가 자신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근데 아빠는 궁금한 게 있다? 다함이는 안 그러잖아. 다정이 너랑 똑같이 다 아는데도, 잘 숨기고 백등 안쪽으로 들어가질 않잖아. 그런데 우리 다정이는 왜 자꾸 욕심을 낼까?” (13~14쪽)
그런 세상이라면 생기부 한 줄 한 줄이 소중할 텐데, 오히려 남들 눈에 띄지 않고 가늘고 오래 사는 게 목표인 고등학생들이 있다. 쌍둥이 남매 성다함, 성다정은 비범한 두뇌를 갖고 태어났지만 가진 능력을 절대 티 내지 말라는 아버지의 현실 조언에 누구보다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남동생 다정이 실수 아닌 실수로 전교에서 유일한 수학 시험 백 점을 맞아 주목을 받고, 이를 나무라던 쌍둥이의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쓰러지게 된다.
원무과에서 영수증을 받아 든 다함과 다정은 직접 병원비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좌절한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그들은 한 가지 묘수를 떠올린다. 바로 억울하게 적힌 생기부를 고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 의뢰를 받는 것. 의뢰인의 생기부를 고치기 위해 필요한 건 오로지 쌍둥이의 천재적인 능력 그리고 ‘정성다함 생기부수정단’이라는 이름뿐이다.
‘기록도 편견이 될 수 있다’
올바르게 누군가를 이해하는 법
의뢰를 해결하는 다함, 다정 남매의 스펙터클한 모험에 빠져들다 보면 자신의 생기부도 고칠 데가 있는지 한 번쯤 떠올리게 될 것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의뢰인들의 생기부를 보며 기함할 수도, 자신과 닮은 점을 발견해 공감할 수도 있다. 그러는 한편 혈액형부터 MBTI까지, 그동안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나눴던 대화 주제들이 떠오를 수도 있다. ‘너는 ~ 라서 그렇구나’ ‘나는 ~ 니까 이런 게 더 좋아’. 그렇게 수많은 기준과 유형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잘 오해해왔을지도 모른다.
“비협조적, 신경질적, 이기적, 불손.”
다함이 소리 내어 의뢰인의 생기부에 형광펜으로 칠해진 글자를 읽었다. 마주 앉은 의뢰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다정은 빠르게 다른 학년의 내용을 확인했다. 너무 평범해서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영혼 없는 칭찬뿐이었다. (27쪽)
다함과 다정의 세계는 생기부를 마치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처럼 상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이에게는 생기부가 단순한 기록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과거에 내 모습이 그랬다고 지금도 그럴 거라 생각하는 것은 차라리 오해에 가깝다. 정말 몇 줄의 기록이, 몇 가지의 유형이 현재의 우리를 잘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알아가는 데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혹 쉽게 판단하지는 않는지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정성다함 생기부수정단』은 생기부라는 연령 불문 친숙한 소재만으로도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오갈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이 현실의 진짜 ‘생기부’에 도움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밥 먹듯 생기부를 봐야 하는 학생들에게, 나의 옛 모습이 한 번쯤 궁금해진 어른들에게 누군가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되어줄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