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공간’이라는 그 시대의 화두(話頭)
1980년대 신군부정권에 맞서 자유와 민주를 외쳤던 그 시대, 그 공간과 환경 속에서 자유공간 확장을 위하여 홍안서생들이 문화예술적 신춘新春 인연을 맺었다. 1981년 2월 11일, 우리는 3ㆍ1만세운동의 발상지 탑골공원에서 ‘자유공간’이라는 제호로 동인 시집을 발간하기로 하고 선언문을 발표했다.
창간호는 동인의 오랜 도반 권성완이 재래식 뒷간에서 종이에 군홧발 자국을 내고 ‘에이 썅 누가 밟았어 자유공간’이라고 써서 표지를 만들었다. 권성완은 ‘자유공간’ 글씨의 조형성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화가의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1983년 12월 자유공간 2집. ‘Corea 야생과 아이러니’는 김형식과 석승징의 합작품으로 우리 조국의 정체성을 직시하면서 그 시대의 아픔을 절규했다. 기독교적 사관을 몸소 실천했던 김종인은 ‘암울한 죽음’을 통해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독특한 시적 양상을 차용하여 선험적 죽음을 소환하여 삶의 귀중함을 역발상으로 보여주는 시편들을 선보였다.
1984년 10월 자유공간 3집. 김형식은 자유공간 창립 축시 ‘여인아 너의 이름을 부르노라’를 발표했다. 3집부터 참여한 이철영 특유의 서정시는 시동인지의 문학적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계기가 됐다. 반면, 노동자 중심 민중정서, 현실 참여시와 보편적 시민 위주의 관조적 순수시와의 상충을 놓고 열띤 토론이 펼쳐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86년 2월, 자유공간 4집. 인간의 순수성 회복, 약자들의 삶에 대한 옹호와 사랑, 불의에 대한 저항, 분단을 극복하는 평화통일 지향, 공동체 삶으로서의 연대 등 시대적 숙제를 실천하지 못한 울분을 고백하며 다시 대장정을 기약하는 시인의 좌표를 ‘살아남기’라는 화두로 제시했다. 조흥은행에서 퇴사한 손영호는 월간 시인통신사 한국시집도서실에서 일하며 4집을 편집했다.
1986년 9월, 자유공간 5집. 시대의 투사 의식을 성숙시켜 부조리한 사회의 모순 구조 속에서 실천양식을 찾아보자는 뜨거운 열망과 간절함으로 탄생한 다양한 현장의 시편들로 채웠다. 이철영의 ‘사당동1’ 외 7편의 시는 80년대 서민의 삶에 집중해 순수시에서 현실 참여시로 넘어가는 지점이기도 했다. 그는 시인의 영안靈眼으로 다가올 다른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았다.
1988년 4월, 자유공간 6집. ‘광장에서’ 외 5편을 발표한 김형식은 사회적 모순과 그 시대정신을 시를 통해 경고했다. 이철영은 ‘서울 편지1’ 외 4편을 발표했는데, 아프리카 북단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또 다른 삶의 정서를 고백했다. ‘87 서울 수첩’ 외 3편을 발표한 손영호 역시 분단과 6월 항쟁, 진정한 민주 국가를 꿈꾸는 시편들을 발표했다. 김종인의 ‘통일동이’는 일제 강점기 시인 이상의 시각적 도안 처리와 같이 남남북녀의 만남을 통일동이 탄생으로 연결하는 회화적 시를 발표했다. ‘철조망’ 외 9편의 시를 발표한 석승징은 남북 분단 상황, 전쟁과 휴전 그리고 진정한 평화를 추구했다. 87년 12월 5일 목사 김종인의 결혼 축시 ‘그대들 맑은 영혼의 결합을 위하여’도 발표했다.
1990년 6월, 자유공간 7집. 이철영은 트리폴리에서 냉혹함과 열정 사이 시인 특유의 시를 써내려갔다. 석승징은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탁류 속에서도 여전히 경종을 울리는 시를 발표했다. 손영호는 노동의 가치와 ‘영화 파업전야’ 제작진 전격 체포 작전과 인권유린 현장을 시화해 대한민국 현실을 고발하며 ‘영화 계엄령’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에게 바치는 헌시를 썼다. 또 석승징의 결혼식을 축시 ‘사랑의 기적 소리’로 축복했다. 김형식은 ‘우리의 아침은 새로웠다’를 통해 부르주아 자본가들에게 열악한 노동자의 현실을 대변하며 시로 울분을 토하는 시인의 저항이 아직 살아있음을 보였다. ‘병원에서’ 외 1편을 발표한 김종인 목사는 생활고와 병마로 이중 삼중 겪는 괴로움을 시에 드러냈다.
자유공간 시동인 중에 목회의 길을 걷던 김종인 목사는 2009년 병마에 시달리다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은행원이던 석승징은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철학을 공부해 2024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철영은 서울에서 출판 사업을 하다 횡성으로 귀촌해 로스터리카페 ‘커피시계’를 운영하고 있다. 김형식은 1990년대 초 부천노동자문학회 등에서 활동하다 2000년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 제1회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었고 2006년 시집 《바늘구멍에 대한 기억》을 출간했다. 2010년부터 보건의료노조에서 신규 조직화 사업을 담당했다. 손영호는 영화감독으로 변신해 영화 ‘최후의 만찬’ ‘날개’ ‘아가페’ 등을 만들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자유공간 시동인들은 ‘자유공간’이라는 화두로 따로 또 같이, 여전히 새로운 자유공간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