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 누구나 고민하지만 아무도 답을 내지 못한 물음
버트런드 러셀이 택시에 탔을 때 기사가 물었다.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당대 최고의 철학자인 러셀조차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러셀이 아니라 예수 혹은 소크라테스였다면 어땠을까? 과연 그 짧은 시간 안에 인생에 관해 완벽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있는지 혹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의문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삶의 의미는 누구나 고민하는 보편적인 질문이다. 그래서 이 질문은 커다란 물음, 즉 ‘빅 퀘스천’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여러 성현이 나름의 해답을 제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으며 기독교에서는 신과 내세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뮈는 삶은 부조리하다는 허무주의를 역설했다. 오늘날 자기계발서나 대중 심리학서는 성공과 행복이 인생의 전부인 양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이 과연 삶의 의미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유쾌한 딜레마 여행》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삶의 의미’라는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질문 자체에 물음을 던진다. 왜 이 질문은 어렵고 심오하게 여겨지는 것일까? 그것은 이 질문이 겉보기와는 달리 한 개의 질문이 아니라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있는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저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걸까? 아니면 더 큰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것일까?’ 등등 삶의 기원, 목적, 가치에 관한 여러 질문을 묶어놓은 복합 질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질문은 단답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데도 많은 이들은 삶의 의미는 행복이다, 성공이다, 신이다, 하는 식으로 ‘인생의 의미는 □□이다’의 네모 칸을 채울 수 있는 하나의 답이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즉 문제의 난해함은 복합적 질문에 대해 단답형 대답을 찾는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되는데,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가 신비롭고 형이상학적인 진리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단답형의 초월적 진리를 찾아내기만 하면 답변은 완료되고 인생의 모든 비밀은 풀리게 된다고 착각한다.
저자는 삶의 의미에 대한 탐색이 초월적 진리를 찾는 종교적, 형이상학적 탐구라는 전제를 부정하고, 일견 심오하게 보이는 커다란 질문을 삶의 다양한 의미를 다루는 작고 구체적인 질문들로 해체하여 분석하는 전략을 취한다. 삶의 의미란 선택받은 소수만이 명상과 계시, 혹은 평생의 철학적 탐구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신비한 진리가 아니며, 상식적 증거와 이성적 논리만으로도 탐색이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신이 정해준 목적이 우리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는가?
“사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란 질문 자체는 인생을 살 만한 어떤 의미가 있다는 판단을 전제로 한다. 즉 중립적이기보다는 얼마간 편향된 물음이다. 정반대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 책의 해제를 쓴 로쟈의 문제 제기처럼, 만약 인생에 의미란 것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면? 저자의 모든 논의는 헛소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사람 중 일부는 인간이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우주의 맹목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관점과 결부되어 있다. 카뮈 같은 이들은 우주에 목적이 없다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에 절망하고 고뇌에 사로잡힌다. 신이 없다면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러한 반응을 논리적 타당성이 결여된, 단지 비관적 성격에서 비롯된 ‘호들갑’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신이 부여한 목적이 없다는 전제로부터 허무주의라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만화가 찰스 슐츠의 스누피처럼 오히려 주어진 목적이 없기 때문에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이 우리에게 정해준 목적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이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저자는 프랑켄슈타인의 비유를 통해 이 가설을 기각한다. 프랑켄슈타인이 집 청소만 시킬 목적으로 생명체를 만들었다. 이 피조물은 창조주가 정해준 목적을 따르는 것이 나을까,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나을까? 대부분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실험을 통해 바지니는 창조주가 부여한 목적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우리 인생의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역설한다. 신의 존재를 반증하기보다는 신이 있다 한들 인간 삶의 의미에 영향을 주지 못함을 논증한다는 점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보다 더 탄탄한 논리를 펼쳤다고 볼 수 있다.
바지니는 인간의 기원에 관해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지지하지만, 진화론이나 이기적 유전자론 같은 생명 기원에 대한 과학적 발견이 삶의 의미를 알게 해준다고 보지는 않는다. 과거 기원을 알면 현재 상태와 미래 전망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발생론적 오류에 불과하다. 별다른 목적 없이 생겨난 돌조각이 인간에 의해 목적을 부여받을 수도 있듯, 최초에 목적이 없었다고 영원히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생명이 목적 없이 발생했다는 자연주의적 믿음이 인생의 목적이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과학이 다루는 사실의 문제와 삶의 의미라는 가치의 문제는 층위가 다르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과학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고 해도 인생의 문제는 조금도 건드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의미에 관한 여섯 가지 환상 - 행복, 성공, 쾌락, 이타주의, 대의명분, 해탈
다음으로 저자는 많은 사람이 삶의 의미라고 믿는 후보들, 즉 이타주의, 대의명분, 행복, 성공, 쾌락, 해탈이 왜 삶의 의미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사고실험과 일상적 사례를 통해 논파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영화 〈워터프론트〉, 〈죽은 시인의 사회〉, 소설 《멋진 신세계》, 희곡 《갈매기》, 케이트 부시와 러시(Rush)의 팝송 등 대중문화 소재들은 철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책에 몰입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행복과 관련해 영화 〈매트릭스〉에 영감을 준 ‘경험 기계’가 소개된다. 경험 기계에 접속하면 그 안에서 일상적인 삶과 똑같이 느끼면서 살 수 있다. 어떤 경험을 할지도 미리 설정해둘 수 있으므로 확실한 행복이 보장되는 셈이다. 당신이라면 이 기계에 들어가 남은 생애를 살겠는가? 대부분은 그러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한다. 이는 우리가 인생에서 행복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성공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성공이 전부라면 우리가 목표했던 성공을 이룬 다음에는 무엇이 남는가? “성공을 이루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그럼 죽지 그래?”라고 대꾸할 수 있지 않은가?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라는 격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순간적인 쾌락에 전념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매일 아침마다 아직 죽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인생을 살 가치가 있도록 만들기 위해 새로운 쾌락을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쾌락의 삶은 일종의 고역이 된다.
이 밖에 우리가 잘 아는 유명인들의 사례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타주의, 대의명분, 해탈에 관한 테레사 수녀, 대처 전 총리, 팝스타 마돈나의 발언을 도마 위에 올리고는 논리적 분석을 통해 내적 모순을 도출한다. 단적인 예로 테레사 수녀는 봉사를 역설했다. 그러나 만약 남을 돕는 일이 삶의 의미라면 이타주의자만이 유의미한 삶을 살 수 있으므로 도움받는 사람은 이타주의자의 베푸는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된다.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은 어떻게 유의미할 수 있는가?
얼핏 그럴듯해 보이던 삶의 의미 후보들을 하나씩 분석해나가며 저자는 이들이 삶의 의미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해 보인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삶의 의미라고 생각해온 후보들이 모두 부적합한 것으로 밝혀졌으니, 그렇다면 결국 인생은 무의미한 것일까?
저자는 그럼에도 인생은 유의미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후보들은 그 각각이 하나의 진리로서 커다란 질문에 대한 완결된 대답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의 단서들이 하나둘 퍼즐 조각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이타주의도 행복도 쾌락도 성공도 그 자체로 해답이 될 수는 없지만, 각각에 담긴 진실의 실마리들을 모으면 퍼즐의 전체 그림을 맞출 수 있다.
테리 이글턴은 《The Meaning of Life》에서 인생의 의미를 삶에서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들을 악기처럼 자유롭고 조화롭게 연주하는 재즈 밴드에 비유한 바 있는데, 이는 줄리언 바지니의 논의를 발전시킨 결과였다. 인생의 의미가 어떻게 재즈 연주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빅 퀘스천》을 읽어보기 바란다. 삶의 의미를 찾는 모든 생각 여행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