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달, 참 밝다』는 오해옥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시인이 시를 통해 상상력을 발현하는 공간은 그의 직업과 무관하지 않다. 간호사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만나는 정서적 사건들을 통해 시가 발화한다. 특히 그가 요양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노인환자들의 생활 모습과 그들의 감정을 시로 형상화시켜 삶의 궁구窮究를 노래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오 시인의 시세계는 노인문제에 관심이 많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유용하다.
오 시인의 시에서 생명성을 노래한 시편들은 그가 병원에서 환자들의 삶을 지켜보는 직업 때문에 특별하게 생명성에 천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생명성에 대한 그의 따스한 시선은 요양병원 노인 등 인간 뿐만 아니라 알을 품는 새, 나팔꽃, 화분의 고무나무, 배롱나무, 자귀꽃, 감자 등 동물성과 식물성 모두에 지극한 마음을 보태고 있다.
오해옥 시인의 또다른 시적 관심은 가족애를 드러낸 시편들이다. 어머니와 조부모, 그리고 손주에 대한 애잔함과 애틋함이 그의 시선에서 묻어난다. 이렇듯 가족애를 보여주는 그의 시는 “작아지는 엄마/커지는 손주” 사이라는 시인의 위치가 시인이 밝혔듯이 ‘샌드위치’처럼 놓여 있기 때문에 위 아래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시적 세계를 탐구하는 오해옥 시인의 이번 시집 『달, 참 밝다』는 그의 시가 시인 자신을 바라보기보다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서정시가 지녀야 할 덕목을 잘 갖추고 있다.
2.
서정시의 가장 큰 특징은 시인의 감정을 드러내보이는 일이다. 다시 말해 서정시는 인간이 호흡하는 다양한 모습을 반영하는데 있다. 그렇다고 가시적인 현상을 형상화 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시인의 감정을 개입시켜 감흥을 주고 있어 주목된다.
오해옥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연민과 측은지심, 그리고 따스한 마음을 담아내는 시편들은 간호사로서 요양병원의 환자들인 노인들의 병환과 관련된 다양한 모습을 형상화시킨 작품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생과 죽음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환자들을 통해 존재의 의미와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오해옥 시인의 시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앙상한 가슴의 뼈
뜨락의 반송 같아 눈이 부시다
노을에 너무 목말라
이슬 몇 알 맛보고 싶다
울타리 위 갓 여문 호랑이콩
후회하는 소리 들릴 때도
밖으로 실려 나온 발은 시리다
일생도
하루를 사는 일과 같아서
애달파도 서글퍼도
눈물은 보이지 말 일이다
뒤돌아오는 요양원 모퉁이
깔딱대는 깍지 속 씨앗들
놀란 눈초리 무시하고
가을바람 따라 추는 춤
떠밀린 휠체어
나들이에
덜컹대는 심장소리 들린다.
- 「슬픔의 출구」 전문
화자는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요양원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환자가 “앙상한 가슴의 뼈”를 드러낸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야위어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키가 작은 “반송 같아 눈이 부시다”고 한다. 날씨가 추운 날이었을까. “밖으로 실려 나온 발은 시리다”고 한다. 산책길을 다녀오며 “요양원 모퉁이/깔딱대는 깍지 속 씨앗들”을 본다. 씨앗은 새로운 생명을 펼쳐나갈 미래의 생명으로 화자는 씨앗들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하기에 이른다. “일생도/하루를 사는 일과 같”다는 인식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요양원의 환자들은 노인들이다. 노인들도 한때는 씨앗과 같은 존재였지만 어느 순간 노인이 되어 요양원에 남은 생을 의지하고 있음인데, 누구나 언젠가는 삶을 마감하기 마련이지만, 죽음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휠체어로 상징되는 환자들의 모습에서 슬픔을 읽는다. 그러므로 화자는 “떠밀린 휠체어/나들이에/덜컹대는 심장소리 들린다.”고 말하는 것이다. 휠체어의 주인 역시 “덜컹대는 심장소리”로 의미화된 삶의 의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병실에서」 또한 요양원 환자의 일상을 노래한 작품이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일어나고
할매는 이 땅에서
이렇게 살았다
땅세 좋은 곳 지렁이
자갈밭 속 자갈의 심정
어이 알리
어제처럼
남은 내일을 위해
떨어지는 링거 방울
바라본다.
- 「병실에서」 전문
이 작품은 화자가 시적 대상이 아니라 병실에 있는 ‘할매’이다. 할매의 지나온 삶이 “넘어지고/엎어지고/자빠지고/일어나고” 역경과 이를 극복하는 세월이었음을 3인칭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처럼 할매의 지난한 삶을 “땅세 좋은 곳 지렁이/자갈밭 속 자갈의 심정”을 누가 알겠는지를 묻는다. 할매를 ‘지렁이’와 ‘자갈 밭 속 자갈’로 비유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할매가 병원에 와 있는 이유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의지’의 반복에서 몸이 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방식은 할매가 삶을 살아낸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병실에서 자신의 몸에 “떨어지는 링거 방울/바라”보는 처지이지만 “어제처럼/남은 내일을 위해” 살아가고자 한다.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할매’의 삶을 투시하고 있는 것은 병원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삶의 과정과 방식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시적대상인 할매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것으로 열심히 살아온 노년의 환자에 대한 연민이 스며있다.
「퇴원 채비」는 병원에서 마주하는 환자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유한한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퇴원 한단다, 요양원으로
산소포화도 70% !!
자극에 대한 반응? 사알짝
말이 되지 않는 “말” 퇴원?
갸우뚱대는 머리를 똑바로
그래도 갸우뚱
근무 인계를 받다
○○○씨 어쩌고 저쩌고
근무인계 중이다
○○○씨 가신 것 같아요
퇴원 채비인가
홀로 잠든 섬처럼
파도소리 요동친다
핏기 사라진 영혼조차
이상하게도 섫다
정리되지 않은 靈肉
삶을 떠나는 그대여
어제와 오늘 사이일 뿐.
- 「퇴원 채비」 전문
서정시는 삶의 여러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재에 대해 깊이 천착하는 문학양식이다. 그러므로 삶이 마감되는 죽음 앞에서 삶의 본질을 투시하게 된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죽음을 목격 확인하는 과정을 형상화시킨 이 작품은 파문 이는 화자의 감정을 “홀로 잠든 섬처럼/파도소리 요동친다”고 하며 자주 대하는 타자의 죽음이지만 매번 낯설다. 요양병원에서 요양원으로 퇴원하려는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70%를 확인한다. 산소포화도 70%이면 위험한 수치이다. 화자는 “핏기 사라진 영혼”으로 상징된 환자를 바라보며 슬픔의 감정에 휩싸인다. 아직 이승에서의 삶을 정리할 것이 많은 환자의 죽음에서 화자는 “어제와 오늘 사이일 뿐.”이라고, 지극히 짧은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영원에 비춰볼 때 찰라와 같은 시간을 머무르다 가는 존재의 슬픔이 읽혀진다.
이 작품의 시제가 ‘퇴원 채비’인 것은 애초에 요양병원에서 퇴원하여 요양원으로 가고자 했던 시적 대상이 요양원에 가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상황을 ‘퇴원’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슬픔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시인의 슬픔이 이 작품의 배면에 짙게 드리워 있다.
오해옥 시인의 생활의 현장인 요양병원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지닌 존재들이 일생에서 단 한 번 뿐인 죽음은 일상이 될 수 없다.
이 밖에 일상이면서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정서적 사건들의 현장인 요양병원의 모습은 다양하게 형상화시켰다. 「찰지다」에서는 기억을 잃어버린 치매 환자에게서 인간이 지닌 상식을 놓아 본능만 남아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돌다」에서는 이석증 환자의 고통을, 「견뎌낸 아침」은 전염병으로 자식을 잃은 사람들의 비탄과 슬픔을, 그리고 「코로나 동침」은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의 불안의식과 더불어 코로나를 “어차피 맞닥뜨리게 한/지구의 숙제”라 하여 인간의 탐욕으로 배태한 질병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삶의 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모색하고 있다.
3.
오늘날 기술자본문명은 유사 이래 최첨단으로 치닫고 있다. 전인미답의 우주를 향해 욕망을 펼쳐가고 있고 편리와 이익을 도모하는 AI는 통제불능으로 오히려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희망과 불안한 미래를 예고한다. 이처럼 여러 가지로 도전받고 도전하고 있는 인류는 그럼에도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점에 오해옥 시인은 인간의 생명성을 자연과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에서 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들락거리는 어미 새
우체부 다녀가지 않은 적막 공간에
다섯 개의 알 낳았다
그날 이후
무거운 소포라도 던져 놓을까
“새집입니다”, 포스트잇으로
우체통 입구를 가로 막았다
집 짓는 새보다 장보러 간
소리개가 무섭다고
어미새 부부 행여 알 훔쳐 갈까 봐
가까운 전봇대 위에 올라 망을 보니
오늘 아침 우체통 틈새로 노란 주둥이들
갓 핀 개나리꽃처럼 벌렸다
소식 없던 우체통은 그대로인데
새 소리 알림은 방전 직전의 휴대폰
열어보니 당차게도
손자의 첫걸음마 동영상이다.
- 「비상 준비」 전문
우체통 안에 새가 다섯 개의 알을 낳았다. 화자는 우체부가 소포를 우체통에 넣으면 새알이 다칠까 봐 “포스트잇으로/우체통 입구”에 ‘새집입니다’라고 써서 붙여놓았다. 그러자 “어미새 부부 행여 알 훔쳐 갈까 봐/가까운 전봇대 위에 올라” 소리개를 감시한다.
이 작품에서는 두 가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포스트잇에 ‘새집입니다’라고 써서 우체통에 새가 살고 있음을 알림으로 해서 혹시라도 우체부가 소포를 새집 안에 넣을 수도 있는 사고를 방지하게 위한 생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과 하늘을 날며 호시탐탐 새집을 표적으로 삼는 소리개로부터 알을 지키려는 어미새부부의 모습이 그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생명에의 경외심을 보여주는 마음들이 곧 태어날 새끼새를 지켜주고 있다. 그러자 “오늘 아침 우체통 틈새로 노란 주둥이들/갓 핀 개나리꽃처럼 벌렸다”. 마침내 알에서 부화한 새로운 생명들이 온전하게 태어난 것이다. 우체통에서 새가 알을 낳고 부화하는 동안 우체통을 사용하지 못해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휴대폰에 “손자의 첫걸음마 동영상”이 전해온다.
이 작품은 생명을 지키려는 인간과 자연의 숭고한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는 따스한 메시지를 전한다. “방전 직전의 휴대폰”으로 상징된 생명의 위태로움을 “손자의 첫걸음마”로 위기를 극복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서정시는 적절한 비유를 통해 주제를 강조할 때 메시지가 강화된다.
시인의 동물의 생명성을 노래한 앞의 작품과 더불어 식물의 생명성에도 관심을 보인다.
서리 오기 전 파랑 보라 분홍 나팔꽃들
줄기의 남은 진액을 빨고 있다
더 찬란한 치맛자락 바람 따라 흔들어
틈나면 울타리 기어올라 겉치레한 얼굴 벙긋
머지않아 너의 화냥기 꺼먼 눈알이 될 걸
덜그럭 의치소리 낼 걸 나는 알지
배배꼬여 껴안는 하늘 외줄 타는 링거로
촉촉하게 적신 물 마른 대궁이
나팔꽃 말라 비틀어져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시끄럽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 「나팔꽃」 전문
이 작품은 구조적으로 비교를 통해 상호작용을 묘파하고 있어 짧은 형식이지만 단조롭지 않다. “서리 오기 전” 생명활동을 왕성하게 할 수 있는 시기에 “파랑 보라 분홍 나팔꽃들” 아름답게 피운다. “더 찬란한 치맛자락 바람 따라 흔들”기도 한다. 그런데 “머지 않”은 때에 ‘서리 내리면’ ‘화냥기’도 ‘꺼먼 눈알’이 될 것이라고 한다. ‘화냥기’는 울긋불긋한 꽃들과 치맛자락이 보여주는 왕성한 생명력을 나타내고 ‘꺼먼 눈알’은 새로운 생명의 씨앗으로 미래의 화냥기를 배태하고 있다. 여기에서 “덜그럭 의치소리”는 서리 맞아 잎과 줄기가 말라버린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배배꼬여 껴안는 하늘 외줄 타는 링거”는 서리 맞아 죽은 메마른 줄기를 의미한다. 이처럼 이 작품은 ‘생명’과 ‘죽음’을 명징한 비유를 통해 생명성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고무나무 사람·2」은 고무나무와 당뇨로 다리를 절단한 여자를 비유하며 생명성을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불 안 붙인
담배 한 개비 꺼내 문 여자
엘리베이터 앞에 외발로 서있다
어딜 가려는지 안 봐도 안다
수인사 나누기 전
반쪽이 말라버린 고무나무
간병사는 마사토를 쏟아
죽은 뿌리를 잘라낸다
당뇨로 한 다리 절단한 여자
심통은 그저 담배 한 개비 꺼내 무는 것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진 다리를 찾으러 간다고
태어남과 돌아감이 한 곡선
화분에서 헐거워진 고무나무 이마를
쓰다듬고 있다.
- 「고무나무 사람·2」 전문
서정시는 보다 적확한 이미지와 비유를 통해 주제가 구체화된다. 엘리베이터 앞에 “반쪽이 말라버린 고무나무”, “화분에서 헐거워진 고무나무”는 시각이미지로 그려낸 죽어가는 고무나무이다. 화자는 단순하게 말라버린 고무나무를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당뇨로 다리를 절단한 여자’의 절망과 더불어 동일성에 아프게 다가가고자 한다. 한쪽 다리를 잃은 여자는 무척 절망에 빠져 상심하여 “그저 담배 한 개비 꺼내 무는 것”이 심통부리는 것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사라진 다리를 찾으러 간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마음을 가눌 수 없기 때문에 이상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전개의 한켠에서 간병사가 엘리베이터 앞에 놓여있는 화분의 죽어가는 고무나무의 마사토를 쏟아내고 죽은 뿌리를 잘라낸다. 그래야만 고무나무를 살려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 작품은 반쪽이 말라버린 고무나무와 한쪽 다리를 절단한 여자를 ‘반쪽이 말라버린’ ‘한쪽 다리를 절단한’ 상태로 배치하여 ‘불구’라는 동일성에 이르게 하여 생명의 아픔을 강조하고 있다.
이밖에 생명성을 노래한 시편 「붉은 옷」은 배롱나무의 붉은꽃을 “창백한 하늘에게/땅이 올리는 피”를 바침으로써 창백한 하늘에게 수혈하는 의식으로 노래하고, 「용추곡」에서는 “지나가는 나그네에게/아양질 눈길 보내볼까”라고 형상화하여 원초적인 생명성을 그렸다. 「어느 꽃」에서는 “도도함도/오만도/아름답다”며 “솜털 날려 날아”올라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작은 꽃의 생존본능을, 「끼니」에서는 “배꼽 도려내어” 번식하는 감자를 “예수의 갈비를 닮았다”며 생명성을 진정성 있게 그렸다.
4.
많은 시인들이 가족사, 또는 가족애를 펼쳐보이는 시를 쓴다. 시인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절실할 때 진정성 있는 시적 정서를 유발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시편들은 대부분 아프기도 하지만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발로에서 시적 발화를 한다. 오해옥 시인의 가족사와 가족애를 드러낸 시편에서는 그리움과 애틋함의 정서가 대부분이다.
어릴 적 할머니 심부름 이야기
10km 걸어가면 술도가酒都家가 있었다
“경주댁”은 울할머니
도갓집 할머니 택호
푹 익은 노각 절반으로 잘라 씨를 오려내고
긴요한 편짓글 적어 넣고
뚜껑 닫아 무명실로 동여매어
도갓댁에 전하는 심부름
신작로 돌멩이 차며 한나절을 갔지
답글과 함께 박하사탕 몇 알 빨며
되돌아오는 길은 금방이었다
경주댁을 오가며 우체부 역할했다
편짓글의 내용은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 「경주댁 할머니」 전문
어릴 적 할머니의 심부름에 관한 이 작품은 할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일 것이다. 할머니의 택호는 ‘경주댁’으로 유년시절 “푹 익은 노각 절반으로 잘라 씨를 오려내고/긴요한 편짓글 적어 넣고/뚜껑 닫아 무명실로 동여” 술도가[酒都家]에 전하러 갔다. 한나절이나 걸어가는 먼 길을 혼자 가는 심부름은 심심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돌멩이 차며 갔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먼 길을 가는 일은 무료하기도 했겠지만 “돌멩이 차며” 가는 길은 불만의 표시로도 해석할 여지가 있다. 술도가와 편짓글을 주고 받는 관계라면 그 시절 화자의 집안 역시 부유한 집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편짓글을 전하고 그 자리에서 답글을 받아 되돌아오는 길은 금방이었다고 하는 것은 “박하사탕 몇 알” 얻어먹었기 때문이다. 심부름 가는 길과 되돌아오는 길의 감정이 전혀 다르게 전해진다. 할머니의 소녓적 모습이 천진난만하게 그려진 이 작품에서 “편짓글의 내용은 모른다/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라는 대목에서 더욱 순진하고 순수한 어린 할머니의 모습이 느껴진다.
「하루」는 어머니와 시인, 그리고 손주 등 3대가 살아가는 현재를 그린 작품이다.
엄마는 오늘 등급을 받았다
“노치원 합격증”
작아지는 엄마
커지는 손주
생각을 키우는 손주
떠나는 생각을 잡는 엄마
손주는 미래가 있고
엄마는 오늘만 있을 수 있지
손주 유치원 데려다주고
울엄마 노치원 모셔다 드렸다
난, 바쁘고 맛있는 샌드위치다.
- 「하루」 전문
화자이기도 한 시인의 처지를 샌드위치로 표현하고 있다. 샌드위치는 흔히 위아래 중간에 낀 상태를 말한다. 유치원의 반대 개념인 노치원생인 엄마와 유치원생인 손주 사이에서 “손주 유치원 데려다주고/울엄마 노치원 모셔다 드렸다”는 진술에서 보다싶이 부모와 손주를 돌보는 화자의 처지를 “난, 바쁘고 맛있는 샌드위치다.”라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노치원 합격증”을 받아든 “작아지는 엄마”, “떠나는 생각을 잡는 엄마”는 삶이 위축되고 이별이 가까워지고 있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으며, “커지는 손주”는 “생각을 키우는” “미래가 있”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이 작품은 가족애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로병사의 과정을 깨닫게 하고 있어 의미가 깊다. 이처럼 서정시는 일상의 소소한 정서적 사건들을 통해 존재의 처지를 인식시키며 “난, 바쁘고 맛있는 샌드위치”에서 보듯 인간다운 가치를 발견했을 때 더욱 높은 지점의 의미를 지닌다.
다음의 「달, 참 밝다」는 시인이 자신의 유년의 한 대목을 캡처하여 행복하면서도 즐거운 한때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냈다.
물 찬 놈
알 찬 놈
한 움큼 잡힌 고놈들
볶은 놈, 삶은 놈
인생 맛 모르는 생콩
그래도 콩,콩,콩
쥔장어른 초저녁 잠 틈새
달밤 콩서리
고소함도 짜릿함도
한 때의 노략질
어릴 적 조무래기 동무들
그리워지는 밤
콩 익는 소리
수수 잎 비비는 소리
추억들 꺼내보는 밤
달, 참 밝다.
- 「달, 참 밝다」 전문
서정시에서 언어선택은 작품의 정서를 특별하게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이는 서정시가 ‘사상’과 더불어 ‘정서’의 등가물이기 때문이다. “물 찬 놈/알 찬 놈/한 움큼 잡힌 고놈들” “볶은 놈, 삶은 놈”에서 의존명사 ‘놈’은 본래 남자를 낮추어 부르는 말, 남자 아이를 귀엽게 부르는 말로 쓰인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콩’을 ‘놈’이라고 부른다. 사람에게만 붙이는 ‘놈’을 시작품에서 구사함으로써 낯선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콩을 의인화했기 때문인데, 이렇듯 시적 정서를 환기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을 “인생 맛 모르는 생콩”이라며 화자와 어린 동무들을 호칭하였기 때문이다. 즉 콩과 콩서리를 하는 아이들을 동일화시킴으로써 ‘놈’이라는 의존명사가 귀여움의 의미를 함께 지닌다.
주인이 잠든 사이 달밤에 콩서리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시적 언어를 잘 구사하고, 시의 운율을 살리고 있어 잘 읽히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달이 밝은 날이면 유년의 동무들이 그리워 추억하며 “콩 익는 소리/수수 잎 비비는 소리”를 듣는다.
가족사와 가족애, 그리고 유년을 주제로 한 시편들에서 「다람쥐 이야기」는 시집살이와 종부로 장하게 살아낸 어머니의 삶에서 전통적인 여성성을 형상화시켰다. 「조부님, 돌아오시다」는 근현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받아낸 가족사로 조부님의 제삿날 조부님과 함께 돌아온 가족사의 주인공들을 호명하며 옛일을 현현한다. 「생각 자라다」는 아직 말이 서툰 손주의 원초적인 세계와 사물에 대한 인식의 태도에 성장하는 손주를 대견스럽게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