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죽기 직전 젊은이들에게 들려준
육체의 욕망과 영혼, 삶과 죽음, 현명함, 배움과 지혜 등의 이야기
‘국가의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라는 명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 동료들은 그에게 탈옥을 권유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기꺼이 죽음을 택한다. 그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까? 왜 기꺼이 죽음을 맞으려 했을까?
이 대화편에서 지혜를 사랑하는 자, 즉 철학자는 ‘영혼이 정화된 자’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육체는 영혼을 가두는 일종의 감옥이므로, 참된 철학자는 육체에서 해방되어야 참된 존재(이데아)와 함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지혜를 사랑함(철학)을 통해 이를 깨달았고, 그에게 죽음이란 곧 ‘영혼의 조화’이자 저세상에서 ‘신들과 함께하는 축복’이었다. 그가 죽음 앞에서도 평온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소크라테스는 케베스와 심미아스로 대표되는 젊은이들과 그 죽음 직전의 몇 시간 동안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철학적 물음과 답변을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설령 상대가 자신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더라도 불쾌하게 여기는 대신 친절하고 정중하게 응대하고,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먼저 케베스가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우리의 생명이 선물이라면 어떻게 소크라테스는 살아 있는 동안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연습하는가?’ ‘생명이 소중한 선물이라는 믿음과 육체에서 해방되려는(다시 말해 생명을 버리려는) 바람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가?’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어떻게 죽음에 맞서서 용기를 가질 수 있는지 설명한다. 지혜를 사랑하는 일에 평생 헌신한 사람은 죽음에 직면해서 기뻐해야 하며, 생이 끝났을 때 내세에서 최대의 축복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이 불사함을 입증하기 위해 그 유명한 대립자 순환론, 상기론, 이데아론 등을 제시한다.
반대되는 것들은 다음과 같은 무언가가 있지 않나요? 이를테면 모든 반대되는 두 항 사이에는 두 종류의 생성, 즉 이쪽으로부터 저쪽으로의 생성과 반대로 저쪽으로부터 이쪽으로의 생성이 존재합니다. 가령 더 큰 것과 더 작은 것 사이에는 증가와 감소가 존재하는데, 우리는 하나를 커짐이라고 부르고 다른 하나를 작아짐이라고 하지요? _46~47쪽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지식을 획득했다가 태어날 때 그것을 완전히 잊어버리지만 나중에 감각을 활용해서 이전에 가졌던 지식을 다시 회복한다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 은 본래의 지식을 회복하는 일이 아닐까요? 그러니 배움을 ‘상기’라고 부르는 게 옳지 않 을까요? _62쪽
영혼이 홀로 탐구할 때는 순수하고 항상 존재하며 불사하고 한결같은 대상을 향합니다. 영혼은 이런 대상과 동류이기 때문에, 홀로 있을 때 방해받지 않으면 이런 대상과 늘 함께합니다. 이런 대상을 붙들고 있을 때 영혼은 방황을 멈추며 항상 동일하고 불변합니다. 자신과 유사한 대상과 연합하니까요. 영혼의 이런 상태를 ‘현명함’이라고 하지요?” _73쪽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화려한 색이나 모양 등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이데아에 참여함이다. _184쪽
고전을 찾는 이유, 소크라테스의 시대를 뛰어넘는 질문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가?”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에 선한 영혼과 악한 영혼이 내세에서 어떻게 사는지도 들려준다. 우리는 최선의 세상과 최악의 세상 사이의 중간 세계에 살고 있으며,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사후에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지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영혼 불멸’의 진실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말하고 싶은 바가 아닐까.
소크라테스는 불변하는 지성적 대상과 변화하고 부패할 수 있는 감각적 대상을 구분한다. 즉, ‘몸은 감각적 대상과 닮았고 가깝지만, 영혼은 지성적 대상과 가깝다. 따라서 영혼은 불변하는 것과 닮았다. 영혼은 몸 안에 거할 때 몸과 관계하면서 육체적 본성에 오염되지만,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불사하고 불변하는 영원의 영역으로 갈 수도 있다. 영혼의 이러한 상태를 우리는 지혜라고 부른다. 지혜를 사랑하는 자의 영혼은 죽음 후에 자기 본성에 맞는 곳에 도달하며 거기서 인간의 악을 완전히 제거할 것이다. 따라서 지혜를 사랑하는 자의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되더라도 바람에 흩어져 사라지지 않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영혼을 돌보라”고 말한다. 삶과 맞닿아 있는 영혼을 잘 돌보려면 결국 주어진 삶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고전을 찾는 이유, 소크라테스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 우리에게도 던지는 질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이 불사한다면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시간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을 위해서라도 영혼을 돌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지혜를 사랑함(철학)으로써만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영혼을 육체에서 분리시키고, 육체와 그 욕망에서 벗어날 때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영혼을 돌보라는 소크라테스의 권면이 오늘날 독자들에게 지나치게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어떤 삶이 좋은 삶이고 어떻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몸소 보여준 소크라테스의 열정은 지금 우리에게 웰빙은 물론이고 웰다잉에 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_역자 후기에서
국립아테네대학교 철학박사 오유석 교수의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쉬운 번역과 작품 해제로 만나는 《파이돈》
이 책의 번역은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립아테네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오유석 교수가 맡았다. 고대 서양 철학을 다룬 여러 권의 저서와 번역서를 출간한 정통파 고대 서양 철학 연구자로,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을 비롯하여 이 책 《파이돈》 역시 고대 그리스어 원전을 토대로 번역했다. 옮긴이는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지금 독자들이 읽기 쉽게 가능한 한 쉬운 말로 번역하고자 했다.
고대 그리스어 원전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무엇보다 신경 쓴 것은 상세한 각주와 깊이 있는 작품 해제다. 각주에서는 인명이나 지명, 역사적 사건 등을 꼼꼼하게 수록함으로써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작품 해제에서는 단순한 내용 설명이 아닌 작품의 주요 배경, 플라톤의 ‘영혼’ 개념, 주요 내용 등을 수록함으로써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