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함축과 해학적인 문체 그리고 철학적 농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촌철살인의 문장들!
최승호 시인이 베스트셀러 우화집 『눈사람 자살 사건』에 이어 두 번째 우화집 『사랑에 눈먼 판다』(달아실 刊)를 펴냈다. 달아실출판사의 〈철학이 있는 우화 시리즈〉의 다섯 번째 우화집으로 나왔다.
첫 우화집 『눈사람 자살 사건』이 지역의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출간 5년 만에 20쇄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것에 대해 박제영 달아실출판사 편집장은 “출판사의 유명세가 책의 판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 있어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베스트셀러가 되는 필요충분조건은 텍스트 자체의 힘에 있다. 최승호 시인의 〈눈사람 자살 사건〉이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텍스트에 담긴 저자의 생각(메시지)이 우화라는 형식과 어울려서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 것에 있다”며 “이번 최승호 시인의 두 번째 우화집이 전작인 〈눈사람 자살 사건〉과 비교했을 때, 시적 함축과 해학적인 문체 그리고 철학적 농담이 조금 더 강조된 만큼 독자들 또한 새로운 울림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고 강조한다.
두 번째 우화집 『사랑에 눈먼 판다』에 대해 최승호 시인은 〈책머리에〉에서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다. 우화도 그렇다. 기원전에 씌어진 이솝의 우화와 지금 내가 쓰는 우화의 내용과 형식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시의 본질은 함축이다. 우화도 함축이라는 불투명의 신비에 둘러싸여 다채로운 해석의 스펙트럼을 내뿜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우화집은 『눈사람 자살 사건』과 달리 대부분 익살스러운 문체로 난센스, 농담, 블랙유머의 성격을 띠고 있다. 판다는 사랑과 놀이와 장난이 없는 삶은 재미없다고 판단한 동물인 것 같다. 요즘 푸바오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서 〈사랑에 눈먼 판다〉가 표제작이 됐다.”
“파울 클레(Paul Klee)와 팔대산인(八大山人)은 내가 흠모하는 화가다. 동서양 두 대가의 그림들로 이야기에 색채가 입혀지고 상상력이 더해져서 부디 이 책이 아름다운 우화집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번 『사랑에 눈먼 판다』는 총 107편의 우화와 69점의 삽화를 싣고 있는데, 본문의 삽화는 앞서 저자가 밝혔듯이 동서양의 두 대가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와 팔대산인(八大山人, 1624~1703)의 그림들로서 모두 최승호 시인이 직접 고른 작품들이다. 그리고 이번 우화집의 표지 그림은 최승호 시인이 직접 그렸다. 우화집을 읽으면서 파울 클레와 팔대선인의 그림, 그리고 최승호 시인의 그림을 함께 감상할 수 있으니 독자 입장에서는 일거양득을 넘어 ‘일거사득’인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최승호 시인의 우화집 『사랑에 눈먼 판다』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촌철살인(寸鐵殺人)’에 있다. 가령 사랑의 본질을 고민하기 위해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찾아 밤새 읽을 필요는 없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탐구하기 위해 동서양의 철학 서적을 찾아 읽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다. 아래 예시한 짧디짧은 우화를 읽는 것만으로도 문득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 글을 읽는 순간 아, 그렇구나, 공감할 테다.
판다가 자기를 안고 있는 사육사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나 사랑에 눈이 멀었나봐. 아무것도 안 보여. 사랑하는 판다만 보여. 눈을 감아도 보인다니까.”
사육사가 질투가 나서 안고 있던 판다를 밀쳐버렸다.
데굴데굴 굴러가던 판다가 일어나 소리쳤다.
“할아버지, 왜 그래. 우리 삼각관계 아니잖아.”
울먹이던 판다가 사육사에게 다가오며 씨익 웃었다.
- 「사랑에 눈먼 판다」 전문
그물을 찢고 나온 물고기의 기쁨이 늙은 어부의 슬픔이었다.
- 「기쁨이 슬픔이다」 전문
자기 꽃을 피워. 쓸데없이 남의 꽃 피우지 말고.
- 「민들레 씨앗들이 떠날 때」 부분
인터넷으로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그 이유를 최승호의 우화집 『사랑에 눈먼 판다』가 보여준다. 확인하고 싶다면 꼭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