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고독한 영혼의 팡파르
정 성 수(丁成秀)
(시인/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허광빈의 시집 『강을 노래하고 싶지 않은가』는 한 지구인이 거쳐 온 개인적 시간과 역사가 어우러진 고독하고 아름다운 생의 파노라마이다.
그것은 시적화자 자신에게 띄우는 원초적 자아의 고백이자 타인, 즉 이 지상의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띄우는 순수한 영혼의 자술서이다.
그는 거짓 없고 아름다운 투명영혼 속으로 스며들려는 간절한 순수의지를 노래하는가하면 한 자연인으로서의 따뜻한 사랑, 순결한 사랑에 대한 뜨거운 갈망을 노래하기도 한다.
또한 그의 시 전편에 사라져간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과 연민이 하나의 살아있는 시적우주로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한 시적자아의 치열하고 거침없는 핏빛 육성이기도 하다.
그는 때로 가시천지인『전어』보다 가시가 더 많은 이 풍진세상을 노래하기도 하고, 이승을 떠난 지아비를 그리워하는 고독한 어머니의 따뜻한 대변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그의 이러한 시들은 한 마디로 말해 고독한 시적화자의 치열한 자아성찰의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상 고독과 비애의 극복을 위한 눈물겨운 투쟁의 보고서이다.
다음 시를 살펴보자.
영혼의 이슬이게 하소서
거친 영혼까지 맑게 닦아줄 수 있는
그리하여, 삶이
메아리가 닿을 수 있는 곳까지
슬픔으로 풀어내는
영롱하고 아름다운 영혼이게 하소서
때로는 과거를 버리고 미래로 향하는
때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침잠하는
가슴이 찢어져 폐지처럼 나부끼는 달빛에 젖어
마음까지 스며드는 사막의 방황일지라도
작은 창에 성에 낀 밖으로 세미의 맛을 보는
내 영혼의 깊은 곳에 맺힌 이슬이게 하소서
- 「눈물 」전문
이 풍진세상 속에서 ‘영롱하고 아름다운 영혼’이 되고자 하는 시적하자의 간절한 기원의 시이다. 다시 말하자면 열렬한 순수의지의 기록이다. 그 영혼은 ‘거친 영혼까지 맑게닦아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영혼이다. ‘때로는 과거를 버리고 미래로 향하는/때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침잠하는’ 절절한 영혼이다.
시적화자는 ‘가슴이 찢어져 폐지처럼 나부끼는 달빛에 젖어/마음까지 스며드는 사막의 방황일지라도/작은 창에 성에 낀 밖으로 세미의 맛을 보는/내 영혼의 깊은 곳에 맺힌 이슬이게 하소서’라고 그야i말로 더할 나위 없이 맑고 투명한 순수영혼이 되기를 갈망한다.
다음 시를 살펴보자.
희망을 피워 올리는 바람결
아름다운 장미 가시에 찔려
미지의 사랑으로 승화한 릴케의 가슴 아픈
사월의 잔인함일지라도
꽃비 나리는 작은 길을 다정히 걷고 싶은
봄과 같은 사람 하나 만나
사랑하고 벗하여
인생 여정을 함께 걸어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 아니랴
그리하여 그대에게
고마워하고
사랑한다는 말로 일관하며
봄과 같이 포근한 맘으로 배려해 주고
그대를 소중히 여기며
마음은 항상 라일락꽃 흩날리는 향기로
그대와 짝하여 평생 사월의 봄과 같은 소박함을
그대와 나의 옷깃에 가둬두고 살아갈
그런 봄과 같은 사람 만나
사랑하고 지고 싶으리
- 「4월에 띄우는 편지」 전문
새로운 봄날인 ‘4월에 띄우는’ 순결한 사랑 ‘편지’이다. 이 또한 시적화자의 일종의 기구의 시이다. 즉 고독한 시적화자의 사랑노래. 시적화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사월의 잔인함일지라도/꽃비 나리는 작은 길을 다정히 걷고 싶은/봄과 같은 사람 하나 만나/사랑하고 벗하여/인생 여정을 함께 걸어갈 수만 있다면/얼마나 행복한 일 아니랴‘라고. 즉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서 두 사람이 함께 일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도 소박한 인간적 염원의 고백이다. ‘그대와 짝하여 평생 사월의 봄과 같은 소박함을/그대와 나의 옷깃에 가둬두고 살아갈/그런 봄과 같은 사람 만나/사랑하고 지고 싶으리.’
얼마나 순수 무구한 기도인가. ‘봄과 같은 사람 만나/사랑하고 지고 싶’다는 시적화자의 기원은 어찌 고독한 그 한 사람만의 기도이겠는가. 사실상 이승을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지구인의 소박하고도 절절한 꿈과 소망이 아니겠는가.
다음 시를 살펴보자.
안개비가 내릴 때마다
강변에는 외로움이 모여든다
바람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가
강을 노래하고 싶지 않은가
참았던 울음 와락 터트리듯 그렇게
삶이란 때때로 기대해볼 만하다며
취한 듯 바라보며
흐르는 강물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강 둔치에는 눈물이 쏟아진다
아침을 깨우며 눈을 부비고
밤을 재우며 별을 노래하듯
아직도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목숨을
바람에 서걱이는 나뭇잎 달래며
뜬금없이 밀려오는
추억속의 그리움
끝내는 검푸른 강물 위에
달빛 무리되어
싱그러운 바람으로 숨을 쉬는데
강이나 마음껏 바라보았으면
- 「강을 노래하고 싶지 않은가」 전문
‘강’은 한 마디로 말해 흐르는 시간이며 과거이며 또한 미래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흘러온 역사이고 지금의 현실이고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시적화자는 어느 날 ‘안개비 내’리는 강변에 고독하게 홀로 서있다. ‘참았던 울음 와락 터트리듯 그렇게/삶이란 때때로 기대해볼 만하다며/취한 듯 바라보며/흐르는 강물/계절이 바뀔 때마다/한강 둔치에는 눈물이 쏟아진다’
현실은 언제나 꿈과 같지 않다. 현실은 자주 꿈을 배반한다. 그러나 ‘삶이란 때때로 기대해볼 만하다며/취한 듯 바라보’는 한강. 계절이 계속 바뀌어도 ‘한강 둔치에는 눈물이 쏟아진다.“ ’추억속의 그리움/끝내는 검푸른 강물 위에/달빛 무리되어/싱그러운 바람으로 숨을 쉬는데/강이나 마음껏 바라보았으면. 시적화자는 흐르는 강물 앞에서, 추억 속에서, 과거의 기쁨과 슬픔과 아픔의 고통과 무한한 그리움 속에서 스스로 위안을 전해주고 스스로 여유로운 희망의 문법을 찾는다. 어차피 우리들의 생은 고독과의 화해, 슬픔과 아픔과의 화해, 꿈과 희망의 눈물겨운 변주이다.
다음 시를 살펴보자.
가을처럼 전어 몸이 여물면
바다도 가을을 탄다
파도는 차가울수록 포말로 다가와
가을을 씹는다
갯바람 드나드는 선술집 연탄불 위에
전어가 쭈그리고 앉아
주름 깊은 세상을 비릿하게 바라보며
사람들은 수많은 넋두리로 바다를 삼키듯
복창이 터지도록 잘 익은
혹은, 파도에 부딪쳐 갈라진 전어의 몸에
물살을 가르듯 핏빛서린 초장을 바른다
사람들이 바닷물처럼 들락이는
서해포구 진입로의 어수선한
발라내야 할 삶의 무게로
전어보다 가시가 더 많은 세상을
뻘밭 가득 들쳐 업고
파도에 부딪치듯 살진 전어를 오독우둑 씹는다
살아가는 것은 제 몸에 가시를 박고
계절마다 아픔의 추억을 회상하며
썰물처럼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이
가을이면 밀물처럼 그리움을 안고 찾아와
곪아터진 탁자와 의자를 내려놓고
신열을 앓았을 무용담 굽는 연기 속에
살갑게 잔을 주고받으며
전어무침 매운 양념 같은 안부를 물으며
살가운 눈빛으로 맛깔스런 온정을 나눈다
- 「전어」 전문
‘가을처럼 전어 몸이 여물면/바다도 가을을 탄다’, 사람이 가을을 타듯이 ‘바다도 가을을 탄다’니 얼마나 멋진표현인가. ‘갯바람 드나드는 선술집 연탄불 위에/전어가 쭈그리고 앉아/주름 깊은 세상을 비릿하게 바라보며/사람들은 수많은 넋두리로 바다를 삼키듯/복창이 터지도록 잘 익은/혹은, 파도에 부딪쳐 갈라진 전어의 몸에/물살을 가르듯 핏빛서린 초장을 바른다.‘
술꾼들은 한자리에 마주앉아 수많은 넋두리를 늘어놓으며 선술집 연탄불 위에서 잘 익어버린 바다의 투사 ‘전어’의 살갗에 ‘핏빛서린 초장을 바른다’
‘전어보다 가시가 더 많은 세상을/뻘밭 가득 들쳐 업고/파도에 부딪치듯 살진 전어를 오독우둑 씹는다’. 물고기 중에 가시가 제일 많은 ‘전어보다 가시가 더 많은 세상’. 시적화자의 이 풍진 세상에 대한 쓰라린 인식의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살아가는 것은 제 몸에 가시를 박고/계절마다 아픔의 추억을 회상하며/썰물처럼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이/가을이면 밀물처럼 그리움을 안고 찾아와/곪아터진 탁자와 의자를 내려놓고/신열을 앓았을 무용담 굽는 연기 속에/살갑게 잔을 주고받으며/ 오랜만에 사람이 사람을 만나 함께 슬프고 아름다운 추억을 더듬으며 유정하게 술잔을 부딪친다.
‘전어무침 매운 양념 같은 안부를 물으며/살가운 눈빛으로 맛깔스런 온정을 나눈다’. ‘맛깔스런 온정’ 나누기, 이것이 바로 우리들 사람 사는 세상 아닌가. 거친 파도 속에서 힘들게 살아온 가시투성이 전어를 안주로 술을 마시는 거친 세상 속 가시투성이의 사람들, 술을 매개로 하여 죽은 가시와 산 가시가 함께 쓰라린 가시축제를 벌이며 서로 따뜻하게 위로를 주고받는다.
다음 시를 살펴보자.
초승달로 오신 당신
당신을 보낸 이슥한 밤
내 잃어버린 시간
처연한 눈빛으로
울컥 눈물이 번질
내게 산이 되어
다시 한뉘를 머무르게 하소서
내 가슴 요적한 어둠에
그리움의 비로 내리는 당신
다정했던 사랑 끝났다고
하늘가에 기대어 앉지 마시고
간섭도 아름다운 잔소리거니
가벼운 발길
우산이 되어
내 가슴을 짚어 받쳐 들게 하소서
차마 오시는 멀고 험한 길
운해(雲海)를 거슬러
당신의 추운 옷깃에
한 떨기 별빛이 묻어
새벽공기 밟고 오신다 해도
당신의 빛이 넘치도록
함께 하던 방
창문을 활짝 열어 맞게 하소서
천혜(天惠)의 생각만큼
자유로운 몸짓으로
당신 냄새 온몸에 젖어들면
물망초꽃잎에 사랑 詩 곱게 적어
당신의 그 넓고 싱싱한 울음이
내 가슴을 흔들도록
달빛이 화살로 꽂혀도
별빛이 비수로 꽂혀도
아픔 딛고 일어서는 사모의
포근한 달과 찬연한 별빛으로 머물게 하소서
대답 없는 당신의
안부를 베고 누워
영원히 당신 곁에 잠들게 하소서
- 「아버지를 위한 어머니의 기도」 전문
제목이 특이하다. 시적화자의 기도가 아니라 어머니의 기도를 아들이 대신 시집에 옮겨놓는 형식을 취했다.
‘초승달로 오신 당신/당신을 보낸 이슥한 밤/내 잃어버린 시간/처연한 눈빛으로/울컥 눈물이 번질/내게 산이 되어/다시 한뉘를 머무르게 하소서’
어머니의 낭군은 ‘이슥한 밤’에 이승을 떠나 어느 날 밤 ‘초승달’로 돌아왔다. 즉 이승과 다른 새로운 모습, 기나긴 사랑의 새 출발이다. 어머니는 낭군이 다시 ‘내게 산이 되어/다시 한뉘를 머무르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변함없이 산처럼 서있는 낭군과 함께 한세상 다시 멋지게 살고 싶다는 간절한 기원이다.
그런가하면 ‘간섭도 아름다운 잔소리거니/가벼운 발길/우산이 되어/내 가슴을 짚어 받쳐 들게 하소서’ 때로는 낭군이 ‘우산이 되어’ 비로부터 자신의 고독한 가슴을 받쳐달라고 기도한다. 또 ‘당신의 추운 옷깃에/한 떨기 별빛이 묻어/새벽공기 밟고 오신다 해도/ 당신의 빛이 넘치도록/함께 하던 방/창문을 활짝 열어 맞게 하소서’라고 ‘방 창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런가하면 ‘당신의 그 넓고 싱싱한 울음이/내 가슴을 흔들도록/달빛이 화살로 꽂혀도/별빛이 비수로 꽂혀도/아픔 딛고 일어서는 사모의/포근한 달과 찬연한 별빛으로 머물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어둠 속에서도 ’포근한 달과 찬연한 별빛‘으로 오래오래 나에게 머물게 해달라는 애절한 기원이다.
그 모든 기원이 이루어지기 힘들면 ‘대답 없는 당신의/안부를 베고 누워/ 영원히 당신 곁에 잠들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죽어서도 낭군 곁에 머물고 싶다는 각시의 뜨거운 사랑 고백이다.
다음 시를 살펴보자.
기억 끝의 얼음장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나는 지금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선 어느 시점의 과거를 여행 한다
덜컹거리며 달려온 차바퀴의 찌든 매연과
산등성이의 낯익은 비포장도로를 따스한 목도리로 둘둘 감는다
호롱불의 열꽃이 호흡을 멈출 때
우마차의 소잔등을 힘껏 후려치며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양 볼에 솜털 바람이 매섭다
묘 등처럼 가지런한 초가지붕 위로 뿌연 연기가 하루의 시름을 토해낸다
처마 밑 시래기 바삭거리는 여닫이문 창살마다 불빛이 가득하다
아궁이에 던져진 굵직한 장작불은 하루의 몫을 잉걸불로 달구고 있다
바지랑대만한 옥수수 대공들의 부대낌은
모락모락 서리발로 가마솥 쇠죽으로 끓고 있고
억새 바람과 씨름하던 주름진 할아버지 이마에
맺혀진 불씨들은 흙먼지 가루로 삭아
튼 손 사이 매서운 눈바람 하늘을 쓸어낸다
아궁이의 검은 재들 재갈거리며
혼불되어 찬 공기 호흡을 짓누르면
피곤은 밤새 이부자리를 파고든다
등 언저리가 따숩다
속눈썹 사이로 안개 같은 기억이 쏟아진다.
-「유년(幼年)여행」 전문
‘유년여행’의 기억이 생생하다. ‘호롱불의 열꽃이 호흡을 멈출 때/우마차의 소잔등을 힘껏 후려치며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양 볼에 솜털 바람이 매섭다’ 또한 ‘묘 등처럼 가지런한 초가지붕 위로 뿌연 연기가 하루의/시름을 토해내고, 처마 밑 시래기 바삭거리는 여닫이문 창살마다 불빛이 가득하다‘. 그뿐인가. ‘아궁이에 던져진 굵직한 장작불은 하루의 몫을 잉걸불로 달구고 있’고, ‘바지랑대만한 옥수수 대공들의 부대낌은/모락모락 서리발로 가마솥 쇠죽으로 끓고 있고/억새 바람과 씨름하던 주름진 할아버지 이마에/맺혀진 불씨들은 흙먼지 가루로 삭아/튼 손 사이 매서운 눈바람 하늘을 쓸어낸다’.
그러다가 ‘피곤’이 ‘이부자리를 파고’들면 ‘등 언저리가 따숩’고, ‘속눈썹 사이로 안개 같은 기억이 쏟아진다.’ 마침내 어린날의 깊은 잠속으로 빠져드는 것. 농촌의 어린 시절이 손에 잡힐 듯 선하다. 그 무렵의 상황 전개가 구체적 이미지로 잘 표현된 시.
다음 시를 살펴보자.
도대체 너는 뭐냐고, 무슨 의미냐고,
세월이 내게 묻는다
"또, 한 번 내 생애에 비가 내리고 여름은 오는가?"
가슴을 때리며 묻지 마라
그날의 슬픔을 그날의 기억을
누군가 내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줄 수 없다면,
나 또한 묻지 않는다
"강이나 마음껏 바라보고 돌아오는
마음이 가볍다" 며 강물은 흘러가고 가는 길에
누군가 끈질기게 묻는다
-「세월, 그리고 무엇이 내게」 전문
지나온 시간이 시적화자에게 묻는다, ‘너는 뭐냐, 무슨 의미냐?’ 너의 존재는 무엇이냐, 존재 의미는 무엇이냐? 그것은 결국 너는 왜 사느냐는 질문과도 상통한다. 나? 나는 무엇이지....? 나는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는 지구인이 자신에게 던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자 의문이다. ‘또, 한 번 내 생애에 비가 내리고 여름은 오는가?"/가슴을 때리며 묻지 마라’ 내 생애에 잎이 무성한 열정적 여름은 다시 올 것인가....?
‘그날의 슬픔을 그날의 기억을/누군가 내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줄 수 없다면, 나 또한 묻지 않는다‘ 그날의 슬픔을 모두 기쁨으로 바꿔줄 수 없다면 나의 질문은 모두 헛되고 부질없는 짓이다. “강이나 마음껏 바라보고 돌아오는 마음이 가볍다‘며 강물은 흘러가고 가는 길에 누군가 끈질기게 묻는다‘흘러가는 강물 위에 지나간 날의 모든 슬픔과 아픔을 흘려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누군가 끈질기게 묻는다, 너는 뭐냐, 무슨 의미냐?’라고. 아아, 누가 알 것인가, 이 세상 슬픔 속의 ‘나’ 가 누구인지....? 나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소동파가 적벽부(赤壁賦)를 지었을 때, 사람들은 그가 단숨에 지은 것으로 알았지만, 그러나 이를 짓느라 버린 초고가 수레 석 대에 가득하였다고 사문유취(事文類聚)에 나온다. 시인 허광빈의 시는 말하자면 자신과의 끝없는 투쟁이자 전쟁이다. 그것은 살아온 날들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깊고 뜨거운 회한이자 슬프고 가슴 아픈 과거의 생애에 대한 눈부신 역설적 도전이다. 그의 고독과 그리움과 슬픔이그의 시를 이 눈부신 지상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나게 하리라 믿는다.
詩人이여, 분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