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채집한 마음들
아직 이 세상이 살 만하다는 증거
박성우의 시는 언제나 쉽고 편안하다. 시를 처음 접하는 이들도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사람살이의 온기가 흐르고 언젠가 살아본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시인이 펼쳐놓는 선한 마음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문득 그런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마음이 과거 사회에 대한 향수나 지금은 사라진 따뜻한 정(情)에 대한 동경이 아닌지. 그러나 시인이 이끄는 손길을 따라가다보면 그러한 의심은 불식된다. 가령 이러한 장면들을 살펴보자. 이 시집 안에는 “혹시라도 내릴지 모를 비”를 걱정하여 “택배 상자를 방수지에 꼼꼼하게도 싸서 처마 밑에 모셔두고”(「정읍 칠보우체국 우체부 셋」) 가는 세심한 마음이 있다. 십여년 동안 일하다 그만두게 된 아파트 경비 어르신을 “한번 안아봐도 돼요?”(「방문」) 묻고 안아드리는 시인의 마음도 있다. 이는 시인이 직접 경험한 다음 시로 옮겨놓은 마음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말하자면 이 시집 곳곳에 펼쳐진 아름다운 마음은 시인이 여기저기서 채집한 것이자, 아직 이 세상이 살 만하다는 증거들이다.
이러한 마음은 관계로 이어진다. 이 시집 안에 등장하는 다양한 관계를 살펴보는 일은 그 자체로 흐뭇하다. “잠깐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어느새 “유치원생”에서 “중학생”이 되어버린 “딸애”(「잠깐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와의 일화들을 살펴보는 일은 잔잔하게 가슴을 데운다. 늦은 밤 노모가 책 읽는 소리를 듣는 장면(「드키는 소리」)이나, “얼떨결에” 받은 연극 “초대권 두장”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바쁜 시간을 쪼개 아내와 뜻밖의 데이트를 나서는 장면(「연극」) 등을 보다보면 독자들도 어느새 나의 가족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관계는 가족 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웃, 길 가다 스친 사람, 심지어 “먹을 걸 내놓으라” 조르는 고양이(「오후 세시」)까지 시인은 정성을 다해 마음을 나눈다. 이러한 관계가 박성우 시 특유의 자연스러운 입말과 어우러져 시 한편 한편은 마치 드라마처럼 독자들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우리가 이 시집에서 마주하는 것은 “지금 이곳에 깃들어 있지만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삶의 방식, 드물지만 엄연히 실재하는 다른 삶의 가능성”(해설, 오연경)이다. 외로움, 억울함, 분노가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곁에 누군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은 그런 아픈 등을 도닥이며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고,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과 기쁨”(시인의 말)이 된다고, 그러니 주위를 둘러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박성우의 시는 시종일관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 따뜻함이 “더 나은 삶의 씨앗”(해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