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깨달음의 핵심 열쇠, 언어
붓다 가르침의 핵심 열쇠는 언어다
붓다는 사람은 왜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지, 삶의 고통은 왜 생기고,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해결하기 위해 출가했다. 선정을 배워 당시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지만 선정으로는 고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죽음을 불사하는 고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야 고행으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어르게 된다.
쑤자따라는 어린 소녀가 공양한 유미죽(우유와 쌀을 섞어 만든 죽)을 먹고 기운을 차린 붓다는(책 206쪽) 오직 통찰 명상의 사유를 통해 내 몸과 마음의 ‘자아’를 하나하나 파헤쳐 나가다가 자아가 다섯 개의 개념 덩어리, 즉 오온(panca-khandha, 五蘊)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붓다는 늙어 죽음은 왜 생기는지 그 발생 원인이 되는 조건을 탐구해 나가다가 마침내 명색(名色, 빨리어 namarupa)과 식(識, 빨리어vinnana)이 상호의존하면서 끝없이 계속 언어로 된 오온의 구성물을 낳고 쌓아가고 있음(集)을 보고 살피고 알아차렸다. 붓다의 이런 탐구 과정은 원인이 되는 조건을 역순으로 찾아간다고 해서 12연기의 역관(逆觀)이라고 부른다.
붓다의 연기법은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는 그 전체로서의 이치 자체는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무명(無明)으로부터 차례로 조건에 따라 발생하는 12연기(또는 10연기)의 행(行), 식, 명색, 입처(入處),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늙어 죽음은 태어남이 있기에 생기고, 존재가 있기에 태어남이 있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취착(取着)으로 인하여 존재가 생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붓다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해하지 못하면 깨닫지 못한 것이고, 그러면 이치에 맞게 통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 많은 깨달은 스님들은 어떻게 12연기의 역관과 순관(順觀)을 이해했는지 중국과 조선, 일본의 선사들 책을 열심히 찾아보고, 틱낫한과 달라이 라마, 데이비드 로이 등의 글도 정독한다.
붓다 연기법의 가르침은 우선 용어부터 이해하기가 어렵다. 무명(avijja), 행(sankhara), 식, 명색, 입처(ayatana), 촉phassa) 등등 개념부터 요령부득이다. 빨리어의 영어 번역문을 보면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완전히 꿰뚫어 이해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예컨대 명색 빨리어로 나마루빠에 대해 붓다고사를 비롯한 수많은 해설자들은 이를 정신과 물질이라고 해석했다. 아마도 이 해석을 듣고 사람들은 명색의 개념에 대해 오히려 더 헷갈려 할 것이다. 물질과 정신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오류이고, 사물을 이름과 형태로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는 다른 논자의 설명은 그나마 조금 이해가 된다.
붓다는 나마루빠를 십이연기를 설명하는 한 단어의 주요한 개념어로 사용했을 것이다. 두 개의 개념어라면 아예 두 개의 단어로 분리해서 개념어로 설명하면 된다. 현미경처럼 몸과 마음을 관찰하고 분석했던 철저한 논리와 철학의 추구자 붓다가 굳이 이름을 뜻하는 나마(영어로는 name)와 색을 뜻하는 루빠를 결합해서 새로운 개념어를 쓴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명색이란 우리의 ‘자아’가 이름붙인(named) 사물과 사건(rupa)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언어로 구성된 자아(五蘊)가 언어로 세상을 분별하는 것, 그것이 명색이다. 결국 늙어 죽음, 태어남, 자아 등은 모두 언어의 개념일 뿐이다.(책 130쪽~134쪽)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어는 언어다. 언어야말로 붓다 깨달음을 꿰뚫어 이해하고 실천하는 핵심 열쇠다. 약 4만 5천년~4만년 시기의 신석기 혁명과 인류 문명의 대도약에서부터 인간 지능의 폭발, 농업의 발견과 국가 형성, 문명의 발생에 이르기까지 핵심 열쇠도 언어다.
누구나 금방 붓다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문제는 실천
21세기 거대언어모델 인공지능(LLM)의 시대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 또한 언어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한 개의 세포로 출발한 생명체가 어머니 아기집에서 10개월 동안 폭발하듯이 세포수를 늘려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정말 기적이라는 표현도 모자라는 호로 사피엔스 인간의 탄생이다. 그리고 이 인간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또 뇌 세포수를 폭발하듯이 늘려나간다.
갓 태어난 아기는 ‘본디 모름’(無明)의 상태이다. 아기는 열심히 온몸을 움직여 근육의 힘을 키우고, 열심히 모든 것을 행동을 통해 익히면서 세상에 적응해 나간다. 뜨거운 물이든 뱀이든 눈으로 본 사물은 손으로 만지고 입에 넣고 냄새 맡으면서(行) 세상을 알아(識) 나간다.
갓난아기는 어머니 아버지와 가족들, 집에 오는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한다. 아이가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직립보행인 걷기와 언어다. 대체로 생후 9~12개월에 첫 걸음마를 뗀다.(책 114쪽) 옹알이를 하다가 최초로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 시기다.
말을 배우면서 아이는 이름으로 세상을 분별하기 시작한다.(名色)
언어는 훨씬 더 긴 배움의 과정이 있어야 단어를 연결해 문장을 만들고 언어를 구사할 줄 알게 된다.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것은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는 말과 같다. 대체로 3.5~4살부터 남과 구분되는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우리의 기억이 시작되는 출발 지검은 대체로 세 살 때부터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붓다 깨달음에 금방 도달할 수 있다. 현대 과학의 발달 덕분이다. 뇌과학과 양자역학의 기본 개념을 공부하면 붓다의 오온 개념과 무아론 등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양자역학은 물질을 쪼개고 쪼개면 텅 빈 공간만 나온다고 설명한다. 텅 빈 공간(空)의 세포들이 모여 사람이라는 생명체(色)가 이루어진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다.
사람의 몸도 세상도 늘 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무상(無常)의 이치는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
오늘날 뇌과학자들은 어느 누구도 자아가 몸과 뇌가 없어진 이후에도 존재하는 독립된 실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몸을 단순히 정신을 담는 그릇으로 신분을 격하시킨 데카르트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 자아란 몸에 단단히 통합된 뇌신경 세포의 연결망과 프로세스 결과물로 본다.(책 133쪽)
뇌과학을 조금만 공부하면 자아란 언어로 구성된 서사의 집적물이란 사실도 깨닫게 된다. 오온이 언어의 집적물임도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깨달음을 얻은 뒤 어떤 삶을 사느냐이다. 사성제를 이해하고 연기법을 꿰뚫어 알고 그러면 삶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오직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살 뿐인 삶의 기적같은 현존이 오롯이 드러난다.
붓다가 탐진치(貪瞋痴)를 버릴 수 있는 여덟가지 방법을 제시한 것이 팔정도이다. 붓다가 열반하면서 마지막 유훈으로 남긴 말도 게으름 피우지 말고 늘 정진하라는 당부였다. 인간은 사회성 동물이다. 인간의 뇌도 사회성 뇌이다. 삶의 고통 또한 사회성 고통이다. 우리의 모든 실천은 사회 활동이다.
“깊은 산 속에 틀어박혀 먹을 것을 비롯한 모든 생활용품을 대중들로부터 얻어 생활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홀로’ 고고히 틀어박혀 명상하는 출가 수행자이기 때문에 속세의 현실 문제에는 일체 개입하지 않겠노라는 헛소리를 한 적이 붓다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책 219쪽)
붓다 열반 과정을 기록한 「완전한 열반의 큰 경」은 전쟁 이야기로 시작한다. 붓다는 여기서 칠불퇴(七不退)의 법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친다. 전쟁을 막고 공동체의 평화와 화합, 공존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붓다는 평소에도 늘 전쟁을 막고 침략을 막아내는 방법에 대해 가르침을 베풀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공동체와 국가 구성원들이 화합과 결속을 다지면서 평화의 튼튼한 근육을 키워놓는 일이야말로 전쟁을 막고 침략을 격퇴해 중생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지 않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전쟁은 늘 내부에서부터 먼저 발생한다.
꼬쌀라 국이 붓다의 출신 부족인 싸끼야 족을 침략하기 위해 군대를 몰고 갈 때도 붓다는 땡볕에 홀로 죽은 고목 나무 아래에 앉아 군대를 막아냈다. 두 번이나 그런 방식으로 침략을 막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싸끼야 족은 꼬쌀라 국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만다. 붓다의 수많은 일가친척과 부족 구성원들이 죽임을 당했다. 양모인 고따미와 붓다의 부인이었던 야소다라, 아들이었던 라훌라, 사촌 동생이었던 아난다 등 이미 출가한 싸끼야 족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 이것이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이자 숙제이다.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과 똑같다. 무지와 무명이다.
우리는 걸으면서도 사실은 걷고 있지 않다. 내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걸어가고 무의식의 흐름이 걸어가고, 근심 걱정이 걸어가고, 후회가 걸어가고, 내일의 과제가 걸어가고, 탐욕이 걸어가고, 성냄이 걸어가고, 어리석음이 걸어간다.
「어떻게 걸어야 하나: 걷기명상」은 걷기 방식을 바꾸라고 권하는 가이드이다. 기적같은 지금 여기 내 삶이 걷는 기쁨을 선물하기 위한 안내서이다.
21세기 대용량 언어모델(LLM)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지능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붓다 깨달음을 다시 호출해서 대화를 시도하는 삼보일배의 책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