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을 노래한 노동자 훈이 엉아!
정세훈 작가의 장편소설 『훈이 엉아』 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 장편소설은 6 · 25 이후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우리 사회를 배경으로 삼았다. 주인공 ‘훈이’의 삶을 통해, 군사 독재정치와 민주화 그리고 그 정치 상황에서 급박히 진행된 자본 숭상 노동 천대의 산업화로 인한 열악하고 고단한 민중의 삶을 보여준다. 아울러 처절하리만치 긍정적 희망으로 살아가는 이 땅 소시민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신랄하게 대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전쟁으로 얻은 가난에서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고 굶주림에 허덕였다. 경작할 땅이 없는 사람들은 지주의 소작과 머슴살이로 간신히 연명했다. 그럴 수도 없는 사람들은 수십 리 밖 탄광으로 나가 탄을 캐어 살았다. 어른들의 생활이 이리 곤궁하니 아이들의 삶은 더욱 불쌍했다.
-「훈이 엉아」 중에서
주인공 훈이도 가난을 피할 수 없었다. 석탄을 캐는 광부 아버지와 전쟁 중 두 자식을 잃은 충격으로 화병을 앓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훈이는 취학 전부터 어머니의 병시중과 동생들을 챙기는 등 집안일을 보살핀다.
서울로 가기로 했다.
그 누가, 또한 그 어떠한 일이, 훈이를 기다리고 있는 서울이 아니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서울로 가 돈을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돈을 벌어 어머니 대실댁의 약값을 대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 정 씨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다」 중에서
20대 공장 노동자 때 몸에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온몸의 피부가 짓무르는 등 여러 형태의 이상 증상들이 진폐증의 전조 증상이었다.
-「진폐증」 중에서
극빈한 유소년 시절을 벗어나려 소규모 영세 공장의 소년 노동자, 소년공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또 소년 시절 첫 직장에서 잘 곳이 없어 식당 대형냉동고와 대형 증기 가마솥 안에 숨어 지냈으며, 억울한 일로 인해 교도소에 수감 되기도 했다. 어린 나이부터 석면포를 감은 건조로를 사용하는 에나멜공장에서 일한 탓이었을까. 환경 유해 업종 영세 소규모 공장에서 진폐증에 걸린다. 주인공 훈이는 절망보다 더 절망적인 환경에 놓여 있었다.
둘이는 서로 가난하였기에 자주 만날 수가 없었다.
만나고 싶어도 아껴서 만나야 했다. 대신 열심히 편지를 보내고 받았다. 서로 보고 싶어 어쩌다 만나면 돈이 안 드는 거리를 하루
종일 배회하곤 했다. 그렇지 않은 날엔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호주머니 사정을 감안하여 돈 안 드는 데이트를 했다.
둘이 돈을 들여 데이트를 한 적이 몇 번 있다.
-「단칸방 결혼 생활」 중에서
출간한 후 훈이는 이 시집과 관련해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 TV의 몇몇 교양프로에 출연했다. 신문과 여성 잡지들을 비롯해 이런저런 다수의 잡지에서도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시인이 되다」 중에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훈이는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만난다. 또 예전부터 먼 꿈이라고만 여기던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겨울지나 봄에 피어나는 꽃처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신의 삶을 키워나갔다.
노동법은 언제나 존재했지만, 노동판과는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최저 임금제가 생겼지만, 노동판을 죽이고 자본만을 살찌우고 있었다. 비정규직을 만들어 노동판을 더욱 가난하고 핍진하게 만들었다.
노동의 피와 땀을 착취하여 부를 누린 자본은 정리해고라는 칼을 들이대었다. 일방적으로 공장 문을 닫기도 했다. 동자의 피땀 값이 비싸다며 후진국으로 더 싼 피땀 값을 착취하러 갔다.
훈이는 노동문학관을 도에 기부할 뜻을 도지사에게 밝혔다. 노동문학관은 국내외의 수많은 이들이 동참하여 함께 건립한 것이기에 개인인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건립 목적 고취를 위해서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문학관」 중에서
결국 훈이는 자신과 비슷했던 처지의 사람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 노동문학관을 건립했다. ‘진정한 운동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 또는 공공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다.’라는 인생 철학이 어렸을 때부터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관 건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기도 했다.
훈이는 지극히 부정적인 환경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지극히 긍정적인 삶으로 살아내었다. 항상 자신보다 남을 돌볼 줄 알았다. 그동안 펼쳐온 노동자들을 위한 연대 활동의 한계를 실감해 더 나은 삶을 노동자들에게 주고자 노력했다. 그 삶의 이야기를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세상은 이를 데 없이 부정적이지만, 긍정적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 그리고 희망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