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은 신비한 존재였다
과거에는 향은 신비하고 귀한 존재였다. 뭔가를 태우면 열과 함께 강한 향도 난다. 특정한 재료에서 나는 유난히 매혹적인 향기에서 신비함을 느꼈을 것이다. 향료(Perfume)는 라틴어 ‘Perfumum(향을 통해서)’에서 유래하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적 행사에는 향을 피웠다. 향은 치료 목적으로도 사용되기도 하였다. 아로마테라피라는 용어는 1928년 프랑스의 화학자 가트로스의 책을 통해 처음 알려졌으나 향기 성분을 이용해 육체나 정신을 치료하고자 하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존재하였다.
좋은 향을 얻고 이용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 왔다. 예전에 좋은 향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꽃을 떠올렸다. 꽃의 향을 추출하고 오래 보관하고 지속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하던 노력이 향수 산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1세기 클레오파트라 시대에는 장미 꽃잎이 뿌려진 침실이 딸린 배를 향료를 뿌려 장식했고, 몸에는 사향고양이의 향이 조합된 연고를 발랐다는 기록이 있다. 16세기 메디치 가문의 카드린 공주가 프랑스의 앙리 2세에게 시집을 가면서 프랑스로 전해진 이탈리아의 향 문화는 남프랑스 그라스 지역의 향수 산업을 일으켰다. 18세기는 프랑스 궁정을 중심으로 사치스런 향 문화가 발달하였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후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인해 유기 화학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향수 제조 기법들이 등장하며 향수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향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신비하던 향의 비밀들이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향의 정체는 아주 작은 휘발성 분자이다
먼 거리에서 암컷 나방으로부터 나오는 페로몬의 향기를 맡고 찾아오는 수컷들은 과학자들에게도 매우 신비한 현상이었다. 1930년 독일의 생화학자 아돌프 부테난트가 밝힌 수컷 나방을 유인하는 물질의 정체는 E,Z-Hexadeca-10,12-dienol로서 ‘봄비콜’이라고 불렀다.
봄비콜은 길이가 1nm도 되지 않는 매우 작은 분자이다. 우리 눈에는 매우 적은 양으로 보이더라도 분자 수로 따지면 엄청난 양이다. 동물의 후각세포에서 예민하게 느끼는 물질이라면 적은 양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연어는 5년 이상을 바다에 살면서 가장 건강할 때 번식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자신이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와서 임무를 마친 후 생을 마감한다. 사람에게 종종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페로몬 현상은 동종의 동물끼리의 특별한 약속이지 신비로운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향으로 느끼는 물질은 매우 크기가 작은 분자이다. 물보다는 기름에 잘 녹고 휘발성이 있어서 후각 세포에 잘 결합해야 우리가 향으로 느낄 수 있다. 1800년대 이후 쿠마린과 신남산알데히드 등을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향기 물질의 발굴이 활발해진다. 향료의 발전은 좋은 향기 물질을 찾고, 분류해 내고, 합성하고, 활용하는 기술을 배경으로 발전한다. 가스크로마토그래피(GC)의 등장은 향기 물질의 발견과 분석에 획기적인 공헌을 하였다. GC의 등장으로 밝혀낸 향기 물질은 커피에서 850종, 홍차에서 470종, 빵에서 400종, 감자에서 150종, 토마토에서 400종, 포도에서 450종 이상이 확인되었다. 한 종류의 식재료에서 발견된 향기 물질만 수백 종이니 모든 식재료에서 발견되는 향기 물질은 엄청나게 많을 거라 예상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식품에서 발견한 향기 물질의 종류는 11,000종 정도이다.
향기 물질로 향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1992년 영국의 스타 셰프 헤스턴 블루멘탈과 향미화학자 프랑수아 벤지는 ‘푸드 페어링 가설’이라는 이론을 세웠다. 비슷한 향기 물질이 많은 식재료들끼리 요리하면 잘 어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후에 이론 물리학자들이 5만 6,000종의 레시피를 분석하여 그런 경향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최근 향기 물질을 중심으로 페어링을 설명하는 책과 솔루션이 증가하고 있다.
커피, 차, 과일 등 세상의 어떤 음식이든 향을 조금만 더 깊이 공부하면 결국에는 향기 물질과 만나게 된다. 향기 물질의 관점으로 보면 꽃과 향신료, 과일과 와인, 빵과 커피, 그리고 채소와 고기의 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 향기 물질은 같은데 배합비만 다를 뿐이다. 이론적으로 향기 물질만 알면 세상의 모든 향을 이해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향기 물질을 안다고 모든 풍미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향은 단독으로 존재할 때와 혼합 상태일 때 그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심지어 같은 물질인데 농도에 따라서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향기 물질은 색의 삼원색처럼 혼합 비율로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다. 물질 간에 상호작용이 매우 심하여 경험이 많은 조향사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 향과 후각에 대한 우리의 공부가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향기 물질로 향을 이해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향을 표현할 언어가 필요하다
식품의 성패는 맛에 달려 있고, 향은 그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향은 맛의 다양성을 부여하는 가장 결정적인 수단이자, 사람들이 맛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적인 특성이다. 그래서 지금도 향이 뛰어난 제품은 유난히 비싸고 귀한 대접을 받는다. 식품 개발자들은 남들과 차별화되고 좋은 향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그린 향을 표현하고 전달할 마땅한 방법이 없기에 현장에서의 소통은 쉽지 않다.
와인의 황제로 불리는 로버트 파커는 맛을 보는 것만으로 부와 권력을 쌓았다. 현재 일반화된 100점 척도의 평가 기준을 최초로 마련하고 25년간 최고의 비평가로 인정받고 있다. 보르도 와인 생산자들은 그의 평가가 나오기 전에는 가격 공시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맛을 단순히 ‘맛있다/맛없다’가 아니라 풍부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남들의 부러움을 살 뿐 아니라 개인에게 큰 부를 안겨주기도 한다.
외국인에게 막걸리 맛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막걸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맛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향을 표현할 마땅한 단어가 없으니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친숙한 조합 향을 이용한 아로마 휠을 이용하여 향을 공부하고 묘사하여 왔다. 그런 열정과 노력이라면 향기 물질의 공부도 가능하다. 향기 물질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향기 물질은 많지 않다. 『향의 언어』에는 저자가 엄선한 향기 물질들이 수록 되어 있다. 향기 물질을 이해하면 풍미를 이해하고 묘사하는 강력한 수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