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석가, 용수보살의 최상승 반야법문과
세간에서 육바라밀 실천으로 깨닫기
‘제2의 석가’라 하는 인도의 고승 용수보살은 일생동안 대승불교에 대한 수많은 저술을 편찬하였기에 “천부논주(天部論主)”라고 불린다. 그의 많은 논서 중 『대지도론』은 가장 중요한 논서라고 할 만하다. 구마라집이 무위(武威)에서 17년간 영어의 생활을 마치고 장안(長安)에 온 후, 소요원(逍遙園)에서 이 경을 역출하였다(402-405). 『대지도론』은 본래 『마하반야바라밀경』에 대한 주해를 목적으로 쓰여진 논서이다. 불교사에 있어 『대지도론』은 용수보살이 저술한 『백론』, 『중론』, 『십이문론』과 함께 “4론”으로 꼽히며, 그의 사상의 핵심인 중관학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논서이다.
『대지도론』은 일찍부터 중국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불교문화권에서 널리 유행하였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유럽에서도 학계에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하여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논서가 대승의 요체인 반야에 대해서 상세하고도 명쾌하게 해설하고 있으며, 그밖에도 초기불교에 관한 중요한 정보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대지도론』이 구마라집에 의해 역출되자마자 승단의 주의를 끌었으며, 승조, 혜원, 도안, 천태 지의, 영유, 지거, 길장, 혜사, 법늠, 승간, 담영, 영견 등 종파를 막론한 역대 고승대덕들이 모두 주석서를 내어 『대지도론』이 동아시아 불교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를 방증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중 현재에 온전히 전하는 것은 혜영(慧影)의 『대지도론소』 7권본 뿐이다.
『대지도론』에서 강설하는 주요 내용은 중도실상(中道實相)에 관한 것이다. 즉, 세간과 출세간, 또는 속제와 진제의 2제(諦)로 실상의 이치를 해석하는 것이며, 이것은 반야의 지혜를 통해서만이 요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야공(般若空)의 지혜는 대승보살도에 입각한 육바라밀을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체득됨을 강설하고 있다. 이것은 용수보살 이전에 인도불교에서 불교의 주체, 사상, 교단 등 모든 방면에서 봉착했던 한계를 단박에 넘어서는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지도론』이 다루는 내용은 매우 광범위하여, 불교의 여러 학설, 사상, 설화, 역사, 지리, 승가제도 등 다방면에서 고루 심도있는 논의를 하고 있다. 인용한 경전과 논서를 봐도, 원시불교경전 및 각종 부파불교의 저술에서부터 반야경전을 비롯한 화엄, 법화, 정토, 보적 등의 다양한 대승경전을 두루 포섭하고 있다. 심지어 당시에 민간에 전하던 본생담, 설화, 전설 등을 모두 반야공의 사상으로 회통시켜 대승불교 및 고대인도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대지도론』은 “불교의 백과사전”이자 “논장의 왕”이라 칭송받고 있다.
『대지도론』에 의하면 출가한 스님들이 삼보인 이유는 중생으로부터 떠나 오직 “깨달음만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이라는 문구는 『대지도론』의 종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경문으로, 이에 근거한다면 세간의 법과 출세간의 진리가 둘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바로 대지도(大智度)의 길이다. 그렇다면 깨달음의 장소는 이른바 “속세”라는 공간을 떠난 그 어딘가가 아닌 바로 현실의 생활 속에 있는 것이며, 대지도의 길을 걷는 주체 역시 세속의 현장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중생인 것이다.
그러나 『대지도론』은 세속의 중생이 부처님의 “일체지(一切智)”와 합치되기 위해선 “보살”로 거듭나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보살로서 살아가는 방법론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등 6바라밀의 실천이다. 용수는 이 6바라밀을 실천할 것을 단지 기계적으로 주창하는 것이 아니라, 왜 6바라밀을 실천해야 하는지, 각각의 덕목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상세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지도론』에서는 6바라밀 가운데 특히 보시의 덕목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보시란 “남”을 위하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며, 보시를 통해 궁극적으로 나와 너라는 아상(我相)을 버리게 됨으로써 반야의 눈을 뜨게될 수 있음을 강설한다.
용수보살은 또한 결국 피안으로 이르는 이 여섯 가지 덕목이 각자 개별적인 것이 아님을 밝힌다. 보시를 닦음으로써 나머지 다섯 가지 덕목이 공고해지고, 지계를 닦음으로써 나머지 다섯 가지 덕목이 공고해진다. 반야바라밀은 6바라밀의 궁극적 목적이기도 하지만, 또한 나머지 다섯 바라밀의 실천 속에서 매 순간 습응되며, 역으로 다섯 바라밀의 실천을 돕는다. 6바라밀은 여섯이지만, 동시에 하나인 것이다.
6바라밀의 뜻은 무량하게 크고 깊지만, 그 실천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대지도론』에서 밝히는 이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부처님의 도를 향해가며 느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되며,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많은 불자들이 『대지도론』을 통하여 6바라밀을 삶 속에 잘 녹이고, 구경(究竟)에 부처님이 말씀하신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일미(一味)를 맛보시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