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엿보기
실험적 형태의 예술이 스테레오타입에 도전해 충격을 가하는 과격한 현대성이라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은 ‘심미적 쾌감’에 가까운 온건한 현대성이다. 김윤숙의 시는 후자에 속한다. 제주의 삶과 정서를 주조로 한 삶의 구체적 현장성이 사유의 잔잔함과 더불어 형상화되었던 첫 번째 시조집 『가시낭꽃 바다』(2007년, 고요아침)에서부터, 겸허한 삶의 윤리 감각이 뒷받침되는 구도적 자아성찰의 진경을 펼쳐놓은 네 번째 시집 『참빗살나무 근처』(2018, 작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는 시적 자아의 내부를 지향하는 여일한 구심력으로 정형적 깊이를 더해가는 완만하고 차분한 이행이었다. 제주도만의 풍물과 각별한 정취, 꽃을 가꾸는 직업인으로서의 경험과 삶의 투영, 기억의 잔양殘陽 등은 김윤숙의 시에 풍부한 서정성을 부여해 왔다. 제주의 “역사를 전면에 배치하지 않고 개인의 일이나 삶의 문제로 에둘러가는 방식”은 김윤숙의 시가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적 목적지가 의미와 형식의 미학적 조화에 있음을 방증한다. 그런 맥락에서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는 ‘옆으로 꼬부라진 한 조각 연꽃잎’이 결정적으로 도드라진다는 점에서 이전의 형식과는 구분된다. 시집의 서시 「발견」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내 안의 빈 틈새 다시 그린 밑그림
첫새벽 잎새 하나 칠하고 덧칠했다
바다가 삐져나오나 눈곱이 자꾸 낀다
- 「발견」 전문
「발견」은 시작詩作에 관한 쓰기라고 할 수 있다. 초장이 시의 초고를 지시한다면, 중장은 첫새벽이라는 시간적 배경 속에서 써놓은 원고를 고치고 다듬는 시인의 열정을 보여준다. ‘밑그림’이라는 단어가 환기하는 이미지로 인해 작품은 ‘시 쓰기’라는 대상을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시점에서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느낌이다. 초장과 중장이 밑그림을 그린 후 칠하고 또 덧칠하는 시작의 과정을 명시한다면, 종장은 시인이 화폭 위에 펼쳐진 작품을 머릿속에서 재생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바다가 삐져나오나 눈곱이 자꾸 낀다”란 시인의 마음에 떠오르는 그 어떤 장면이며, 그의 의식 속에 자리 잡은 영상을 재구성한 이미지다. 이는 서경화된 심상이라는 점에서 일반의 서경적 구조와는 차이를 갖는다.
그런데 종장에 사용된 “눈곱”은 시인의 내면에 떠오른 정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로 보기 힘든 단어다. ‘눈곱’은 눈에 쌓인 이물질과 먼지가 안구 옆의 오목한 부분에 쌓인 것으로, 인체의 분비물 대부분이 그러하듯 불쾌한 느낌을 동반한다. ‘눈곱’은 아주 작은 것이나 적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시의 제목에 비추어 시의 자그마한 흠결을 발견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혹은 앞서 말했다시피 ‘눈곱’이 시인의 생리적 현상이라고 할 때, 눈곱도 떼지 않고 첫새벽부터 시를 다듬고 있는 모습을 연상해야 하는 걸까? 결과적으로 ‘눈곱’이라는 이질적인 시어로 말미암아 종장의 의미는 지극히 불투명해진다. ‘눈곱’이라는 혐오스러운 단어의 사용은, ‘나의 부정함은 타자의 정숙함을 유린하는 것’이라는 라캉의 이론을 변용하자면 ‘시적 정숙함을 유린하는’ 부정함이다. ‘눈곱’은 시적 단아함을 해치는 미적 결핍이자 동시에 형식적 잉여이다. 정연한 연꽃잎 속 한 잎의 꼬부라짐이다. 이처럼 김윤숙의 시는 의도적으로 시의 부정함을 노리는 시어의 운용이 의미에 균열을 일으키는 파격을 불러온다.
- 신상조(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