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 그 이후, 2026년에 토요타를 덮칠 수익 절벽
새 경영진의 전략은 무엇인가?
세상이 탄소 중립을 향해 격변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 2년간, 전 세계 자동차 기업들은 전기차 최우선으로 사업의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런데 토요타는 전기차 관련 정책 판단이 제자리에 멈춰 선 것처럼 보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존의 전동화 전략은 크게 수정되지 않았고, 멀티 패스웨이만을 공염불처럼 계속 강조했다. 전기차로 옮아가는 데 필요한 구조 변화에 대해서도 거의 논의하지 않았다.
그러던 2023년 1월, 토요타는 전격적인 사장 교체를 단행했다. 14년간 사장이었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회장으로 경영에서 한발 물러나고, 사토 고지 사장을 비롯한 젊고 에너지 넘치는 새로운 경영진 체제로 새 장을 열었다. 그 2년간의 공백을 만회하기 위해 사토 고지의 새 체제는 새로운 EV 전략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토요타의 멀티 패스웨이(전방위) 전략을 유지하면서도 국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유럽, 미국, 중국의 EV 패권 경쟁에 뒤처질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진 것이다. 토요타는 새 체제에서도 멀티 패스웨이 전략을 견지하겠다고 한다. 다만, 앞으로는 ‘전기차 최우선’이라고 단언하면서 전기차 기반을 구축하고 구조 전환에 진지하게 임하겠다는 각오를 나타냈다. 또한 차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구조와 제조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고, 새로운 전기차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관건은 토요타의 멀티 패스웨이(전방위) 전략이다. “적군은 탄소지, 내연기관이 아니다”라는 도요다 아키오 회장의 말과 함께, 당장은 포지션 우위인 하이브리드로 돈을 벌고, 밸류 체인도 수익화하고,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둔화하는 ‘캐즘’이 벌어준 시간에 전기차도 차근차근 키워나가겠다는 것이다. 토요타로서는 당연한 전략이다. 저자도 그러한 방향성은 토요타의 장점이 된다고 인정한다. 다만, 멀티 패스웨이를 강력히 추진하더라도 기업 경영의 지속가능성이나 인프라 발전을 따질 때, 기술적으로 힘을 가지기까지는 합리적인 순서를 거쳐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에너지 전환 효율이 높은 순서나 인프라 기반을 구축하는 데 드는 시간을 고려하면 연료전지차, 탄소 중립 연료 차, 수소 엔진 차보다 더 빨리 전기차의 시대가 올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토요타의 최우선 과제는 타 경쟁국가들에 먼저 도래할 전기차 기술에 대해 서둘러 주도권과 지배권을 장악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2026년이 오기 전, 전기차로의 전환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더 많은 토요타의 하이브리드차가 판매되고 그만큼 토요타는 가파른 수익의 산을 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2026년 이후 미국/유럽/중국에 내야 하는 환경규제 대응 비용이 늘어날 것이므로 수익은 반드시 하락으로 돌아선다. 그 하락세가 ‘내리막길’이 될지, ‘골짜기’가 될지, ‘절벽’이 될지는 토요타가 보여줄 2026년 이후 전기차 경쟁력에 따라 시나리오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안이하게 대처하다 전기차 전환 계획이 늦어지면 제아무리 토요타라고 해도 절벽에서 떨어질 수 있으며, 현재 토요타의 전기차 사업 계획으로는 타이타닉호처럼 순식간에 침몰할 수 있음을 냉정하고 분명하게 경고한다. 미국/유럽/중국은 전기차를 추진하겠다며 파워 폴리틱의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데, 신중론을 주장해 본들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배터리도 없는 쭉정이가 되어 무대에서 사라질 일만 기다리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세계 각국은 에너지 정책과 자국의 경제 안보 강화를 위한 전략을 결부시키고 있다. 경제 안보 측면에서 청정에너지 산업을 일으키고, 선진국의 핵심 산업인 자동차 산업을 지키며, 중요 공급망(반도체와 배터리)을 지배하려는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강대국의 룰 메이킹에 치여 국제 경쟁력이 위태로운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으니, 자국 산업과 경제 안보를 지키려는 서구의 국가전략에 부딪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공산이 크다. 때문에 토요타는 낙관하지 말고 전기차에 필요한 구조 개혁, 소프트웨어 및 디지털 경쟁력을 만드는데 1초도 시간 낭비하지 말고 전동화 전략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레이트 리셋 중인 세계 전기차 시장
EV 전쟁은 이미 발발했다
2021년 다보스 포럼의 주제이기도 했던 ‘그레이트 리셋’은 위기의 모든 부분을 혁신해야 한다는 무거운 문제의식의 표현이었다. 자동차 산업도 처지는 다르지 않다. 산업이든 기업이든 탄소 중립을 실현하면서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찾아내려는 그레이트 리셋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막다른 길에 도달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엔진 차를 서둘러 전기차로 바꾸려는 정책이 발표되고 있다. 정책과 자본의 힘을 동원해 기업을 탄소 중립이라는 강력한 규제로 옭아매고 있는 셈이다. 탈탄소의 무거운 책임을 지는 자동차 기업에는 공급자로서 막중한 역할이 있다.
전기차를 통한 GX(그린 트랜스포메이션)의 실현에 가속도를 붙이려면 엔진을 모터로 바꾸는 하드웨어의 진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소프트웨어로 전기차를 최적으로 관리하고, 서비스 지향적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SDV(Software-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와의 결합이 필수다. GX를 실현하려면 전기차가 필수이며, 전기차의 보급은 ‘DX(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실현의 기반이 된다. 그 과정에서 자동차는 기술적인 공산품에서 소프트웨어가 정의하는 SDV로 진화한다.
토요타의 경쟁 상대인 세계적 자동차 기업들도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다. 전략은 각기 다르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2023년 인베스터 데이에서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벗어나 세상을 지속 가능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전기차, 재생에너지의 개발과 전기 저장 등 총 다섯 개 영역에 주력해서 사업을 촉진할 계획임을 발표했다. 간단히 정리하면 테슬라는 전기차 기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전력회사 같은 존재가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에서 제조 비용을 절감하고, 4680 배터리 셀의 비용도 인하하며, 48V 전원 시스템으로 차량 전체의 전기 부품을 통일하는 등 곳곳에 혁신적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제조공정에서도 지난 백 년간 이어져 온 전통적인 자동차 생산방법을 근본적으로 변경할 계획이다. 토요타가 엔지니어링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생산 시스템을 테슬라는 완전히 새로운 ‘병행 및 순차 결합’ 방식으로 바꾸려 한다. 인베스터 데이를 보고 저자는 테슬라가 얼마나 끊임없이 뜨겁게 일하는지 새삼 통감했다고 감탄한다.
중국 전기차의 선두 주자 BYD는 전기차 판매량이 세계 2위이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더한 NEV(신에너지 차량)의 판매대수로는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이 같은 파죽지세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BYD의 성공 요인은 지금까지 다른 NEV가 공략하지 않았던 10만~25만 위안의 대중적 가격으로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선행 도입한 데 있다. 배터리 개발 및 생산, 모터, 인버터, ECU, 전력반도체 등 NEV 제조의 전 과정에서 수직 통합의 공급망을 구축함으로써 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또한 해외 진출에 매우 적극적이어서 태국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내 사업 확장을 하고 있다. EV 전쟁은 선진국뿐 아니라 신흥국에서도 발발하기 직전이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를 비약의 기회로 보고 세계 톱3의 전기차 기업을 목표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2020년 정의선 회장이 취임하면서 CASE(자동차 산업의 디지털 혁명을 나타내는 표현)에 대응하는 차세대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전기차에 대한 대응도 매우 빨라 급부상하고 있다. 차량 성능도 좋은데 디자인도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현대의 실력을 일본만 모르고 있으며, 한국 차의 기세는 당분간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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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EV 전쟁》의 저자 나카니시 다카키는 “전기차를 제패한 나라가 세계 경제를 지배한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2020년을 기점으로 토요타를 포함한 일본 자동차 업체가 패배하고 일본 내 산업과 자동차 관련 기업이 쇠락할 수도 있다는 비관론이 감돌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토요타는 이번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자동차가 등장하기 시작한 백여 년 만에 심각한 쇠퇴를 맞게 될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다. 캐즘으로 잠시 전기차 시장이 둔화되고 있지만, 전기차 시대가 올 것이란 거대한 흐름의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전문가들은 “하이브리드가 벌어준 시간을 각 기업들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상위 업체 순위가 뒤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토요타는 지금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세계 자동차 산업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이미 시작된 EV 전쟁은 제조업뿐 아니라 각국의 경제와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좌우할 중대 사안임이 분명하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독자는 한국은 과연 어떤 전략으로 EV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