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과 ‘꿈’ 사이를 뒤척이며
깨어있는 존재들에게 건네는 비몽사몽한 고백
2020년 『하얀 나비 철수』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윤유나 시인의 첫 산문집 『잠과 시』가 아침달 〈일상시화〉 시리즈를 통해 출간되었다. 이번 책에서 시인은, 잠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기도 하고, 현재 상황에서 불특정한 과거와 미래의 일을 곱씹기도 한다. 또한 잠의 집합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명력에 대해 골몰하며 성장과 죽음, 자유와 억압, 상처와 훼손 등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잠과 시』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생명체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종달새와 비둘기, 까치와 나비, 잠자리와 아기 새 등. 그러나 시인의 눈에 포착된 이들은 대개 누워 있거나 죽어 있다. 사체를 두고 그냥 지나칠 법도 한데, 그는 10L 종량제 봉투나 플라스틱 케이스 등에 그것을 담는다.
“입구를 미리 말아놓은 쓰레기봉투에 비둘기를 집어넣었다. (중략) 비둘기는 10L 봉투에 적당히 잘 맞았다. 5L는 너무 작았을 것이다. 10L가 편안하게 잘 맞는 사이즈였다. 여기가 비둘기의 평화롭고 사적인 장소라고 믿고 싶었다.”(「비둘기와」 부분)
온전치 못한 모습으로 죽은 새를 대거 등장시키면서까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잠의 공간적 습성이다. 그에 따르면, 잠과 죽음이 다르게 표현되는 경계는 온전함에 있다. 흔히 우리는 죽은 이들이 영면에 들기를 고하며 장례를 치른다. 딱딱한 관과 묘지는 죽은 이들의 가장 고유하고 사적인 장소가 되고, 죽은 자들은 자신만의 편안한 장소에서 잠이 든다.
또한 그는 성장과 회복의 순환으로서 잠을 이야기하며, 그 안에서 재생되는 생명력에 집중한다. 시인에게 잠은 ‘살아 있음’ 그 자체이고 그 풍경 안에서 우리는 진정하게 온전해지고 고요해진다. 훼손된 감정들을 분출하며 헤집고 나오면서, 보다 솔직하고 선명한 세계로의 내딛음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날도 새벽 2시에 일어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침대 옆 책상에 앉아서 흰 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중략) 바깥으로 어둠을 가르며 전철이 지나가고 있었을 테지만 그 소리를 묻으며 고요히 내 속의 출렁이는 물을 게워냈다.”(「되어 가는 동시에 무너지는」 부분)
상처를 헤집고 도달한
가장 사적이고 온전한 ‘잠’의 세계
『잠과 시』는 상처와 훼손을 이야기하며 회복을 통한 성장의 가능성을 이끌어 낸다. 앞서 시인에게 잠은 ‘살아 있는 것들의 고유한 습성’이자 ‘편안하고 사적인 장소’로 작용한다. 시인은 잠과 죽음의 경계를 저울질하면서도 그 둘을 일상 선상에 함께 두기를 바란다. 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꿈은 잠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그것은 잠과 죽음이 동일시될 수 없는 가장 큰 매개체다. 꿈에서 우리는 끝없이 이동하여 머무르고 여러 난기류를 통과하며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다.
“그리고 어쩌면 잠이라는 행위가 공간이 되게 하는 방식으로 살아 있는 것은 죽은 것을 위하는지도 모르겠다. 잠은 언제나 살아 있는 것들의 고유한 행위이고 동시에 수없이 이동하고 머무르는 공간이다.”(「언제나」 부분)
『잠과 시』에서 등장하는 꿈은 현실과 종종 구별 짓기 어렵다. 시인은 과거와 미래 혹은 공상의 일들을 꿈으로 연결 짓곤 하는데, 실제 꿈속에서의 대화나 과거의 사건들은 이미 종료된 일임에도 현재에서 종종 재평가되고, 그 생명성은 무한히 확장된다. 그에게 잠은 접속사 ‘그리고’의 세계이자 이쪽의 나와 저쪽의 나를 연결 짓는 선명한 동굴이다. 동굴 안은 경계 없이 평등하다. 그는 단지 그 어둠의 궤적을 따라 글을 쓰고 반려견을 돌보며 끊임없이 나를 순환시킬 뿐이다.
결국 시인에게 잠은 사사롭고 시끄러운 삶의 안쪽을 벗어나는 일과 같다. 잠과 시를 통해 혼자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고요히 자신의 새를 쓰다듬는 시인은 그 꿈결 같은 시간의 사이를 지나는 동안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여러 번의 잠을 놓치고, 여러 편의 시를 붙잡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