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결실, 콩 한 알
〈콩 한 알〉은 2014년 출간된 이상교 시인의 동시집 《예쁘다고 말해 줘》에 수록된 시다. 500자가 넘지 않는 시에는 짤막하지만 여운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땍때구르’ 굴러가는 ‘통통 살진 콩 한 알’을 좇아 바싹 마른 생쥐 한 마리가 달려간다. 그런데 구르던 콩알이 마루 틈새에 콕 끼어버렸다. 바싹 마른 생쥐는 그 콩이 먹고 싶어 열 밤 넘게 ‘침 잴잴’ 흘리며 앞발, 뒷발, 꼬리를 놀려 보지만 마루에 낀 콩알을 뽑아낼 수 없었다.
‘그런 저런 어느 날’ 통통 살진 콩알에서 ‘바싹 마른 생쥐 귀때기 닮은 연두 싹’이 돋아났다. 이제 콩 한 알은 콩나무가 되어 수많은 콩알을 주게 되었다. 간절한 기다림의 결실일까? 생쥐가 잴잴 흘린 침 덕분일까?
시의 시각적 경험, 《콩 한 알》
짧은 시 〈콩 한 알〉은 절제된 단어를 사용해 이야기의 씨앗을 담아냈다. 그림 작가는 몇 줄 되지 않는 시 행간에서 여백을 찾아내고, 그 여백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시각화하여 이야기 씨앗에 꽃을 피웠다.
그림 작가가 시각화한 ‘바싹 마른 생쥐 한 마리’ 캐릭터가, 그림 작가가 창조한 상상 속의 무대에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사람이 떠난, 오래된 한옥 안에는 깨진 기와 아래로 방까지 뚫린 천장이 있고, 버리고 간 도자기며 낡아서 삐걱대는 마루가 있다. 그 사이를 부지런히 움직이는 생쥐와 콩은 글자 없는 페이지를 지나칠 때도 이야기의 활력을 이어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주하는 구체적인 상황과 그때마다 표현되는 생쥐의 표정은 애초 이 시가 품었던 정서와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고 정확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시인이 통통 살진 콩알에서 ‘연두 싹 도란도란 돋아났다’는 말로 시를 맺은 것에 더해, 그림 작가는 그 콩 한 알이 뿌리가 되어 줄기가 되고 더 많은 생쥐 식구가 콩을 함께 나누어 먹는 장면을 마지막에 그려 넣었다. 시인이 예고한 ‘콩 한 알이 가져다줄 풍성함’은 그림책에서 완성되어 아름다운 결말을 이루었다.
시와 그림의 대화로 완성된 《콩 한 알》을 통해 어린 독자가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시의 즐거움을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하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