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읽는 법을 배우다
느리고 깊게, 부드러운 손가락과 눈으로 읽는 실존철학
이 책은 독자들의 삶에 실존의 분위기가 스며들도록 진실한 존재를 꾸준히 철학적으로 탐구하겠다는 목표로 기획된 ‘실존의 분위기와 철학’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지은이는 실존철학이 사람에게 삶의 변화를 청유하는 철학이라고 말한다. 글자 그대로 보면 ‘실존(實存)’이란 실한 존재, 풍족한 존재, 잘 여문 존재, 참다운 존재를 의미한다. 실존하는 사람은 자기를 놓치지 않은 채 스스로의 본질에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실존하지 않는 사람, 즉 자기를 상실한 사람은 생존에만 급급해 허둥지둥 살아갈 것이다. 그러면 자기 자신을 선택하고 획득하는 방법, 그리하여 본래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실존철학을 우리는 어떻게 읽고 소화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그 길을 제시하면서 아래와 같은 니체의 글귀를 인용한다.
“오늘날은 ‘노동’의 시대, 즉 … 성급히 해치우는 초조함의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는 모든 일을 즉시 ‘해치우기를’ 원하고, 모든 오래된 책과 새로운 책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어문학은 그렇게 쉽게 무언가를 해치우지 않습니다. 그것은 잘 읽는 법, 즉 느리고 깊게, 전후를 고려하면서, 열린 마음으로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부드러운 손가락과 눈으로 읽는 법을 “가르쳐줍니다.”(프리드리히 니체, 『아침노을』)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어문학’은 고전어로 쓰인 작품을 탐구하는 고전어문학으로 오늘날의 인문학과 같다. 즉 이 구절에서 니체는 인문학이 쓸모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 쓸모는 잘 읽는 법을 가르쳐주는 데에 있다. 니체에 의하면 ‘잘 읽는 법’은 “느리고 깊게, 전후를 고려하면서”,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부드러운 손가락과 눈으로 읽는” 것이다. 지은이는 여러 내용을 빠르게 요약해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에피소드마다 실존철학자들의 글귀 하나하나를 직접 읽으면서 음미해보는 이 책의 읽기 방식이 독자들에게 ‘잘 읽는 법’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물고기를 잡아주면 하루치 식량을 공급해주는 것이고,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먹을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란 말이 있다.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펄쩍거리는 물고기에 비유해도 지혜의 핵심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독자들이 각 에피소드의 글귀를 읽고 곱씹어 생각하는 과정에서 느리고 깊게,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유도한다. 이것은 힘차게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직접 잡아 요리해서 식사하는 과정과도 같다. 그 과정이 힘들 수 있지만, 이 시간을 거치는 동안 독자들에게는 철학을 스스로 읽는 힘이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힘으로 독자들은 필요로 하는 지식을 평생 손수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진실한 존재는 어떻게 피어나는가?
향기를 통해 퍼져 나가는 실존의 아름다움
진실하게 존재하는 사람에게서는 어떤 향기가 풍길까? 이 책은 ‘실존의 의미’, ‘실존의 기분’, ‘실존의 잡담’, ‘실존의 호기심’, ‘실존의 결단’, ‘실존의 회복’, ‘실존의 휴식’, ‘실존의 인물’, ‘실존의 사랑(1)·(2)·(3)’, ‘실존의 책임’을 다루는 열두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그에 대한 답을 탐구한다.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하이데거의 주요 구절을 되새김질하며 실존철학의 근본이 되는 개념과 현상을 설명하고 진실한 존재가 피어나는 과정을 단계별로 살핀다. 하이데거는 실존주의의 창시자인 키르케고르와 대표자인 사르트르 사이를 잇는 실존철학의 대가이다. 일곱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러셀과 함께 게으름의 의의를 생각해본다. 쉴 틈 없이 해치우는 노동을 일삼는 사람은 스스로 실존의 꽃을 피울 여유조차 잃어버릴 것이다. 여덟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사르트르의 철학적 소설 『구토』의 주인공을 실존의 근본 개념들에 기초하여 살핀다. 그리고 아홉 번째, 열 번째, 열한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각각 세 명의 실존철학자의 사랑 개념에 관해 숙고해보는데, 순서대로 운명애를 다룬 니체의 경구, 삶과 사랑에 관해 키르케고르가 일기장에 남긴 기록, 초월적 사랑에 대한 칼 야스퍼스의 강의록 한 토막을 들여다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열두 번째 에피소드는 코로나19로 지친 동료 시민들에게 실존철학을 통해 힘을 주고자 사르트르의 휴머니즘적 실존주의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