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의 실천적 수행의 중심에는 붓다가 깨달은 진리인 사성제가 있으며, 이는 초기경전에 이어 설일체유부로 계승된다. 유부의 사상가들은 성자의 단계인 견도에 도달하고자 제현관(諦現觀, satyābhisamaya)을 수행의 핵심 개념으로 채택한다. 현관은 초기불교에서 존재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의 경험인식과 같은 의미이다.
이 책은 명상관찰자가 분석과 통찰의 대상이 되는 존재요소인 5온의 특징을 ‘무상ㆍ고ㆍ무아’로 이해하고 ‘자아’와 관련짓지 않는 점진적 과정에 대해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번뇌를 단절하는 심리적 과정이나 존재론적 특징을 중심적으로 탐색하기보다 인지적 앎의 주체인 수행자가 통찰하는 5온이 명상 경험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중점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는 성도(聖道)인 견도(見道)에 이르기까지 수행단계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유부의 수행도론은 일체법(一切法)을 의미하는 5온에 대한 단계적 통찰과정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2.
전체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중요한 유부 논서에서의 현관 개념에 주목하여 제법과 현관의 관계를 검토함으로써 ‘법의 이론’과 ‘실천의 이론’의 관련성을 고찰하고 있다. 제1장 서론에서는 유부 수행도의 특징과 기존의 연구를 정리하고, 제2장에서는 정통유부 문헌을 중심으로 현관 개념을 살펴보고, 현관의 대상이 되는 사성제법, 법을 관찰하는 혜(prajñā)에 대한 유부의 이해를 중심으로 검토한다. 제3장부터 제5장까지는 견도 이전 가행위에 속하는 부정관과 지식념, 사념주, 사선근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법의 이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유부의 수행체계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이 같은 수행체계는 일체법에 대한 수행자의 인식이 변화 발전하는 상태를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비바사론」에서 제시하는 두 가지 수행체계를 비교하고 있다. 제6장에서는 유부의 번뇌 개념이 두 가지 관점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먼저 존재론적 관점은 5위 가운데 마음(心)과 상응하는 심소법의 범주 내에서 오염된 심리작용을 총칭하는 일반명사로 번뇌의 법상(法相)을 분류 체계화한다. 둘째로 실천 인식론적 관점에서는 유부의 수행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수면(隨眠)이란 개념을 사용하여 수행력으로 단절하기 어려운 번뇌의 특징을 강조한다. 한편 제7장에서는 「심론」 계열의 논서를 계승하는 「구사론」과 정통유부 계열 논서의 수행 순서가 다른 점에 주목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행의 차이점보다는 혜가 통찰하는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부가 제시하는 수행체계는 수행자가 명상체험에서 인식하는 궁극적 실재인 일체법의 변화상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제8장에서는 고(苦)의 주요한 원인인 유신견을 존재론과 인식론의 관점에서 검토하여 존재의 특징에 대한 바른 이해와 유부 수행도론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을 고찰하였다.
이제까지의 유부 아비달마에 관한 연구는 존재론적 관점에 집중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행론에 관한 연구도 없지 않지만 유부 수행단계를 관통하는 일체법인 5온에 대한 통찰이라는 측면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이 책은 일본학자 다나카 고쇼(田中敎照)가 지적한 정통유부의 수행체계와 「구사론」에서 제시한 수행체계의 차이점에 주목한다. 그 결과 명상에서 체험하는 성자나 수행자의 혜(慧)의 통찰대상인, 일체법인 5온의 단계적인 변화상이 인무아를 증득해 가는 점진적 수행단계의 표현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3.
이러한 고찰을 통해 이 책은, 5취온의 특징이 무상ㆍ고ㆍ공ㆍ무아라고 깨닫는 인무아(人無我)의 증득이 유부 수행도의 궁극적인 목적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이를 유부가 제시한 수행체계의 검토를 통해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아비달마 사상가들의 일체법에 대한 체계적인 탐구는 실천수행자가 선행해야 하는 중요한 학습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