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안에서의 갈등과 갈증을 풀어헤치며
『생의 한가운데』에서 주인공 니나는 “삶의 의미를 묻는 사람은 그것을 결코 알 수 없고, 그것을 한 번도 묻지 않은 사람은 그 대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이는 삶 속으로 그저 던져진 것 같은 순간에 인생의 의미를 회의적으로 묻는 사람과 온몸으로 살아내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을 온몸으로 그러나 담담히, 꾸밈없이 살아낸 기록을 전하는 시집이 출간되었다. ‘내 뇌리에는 어째서 생이란 단어가 떠나지 않고 무엇을 하든 그것에 매듭지어지는지’, ‘생 안에서의 갈등과 갈증을 소박한 행복과 긍정의 너그러움으로 풀어헤쳐 볼까나’(「생 life」 중) 하고 읊조리는 신숙희 씨의 첫 시집이다.
시인은 평생 끌어안고 산 일기장에 개인사의 굴곡들을 풀어놓으면서 삶의 무게를 이겨왔노라고 말한다. ‘이래저래 눌러온 한의 뭉치들 한 가닥만 집어 들면 질질 끌려 모두 따라 나오니 콕 집어 몇 부분만 지울 수도 없는 노릇’(「삶」 중)이라는 그의 시에는 생의 진한 무늬, 그 회한과 통찰, 아픔의 승화 등이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춰져 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여인들처럼 가득 찬 빈 가슴 이야기
첫 장인 ‘향수’에서는 고마운 사람들, 보고픈 얼굴들, 잊힌 이름들에 관한 향수와 가족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다. 지긋한 나이에 들어선 시인의 눈에는 이별조차 따스하고 애틋해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사람은 / 현재보다 미래에 / 희망을 걸지만 / 현재보다 과거 추억에 / 순정을 느끼는 것 같다’(「산촌 고향」 중)
시인은 인생길을 책으로 써가듯 한 장 한 장 그 사이를 걸어간다. 그 길에는 젊은 엄마에서 중년의 여인, 지긋이 나이든 한 사람이 서 있다. ‘중년의 문턱에 걸린 내 발걸음을 가벼이 되돌려’가다가(「옛 추억」 중), ‘말없이 살아보려고 애쓴 시절이 얼마나 길었으며 티 없이 지내보려고 몸부림친 흔적이 얼마나 깊었던가’ 하고 회한에 젖기도 한다.(「물처럼 바람처럼」 중) 무엇보다 엄마의 텅 빈, 무한히 가득 찬 가슴을 가족 이야기에서 꺼내 보인다. ‘내 몫이면서도 내 소유가 아니고 내 소유가 아닌데 내 것으로 지목된 너’(「자녀」 중)를 대하는 엄마 마음과 아들을 앞세운 엄마의 한을 엄숙하게 고백하기도 한다.
‘내 아이 우리 상아는 / 가시나무새처럼 / 아픈 줄 모르는 / 찔리움 속에서 / 구원을 노래 부르며 / 스러져 갔다 / 어미 영혼의 찌든 때를 / 지우기 위해 / 있는 힘을 다해 / 곱게 노래 불렀다’(「가시나무새」 중)
삶이 시가 되고, 시가 삶이 되어
한편 시인의 일상적인 독백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똑같구나 하는 보편성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쉬지를 못하는 버릇이 / 왜 생겼을까? / 젊은 시절이 / 참 아쉬웠고 / 나이 들며 / 쉰다는 게 / 세월을 욕보이는 것 같아 / 바쁘게 지냈더니 / 이젠 / 그냥 있지를 못하게 됐다’(「의욕」 중)
마지막 장인 ‘신앙’에서는 생을 살아내는 분투에서 초월과 수용으로 자기를 극복하는 감동적인 장면도 엿볼 수 있다.
‘역행할 수 없는 것이 / 삶임을 깨닫는다’ ‘너를 상실한 고통은 / 이제 / 나의 깨어졌던 머리를 / 맑게 치유하고 있다’(「상실의 고통」 중)
저자의 시는 한은 담담하게, 추억은 애틋하게 그려내어 깊은 잔상을 남긴다. ‘세월이 흐를수록 깊이 쌓이는 하고픈 이야기들을 한 톨도 흘리지 말고 주워 담는 것’(「하고픈 이야기」 중)이 시인의 바람이라고 하니, 앞으로 나올 그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
‘착잡할 때 글을 쓰면 / 어느새 덤덤해지고 / 상쾌할 때 몇 자 적으면 / 훌쩍 유쾌해지네 / 색색 실로 타래를 만들면 / 한쪽은 굵고 촘촘하고 / 다른 쪽은 듬성하고 느슨한데 / 탐탁찮은 넋두리라도 / 함께 열심히 고뇌해 온 벗이니 / 촘촘하면서도 느슨한 / 내 글쓰기가 / 사랑스럽다네.’
- 「글쓰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