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재료와 스타일을 포개어 완성한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겹겹의 역사
지우 작가는 돌의 시간과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여러 층위의 재료, 텍스처를 활용해 새로운 그림 스타일을 완성했다. 백만 살이 된 돌이 보내는 백만 년 일 일부터의 하루하루를 촘촘히 나누어 전개하는 전반부에서는 기하학적인 패턴과 계산된 그래픽, 노이즈를 한 겹씩 덧대어 조금씩 변화하는 나날의 고유함을 시각적으로 재현했다. 또 상황마다 들뜨고, 놀라고, 때론 침잠하거나 감동하는 돌의 감정은 서사에 재미있는 리듬감을 부여하며 독자를 몰입하게 한다.
돌이 큰 판형을 꽉 채우는 새까만 땅속으로 끝없이 내려가기 시작하며 시간의 개념이 변한다. 무한하게 흐르는, 가늠할 수도 없는 긴 시간 속에서 돌은 나뉜 프레임을 사이를 쉼 없이 오르내린다. 구아슈를 활용해 그린 땅의 질감은 역동적인 운동성과 육중한 무게감이라는 상반된 특질을 동시에 보여준다. 시각적으로 펼쳐지는 돌의 시간을 손으로, 눈으로 좇다 보면 어느새 그 시간의 구체적인 이름들이 장면을 가득 채운다. ‘이른 아침 땅의 숨결, 대한 의병의 땀방울, 어느 소년의 물수제비, 여름 장대비에 떨어진 떡갈나무 이파리….’ 돌의 온몸에 새겨진 매일의 흔적은 생생한 역사가 된다.
나는 말이 없지만 어제를 기억하고
발이 없지만 오늘을 살아요
산, 강, 집 앞 공원과 골목길.... 발끝이 닿는 곳곳마다 있는 각양각색의 돌. 지우 작가는 어느 날 이 돌들 중에 나보다 짧은 생을 산 돌은 없다는 생각에 이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돌이 살아온 시간을 헤아리고 상상해 타임라인을 세세히 기록하고, 독자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한 모양으로 깎고 다듬는 데에 4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묵직한 메시지를 고유한 개성과 유머로 새롭게 풀어낸 점이 돋보이는 『나는 돌이에요』는 마치 돌처럼 어느 날은 가만히, 또 어느 날은 엎치락뒤치락하며 만들어 온 작가의 세 번째 그림책이다.
무엇이든 빠르고 쉽게 변화하는 지금,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추며 새로운 내일로 나아가는 우리에게 백만 살 된 돌은 몸소 보여 준다.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지금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생의 본질이라고 말이다. 돌은 우리 곁의 가장 친숙한 일상의 사물인 만큼 오래전부터 시, 산문, 음악, 그림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그림책 『나는 돌이에요』가 선사할 나의 자리를 무언가와 바꾸어 보는 경험, 무언가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경험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나를 둘러싼 세계가 더 깊이, 넓게 열리는 감각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