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내가 삶을 사랑한다는 의미, 그리고 사랑하겠다는 의지,
삶이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믿음이다.”_ 류시화 시인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구원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이문재 시인이 두 손으로 모은
바라고 염원하는 시들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제국호텔』, 『지금 여기가 맨 앞』 등으로 잘 알려진 이문재 시인이 기도하는 마음을 담은 시를 모아 엮었다. 기도라는 것, 무언가를 바라는 행위는 자연스레 종교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지만 수녀나 신부 혹은 스님이 아닌 평범한 이에게도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랐던 적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간절했던 기억을 잃은 채 막막한 삶 앞에 다다라 있다.
그런 우리에게 시인은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절절한 마음도, 애끓는 심정도, 조마조마한 기대도, 삶에 끼어드는 모든 찬란한 갈망의 순간은 정제된 시어 속에서 기도로 뿌리내린다.
기도는 하늘에 올리는 시
시는 땅에 드리는 기도
시인이 모은 시들은 주제에 걸맞게 모두 간절한 바람을 담은, 하다못해 그 바람의 한 귀퉁이나마 꼭 쥔,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시다. 그것은 때로는 소박한 일상에 대한 감사로, 때로는 맑게 타오르는 종교적 정열로, 가끔은 사랑을 속삭이는 밀어의 형태로, 허물어진 세상의 고통을 목도한 뒤의 반성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그 모든 소망을 담아내는 데 다른 이들의 글을 빌리고자 한다.
나희덕, 김현승, 안도현, 도종환, 권정생과 같은 널리 알려진 친숙한 시인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시선집을 엮은 류시화 시인은 물론, 네루다, 릴케, 타고르 등 그 이름이 빛나는 해외 시인들과, 이해인 수녀, 틱낫한 등 종교인인 동시에 명필가인 이들의 글을 한데 모은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간절한 그 무언가를, 간절함에 대한 간절함을 되찾자고.
그늘진 곳에 깃들어
단단한 빛을 내려는 마음
“모두가 저마다 맨 앞”이라고 말하던 시인은 이제 한 발짝 물러나 당신의 그림자 안에 깃들겠노라 말하는 시를 건져 낸다. 따가운 햇살 아래도, 깜깜한 어둠 속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넉넉한 그늘 속에서 빛나겠다는 고요한 바람은 겸양보다 구도에 가까우며, 단순하지만 명확한 지혜를 담고 있다.
두 손이 어긋난 기도의 모양은 손을 비벼가며 싹싹 비는 애원으로 비치기 쉽다. 바라는 것 없어 텅 비어버린 마음도, 지나친 애원에 닳아버린 마음도 아닌, 간절히 바라되 결과를 수용할 줄 아는 마음을 단단한 마음이라 하자. 이제 시인은 그 마음의 자리를 그림자 속으로 정한다. 그 마음이 내는 은은하게 타오르는 빛은 경건하면서도 현실적이고, 겸손하지만 비굴하지 않으며 다만 눈 감은 기도와 달리 눈부신 햇빛을 막아주는 그늘 속에서 ‘지금 여기’의 모든 것을 또렷하게 응시하는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