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시설 수감자 중에는 참으로 불운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의료소년원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내 인생에서 아주 작은 무언가가 달라졌다면, 나 역시 소년원에 들어와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267쪽)
빛이 닿지 않는 담장 너머의 세상,
교도소 정신과 의사가 그려낸 또 하나의 의료현장
교도소나 구치소, 소년원 등의 교정시설 수감자 중에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법을 어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감시설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주는 불안으로 인해 정신질환을 얻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이미 ‘몸의 구속’과 함께 ‘마음의 감옥’에 갇힌 자들이다. 그러나 법의 현실은 이들의 치료를 가로막아왔다. 극한의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섭식장애가 절도로까지 이어진 소녀, 의지할 곳 없어 좀도둑질을 반복하며 교도소와 바깥세상을 오가는 노인, 심한 정신질환으로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해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구치소에 계속 구금된 남성 등등 정신과 의사로서 교정시설에서 온갖 인생을 만나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담장 너머 또 하나의 의료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하며 우리가 그동안 애써 외면해온 우리 사회의 그늘진 이면에 한 발짝 다가가게 해준다.
“‘교도소’라는 단어를 책 제목에 쓴 이유는 교도소로 대표되는 교정시설이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우리의 일상과 격리된 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된 점과 관련이 있다. 여기에서 ‘교도소’는 우리 사회의 그늘진 부분, 빛이 닿지 않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교도소라는 말은 일종의 은유인 셈이다.”(8~9쪽)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범죄자란 낙인이 아닌,
안정된 의식주 제공과 끈기 있고 꾸준한 지지
출소를 코앞에 두고 극도의 불안과 흥분으로 발작을 보이는 소녀가 있었다. 어린 나이 때부터 유흥업소를 출입하며 온갖 비행을 일삼아 소년원에까지 왔지만, 소녀에게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 있었다. 오빠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가족으로부터의 학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소녀는 출소 후 집이 아닌 보호시설로 보내졌다. 하지만 마음이 충분하게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소년원을 나간 소녀는 결국 보호시설에서 도망쳤다…….
저자가 부임한 의료소년원에는 이처럼 가족에게 성적 학대를 받고 불안증에 시달리는 소녀도 있고, 아버지의 잦은 폭력으로 인해 자신도 또래 아이들에게 폭행을 가하다 소년원에 들어온 소년도 있었다. 각성제 남용 후유증으로 시설에 들어온 아이들도 많다. 불량 청소년들에 의해 억지로 환각물질을 들이마시고 억울하게 들어온 소년에서부터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고 일찍부터 각성제에 손을 댄 소녀까지 저자는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이들을 숱하게 목격해왔다. 하지만 경찰에 붙잡혀 이곳에 오는 아이들의 경우 ‘증상’보다 어쩌다 환각제에 손을 대게 되었는지 ‘사건’에 주로 초점이 맞춰지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솔직히 소년원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약을 끊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종종 좌절감이 들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역할은 분명 중요하지만, 부모와 가정의 문제만으로 청소년 비행과 범죄가 생기는 것도 물론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소년원 내 아이들의 많은 가족이 가난하고 갈등으로 가득 차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고립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저자는 이들에게 필요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복지적 배려와 꾸준한 지지”임을 강조한다.
“가족의 규모가 축소되면 대체로 그 기능도 축소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육아나 간병 등의 돌봄 기능이 축소 및 상실되고 있는 한 사회 즉, 복지나 의료가 그것을 보완하지 않으면 사회적 약자는 갈 곳이 없어진다. 그런데 최근 10~20년 사이에 강조되어 온 것은 개인과 가족의 ‘자기책임’이며, 사회복지나 공공의료 또한 기능이 저하되고 있는 듯하다. 가족 속에 있어도 자신이 있을 곳이 없고, 의료나 복지로부터도 ‘밀려난 사람들’이 교도소 같은 교정시설을 자신의 있을 곳으로 여긴다면, 그 누가 이 사회를 살기 좋고 풍요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80쪽)
교도소 내 고령화도 심각
‘교도소 밖’의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교도소’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의 남성이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던 아내를 살해한 죄로 수감되었다. 수년간의 간병 생활이 불러온 비극이다. 이 남성 역시 경증이기는 해도 치매를 앓고 있었다. 그러니까 치매를 앓는 아내를 보살피던 남편 역시 치매에 걸렸고, 이에 앞날을 비관하여 소위 ‘동반 자살’을 꾀했으나 자신만 살아남아 살인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이 노인은 자기 행위를 반성하기는커녕 자신이 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될 것이다. 과연 이 형벌이 의미가 있을까.
“노인 수감자 중에는 절도나 무전취식 같은 경범죄뿐만 아니라 살인, 살인미수, 상해치사 등 중대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평생을 범법행위와는 거리를 두고 살다가 나이 들어 처음으로 그런 중대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관심이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부분 가족을 상대로 한 범죄였고, 간병 끝에 벌어진 범죄였다.”(188쪽)
인구 감소로 인해 수감자의 수는 점점 줄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젊은 세대의 범죄율은 감소 추세다. 이에 관한 많은 분석이 있지만,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과거에는 폭주족이 되어 거리로 몰려나왔다면, 요즘은 대체로 집에만 틀어박혀”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는 견해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교도소가 교도소 밖의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고령 인구의 범죄율은 증가하고 있다. ‘경제적 빈곤’, ‘고령자의 사회적 고립’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가령, 해고로 일자리를 잃고 노숙자가 되어 도둑질을 일삼다 붙잡혀 들어온 사람, 아픈 배우자나 자식을 수십 년간 돌보다가 더는 여력이 없어 이들을 죽이고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람, 치매를 앓고 인지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까지……. 이들은 어떤 유무형의 도움과 지원이 없다면 평범한 일상이 어려운 우리 이웃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을 교도소에 수감하기보다는 복지제도나 의료제도를 개선하는 등 다른 방법을 모색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저자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우리 사회에 시급한 화두를 던진다.
“정신 치료의 근본은 아무리 비정상적일지라도,
아무리 불쾌할지라도 그 사람에 대해 인내하는 데 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다. 이 당연한 명제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갑자기 찾아온 정신질환으로 이성적 판단을 상실한 상태에서 타인에게 해를 가했다면, 어떤 벌을 받는 것이 맞을까. 적절한 의료적 지원이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력한 처벌만으로는 형벌의 목적인 교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본인이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병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명확히 인지하고 난 다음에야 진정한 반성과 처벌도 가능한 것은 아닐까? 이는 정신질환의 증상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뿐 아니라 의지나 계획에 의해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해당될 터이다.
범법자의 재범을 막고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서라도 치료감호는 필요하다. 물론 범죄로 고통받고 있을 피해자와 그 가족 중에는 이들에 대한 치료감호가 적절치 않은 처사로 비칠 수도 있다. 이에 저자는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피해자의 권리가 보호되는 것과 가해자에 대한 지원과 치료가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모순되고 대립되는 일은 아니다”라고.
사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른 확률은 일반인에 비해 낮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범죄율이 높다는 주장에 어떤 의학적 근거도 없다. 하지만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이 범죄의 가해자로 수감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이들에 대한 편견은 더욱 커지고, 정작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치료에서 더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회와 가족 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부양의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보호의무자는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에서, 범법자의 재범을 막고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서라도 정신질환 치료 및 관리 체계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