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앉아 훌훌 불며 서로 눈빛을 떠먹습니다”
한편의 시가 된 삶, 사람, 마을
시집을 펼치면 바닷가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목욕탕 구석 장판 깔린 간이침대가 일터”인 “날 때부터 굽은 등 숙여” 밥벌이하는 ‘화자씨’(「첫눈」), 살인 누명을 쓰고 “소년원부터 12년을 살다” 나온 뒤 “개명하고 항구 옮기며” 사는 ‘관수씨’(「누명」), “세상에 오는 일도 숩지는 않고 죽자고 살아내는 일도 만만찮지만 돌아가는 거는 참말로 디요” 한탄하면서도 병든 영감의 마지막 삶을 “우짜든동 내 손으로 치와드려야 도리지 싶아가 침 맞으러” 왔다는 할머니(「말년」), 이제 좀 “살 만한 시절”이 오는가 싶었는데 “부모 대신 업어 키운 동생 칼”에 맥없이 세상을 떠난 ‘만석씨’(「웃는 사람」), “죄라고는 오징어 잡아 살겠다꼬 배 탄 것뿐인데” 납북됐다가 돌아온 뒤 간첩으로 몰려 온갖 고초를 겪는 바람에 “씨뻘건 부아”가 일어 “이후로 내는 오징어 절대 안 먹니더”라는 어부(「오징어가 꼴도 보기 싫은 이유」)까지. 범속하고 다채로운 삶의 풍경이 눈앞에 또렷하게 펼쳐지며 구룡포의 매 순간이, 온갖 희로애락이 시의 형태로 보존된다.
이때 시인은 삶과 죽음,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두 세계를 매개하는 샤먼의 역할을 맡는다. 희미하고 낮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삶이 위태로운 존재들의 이야기를 시에 담아 “물고 뜯고 눈물 찍던 사연”(「서로」)의 “참 깊고 어두운 속내”(「간독」)를 풀어놓는 것이다. 개중에는 “가라앉는 삶을 떠받치며”(「물의 말」) 죽은 목숨 살려내는 말도 있고, 밥을 담보로 “죽어라 일만” 시키는 “거침없이 혹독한 말”(「평화라는 시장에서」)도 있다. “긴 사랑을 물고”서 “발긋하게 피는 말”(「해봉사 목백일홍」)에는 사랑의 온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시인은 “돌담 긋고 허물며 살아온 세월”(「문상」) 속에서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을 굿판을 벌이듯 하나하나 풀어놓다가 “무당보다 더한 팔자가 가엾어”(「징」) 눈물을 적시기도 한다.
시를 쓰는 일이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말”을 듣고 응답하는 일이라는 듯 시인은 바다를 배경으로 “물것으로 사는” 존재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위태롭게 살아온 날들”(「용왕밥」)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그리고 “목숨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것들이 목숨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채 산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것”(「살자고 하는 짓이」)이라고 선언한다. 생명 경시 풍조와 인간중심주의가 만연한 오늘날의 세태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존재의 죽음에 합당한 애도와 배웅의 태도를 보여야 함을, 그것이 마땅한 도리임을 말하는 것이다.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언제나 세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인은 오늘도 어김없이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말을 경청하며 어디선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거닐며 “살아래이/살 거래이”라고 삶을 북돋는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물의 말」)을 받아 적으면서 마을 골목골목에 걸려 있는 “고만고만한 살림”과 “고만고만한 사연들”(「문상」)을 소담한 시로 기록해나갈 것이다. ‘바닷가 부족이 달아준 입으로 노래’(시인의 말)하는 그의 시가 우리의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아 자맥질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