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왜 어떻게 김춘추를 불러냈는가
소설의 문학적 특성을 원용한 탁월한 선택
고대사 시기의 인물 김춘추를 현세로 불러온다면, 그것은 일종의 대체역사(Alternative History) 기법이라 할 수 있다. 복거일의 『비명(碑銘)을 찾아서』나 『역사 속의 나그네』 같은 소설이 이를 시현(示現)해 보였다. 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서로 소통하게 하는 데 있어 ‘춘추(春秋)’라는 이름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 여기서 답안의 성안(成案)을 위해 내세운 인물의 이름이면서 역사, 세월, 계절을 한꺼번에 뜻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를 불러내는 소규모 공동체 구성원 가운데 핵심은 이동천 변호사와 한통일 교수다. 이 변호사는 작가의 의도를 대변하는 인물이며, 한 교수는 김춘추 소환의 기능적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그 외의 다른 여러 인물도 모두 저마다의 기능을 맡고 있다. 이들은 ‘동북아 최적 슈퍼 멘토’가 김춘추라는 데 동의한 동역자들이다.
김춘추를 현실적인 생활권으로 초치하고, 오늘날 한반도가 처한 난감한 상황들을 자문하는 엄청난 일은, 그러나 사뭇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수순(手順)을 따라 진행된다. 우선 이 책략의 자문에 왜 김춘추가 적역(敵役)인가를 공유하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한통일 교수가 운용하고 있는 인공지능 수준의 컴퓨터 자료 활용의 영역이다. 그리고 심령술의 한 방식으로 보이는 영매(靈媒)의 작용을 도입하는 보완책의 동원이다. 이처럼 주도면밀한 구성의 모형을 설정했다면, 어느 누구도 소설의 외양을 가진 이 글에서 김춘추와의 접점에 이견(異見)을 내놓기 어렵다. 그런 만큼 이 글이 소설의 문학적 특성을 원용하고 있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역사적 교훈의 현실화와 지향점
‘21세기 새 한국 책략’을 찾아서
그런데 정작 우리에게, 우리 시대에, 보다 더 긴요한 사안은 이 글이 갖추고 있는 방법론이나 포맷(Format)이 아니라 그것이 담보하는 현실적 지형도 속에서의 지향점과 해결책이다. 여기에 수긍할 만한 강세가 없다면, 이 글이 선보인 기발한 외형의 양상이 별반 가치를 갖기 어렵다. 오늘날 한반도의 내부는 남북분단과 동서 지역감정의 끝 모를 갈등으로, 외부는 세계열강 및 패권국들과의 무한 경쟁으로 영일(寧日)이 없다. 이 모든 문제적 국면을 망라하여 김춘추의 견해를 구하는 바이니, 그야말로 ‘21세기 새 한국 책략’을 찾는 형편이다. 이 목표에 따라 등장인물이 구성되고, 공유하는 담론의 주제가 설정되며, 회담의 장소 또한 특화되어 있다.
김종회(한국디지털문인협회 회장) 문학평론가는 “이경재 변호사의 저술 『춘추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괄목상대하며 놀랐다”고 밝히며, “이 글이 부피가 큰 쟁점으로 함몰되지 않고, 우리가 피부로 감각하는 현실 정치의 구체적인 부면을 함께 탐색하는 것은 그야말로 큰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독자가 역사의 격랑에 떠밀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나’에게 부하된 문제로 인식하며 글을 읽어 나갈 수 있는 이유다. 그 현실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 사건별로 제기되는 것 또한 읽기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들이다. 궁극적으로는 남과 북의 통합을 넘어 진정한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의 향방이 이 저술 속에 잠복해 있는 터이니,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우리 사회가 온당한 경각심을 환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거기에다 글의 전제와 전개가 마치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를 보듯 재미있어서, 필자의 경우 이를 단숨에 독파할 수밖에 없었다.
- 김종회, 「독자를 위하여」 중에서
이처럼 이경재 변호사의 첫 장편소설 『춘추는 이렇게 말했다』는 하룻밤에 독파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의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광전세대의 삶을 살아온 이들의 삶과 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 소설이 대한민국의 미래와 통일 한반도 담론에 마르지 않는 샘이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