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딴 건 별것도 아냐. 너 낳고 키운 거에 비하면.”
몰인정한 세상에 살아남기 위한
모녀의 치열한 분투
‘나(주인공)’에게 가장 소중해서 두려운 존재는 바로 ‘엄마’이다.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엄마 손의 선명한 감각처럼 매번 깨닫는 것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여자 혼자 애를 키우는 거라는” 사실. 마치 자신의 모든 불행이 딸에게서 기인했다고 믿는 엄마로 인해, ‘나’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매일을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
엄마는 나를 묶었던 매듭이 절대 풀리지 않는 매듭이었음을 실토했다. (……)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어.”
엄마는 언제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겼다. 엄마가 다른 존재를 딱하게 여긴 적은, 내 기억으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딸인 나조차도 엄마 세계에서는 엄마를 불쌍하게 만든 가해자였다. (12쪽)
때론 ‘나’ 역시 뻔뻔하게 타인을 속이고, 아무렇지 않게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몰염치한 엄마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정당한 알리바이가 있다. 바로 살아남기 위해서, 냉혹한 세상에서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으므로.
“15년 전 실종된 친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모녀’라는 관계의 함정에 빠진
사라진 친구의 행방
늘 모범생을 연기하며 지내던 ‘나’는 엄마가 일하는 형제축산의 주인 남자의 딸인 ‘변민희’와 한 반이 되고, 도난당한 줄 알았던 미화부장의 빨간색 mymy를 돌려주기 위해 학교에 온 변민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실종된다. 학교를 채운 이상한 흥분과 열기로 걷잡을 수 없이 소문이 부풀려지고, 최종 목격자인 ‘나’는 그날의 진실을 일부러 왜곡함으로써 실종 사건을 미궁에 빠뜨린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후, 실종되었던 변민희가 죽은 채 발견되며 사건은 다시 수면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범인 찾기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모녀’의 심리적ㆍ정신적 결속은 사건의 진실을 감추기도 하고, 전혀 다른 형태로 변질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흥미진진한 변칙을 따라가다 결국 발견하게 되는 것은 ‘엄마’와 ‘딸’ 혹은 ‘가족’으로 엮인 관계의 다면적이고 복잡한 욕망의 민낯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어서 섬뜩한 모녀 서사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