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친구 관계를 거울처럼 비춰 주는 이야기
‘관계’를 이야기할 때 ‘완성’이라는 말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과 감정들은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번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언제나 좋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서로 감정이 상해 관계가 틀어졌다 해도 어긋난 상태를 되돌리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줄다리기를 예로 들어 보면 어떨까. 경기를 할 때 줄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곧은 모양을 유지하려면 양쪽의 힘이 균형 있게 유지되어야 한다. 줄을 떨어뜨리지 않는 게 경기의 목적은 아니겠지만, 힘의 균형이 유지될 때에 어느 한쪽도 불행하지 않고 각자 노력을 멈추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언제고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관계의 특성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반디네 모둠도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반디가 끌고 가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모둠원들의 생각이 항상 반디와 같을 수 없는 노릇이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반디와 친구들은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표현하는 법,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킬 때와 양보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친구가 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어느 한쪽만 노력해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친구를 위해 내 마음을 내어 주는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도 좋은 친구를 곁에 두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일을 예쁜 어린이들이 해내고 있다. 반하다송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여쁜 친구 관계를 만들어 갈 우리 독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 마음의 성장판이 닫히지 않게
키가 크면 보기에 좋고, 키는 자신감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서 부모들은 아이의 성장판이 빨리 닫히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쓴다. 성장에 좋은 음식, 일상생활의 자세, 잠자는 습관 등을 꾸준히 관리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 성품은 어느 정도 타고난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성품이야말로 좋은 영향을 받고 스스로 다듬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착한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져 줄 것 같지만 아니다. 그들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나쁜 마음을 먹기도 한다. 다만 자기 마음만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것이다. 그러니 일찍부터 자기 마음을 잘 가꾸고, 마음의 성장판이 닫히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겠다. 다행히 마음의 성장판은 일정 나이가 되었다고 해서 닫히지 않을뿐더러 자율성도 강하다. 어릴 때부터 가꾸고 관리할수록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반디와 친구들에게 모둠 발표회는 참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면 마음이 성장할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 한창 걸 그룹 댄스에 재미가 들려 있었고, 그걸로 친구들 앞에서 뽐내고 싶은데 한 사람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되었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겠는가. 그 아이가 모둠에서 ‘빠졌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정말로 모둠에서 빼 버릴 방법을 모색한 것까지 응원할 순 없어도 친구의 진심을 읽은 뒤 그 마음을 헤아리려고 애쓴 것은 아이들 스스로 마음을 가꾸는 노력이라고 보였다. 또 반디의 경우, 학급 회장 선거에서 떨어졌던 속상함을 모둠 리더가 됨으로써 풀어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일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자 힘들어하고 고집도 부려 보았다. 결국 친구들과 갈등을 겪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 의견을 맞추고 조율해 가는 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어른들도 다르지 않다. 이 동화를 읽으면서 아이를 통해 배운다는 말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느꼈다. 동화의 매력 중 하나다.
◎ 반죽을 버무리듯 어휘를 주무르는 글솜씨, 감성을 확장하는 심플한 이미지
이 이야기의 소재는 뭐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문장의 표현이 화려하지도, 애써 꾸민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묘하게 집중하게 되었다. 그것이 글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글이 가진 힘은 또 하나가 있다. 반죽을 버무리듯, 말놀이하듯 ‘빠지다’라는 어휘를 아주 잘 활용한 것이다. 참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무언가에 정신이 쏠려 헤어나지 못하다는 뜻으로도 쓰였다. 모둠 이름을 정할 때 송이의 ‘송’ 자가 삐걱거리는 느낌을 표현한 것도 참 적절한 복선이 아니었나 싶다. 한편 이 책의 일러스트는 표현이 제법 심플하다. 색은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 다양함을 담아냈다.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면서 독자의 감성이 담길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준 셈이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저절로 ‘빠지다’의 또 다른 뜻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책의 모양새가 번듯하게 빠졌나 싶고, 다른 책에 비해 뒤떨어지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하는 걱정도 언뜻 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지 않을까 다시금 자신해 본다. 작가들의 힘을 믿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