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창립 10주년이 되는 경희대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는 한국과 북방유라시아의 여러 지역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세미나, 콜로키움, 논문 발표뿐 아니라 단행본의 출판으로 개별 주제에 대한 여러 연구를 함께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모두 6권이 출판되었는데, 가장 최근에는 2022년 12월에 출판된 [고조선의 네트워크와 그 주변사회]가 있다. 이 책은 논문집으로 고조선을 영토와 국경논쟁에 매몰되어 있는 기존의 논의를 벗어나서 네트워크와 교류의 관점에서 고조선을 한국사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더 나아가 중앙아시아의 중심인 카자흐스탄과 한국의 역사적인 교류에 대한 여러 글을 모았다.
이번에 출판하는 [카자흐스탄과 한국, 5천년의 파노라마]는 고조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중앙아시아의 중심인 카자흐스탄과 한국의 역사적인 교류에 대한 여러 글을 모았다. 우리에게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들의 역사가 유라시아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서 아는 것은 많지 않다. 카자흐스탄은 면적으로 세계에서 9번째인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다. 동쪽으로는 중국, 러시아, 몽골 등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카스피해와 접하는데, 동유럽에 속하는 우크라이나와 불과 470㎞가 떨어졌을 정도로 유럽과도 이어진다. 카자흐스탄이 단순히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유라시아 초원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그들의 역사·지리적 환경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유라시아 고고학과 역사에서 카자흐스탄이 지닌 가치는 다양한 공동조사로 이어졌다. 지난 2014년부터 다양한 전시회, 공동 발굴 및 유물조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종합적인 연구보다는 전시회의 도록, 개별 발굴 조사 등에 치우친 감이 있다. 이에 경희대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는 2023년 5월에 국립문화재연구원, 카자흐스탄 고고학연구소 등과 공동으로 알마티에서 [한국 카자흐스탄 5천년의 파노라마]라는 심포지움을 개최했다. 우리에게 카자흐스탄은 멀어 보이지만 사실 유라시아 중심에서 고대 청동기문화의 도입에서 20세기 고려인의 이주까지 지속적으로 문화적인 관계를 맺어왔다(시기별 교류상은 권두에 실린 제 논문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고고학 자료를 통하여 두 지역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상대 지역의 고고학과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자료가 가지는 맥락, 나아가서 유라시아 고고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단편적인 유적조사와 유물의 분석만으로는 그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멀어서 교류할 리가 없다’든가 ‘한국 고고학에서 굳이 필요한가’라는 관점은 해당 지역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견해일 뿐이다. 가까운 중국의 경우 활발하게 일대일로를 내세우며 주변 지역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 교류 관계는 전통적으로 실크로드의 관계에서 중시된 중국과 로마의 관계(물론, 그 실질적인 교류상에는 많은 이견이 있습니다만)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아프리카 대륙과의 교류도 밝히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빠르게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원거리 지역 간의 교류와 세계사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연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국이 지난 25년간 해온 해외조사는 이러한 세계고고학적 흐름에 발맞추어서 매우 시의적절했다. 하지만 언어 및 자료 접근의 한계로 그 연구에는 많은 장애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이번 단행본에서는 각 주제에 대한 여러 연구자들의 논고를 모으고 카자흐스탄으로 대표되는 중앙아시아 초원지대가 가진 의의, 그리고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 논해본 것이다.
이 책에는 모두 6편의 논문이 수록되었다. 각 논고는 시대순으로 배치가 되어 있다. 전체 책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고고학으로 본 한국-카자흐스탄 5천년의 교류”에서 강인욱은 한국 고고학/역사학계에서 카자흐스탄과의 관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시대별로 살펴보았다. 김재윤의 논고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매우 생소한 주제인 중앙아시아의 신석기문화를 다루었다. 카자흐스탄은 물론 중국 신강성과 몽골도 함께 다루어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청동기시대로 접어들어서 이후석은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만주·한반도로 청동기의 확산과 변용”에서 기원전 2천년기 세이마-투르비노의 청동기를 비파형동검문화의 기원과 관련하여 중요한 담론을 제기한다. 그동안 가설적으로 또는 정황적으로만 논의되었던 한국과 만주 일대 비파형동검문화의 청동기 기원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바, 한국의 고고학계에도 많은 시사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강인욱은 “카자흐스탄 사카 쿠르간의 발달과 동서문명의 교류”에서 기원전 4세기를 전후하여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일어난 동서문명의 교류상을 황금과 칠기 등 여러 유물로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기원전 4세기는 매우 흥미로운 시대로, 한반도에는 고조선에서 시작된 세형동검문화가 널리 확산되고 중국 북방에서는 전국시대~진나라로 이어지며 유목세력이 재편되며 흉노가 등장한다. 이런 문화적 변동이 카자흐스탄의 사카문화로까지 이어짐을 지적했다. 역사시대에는 모두 2편의 논문이 준비되었다. 먼저 양시은은 “신라 마립간시기 대외 문물교류와 그 의미”에서 신라에 보이는 수많은 북방계 유물을 구체적으로 고구려를 거쳐서 유입되었다는 대담한 가설을 차분하며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마립간이라는 새로운 헤게모니의 등장을 막연하게 ‘북방설’과 ‘자생설’이 아닌 신라와 그 주변세계의 조응을 구체화해서 보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많은 관련 토론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이주연은 “19세기 세계지리서 『해국도지』 속의 중앙아시아 인식”에서 21세기 중국 실크로드의 인식이 형성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논점을 제시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는 소련의 성립이후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하는 슬라브인들이 주도하여 만든 국경이다. 19세기의 경우 소위 ‘그레이트 게임’으로 대표되는 영국과 제정러시아의 분쟁만 알려졌을 뿐, 정작 신강을 개발하고 이 지역과 국경을 이룬 청나라의 인식을 제대로 보여주는 연구는 거의 없다. 위원의 [해국도지]에는 청나라 시기 러시아가 아니라 영국을 경계하던 청나라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그들의 인식은 20세기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최근 중국의 일대일로와도 연결되는 중요
한 시사점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