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母心의 모심’ 속에 깃든 지령地靈의 노래
“해나무팅이라는 곳은 다 헐 수 웂는 말 빈 마당 휘돌먼 천장 내려온 먹구렝이 문지방 넘어 대숲 아래 똬리 틀고 있다는 거다”
시인은 삶에서 발굴한 목소리들을 통해 시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번 시집은 그중에서도 특히 어머니(엄니)의 목소리를 조명하는데, “나름으로 깊은 수심정기의 세월 끝에 얻은 ‘엄니’라는 방언으로 유비되는 모심母心”을 투영한 시편들이 주목할 만하다.「해나무팅이」에서 “새벽밥 준비허던 엄니 / 투거리 들고 장 뜨러 나왔다 / 아덜아 오짠일여 언능 들어가자 / 아니다아니다 정짓간 들어가 / 주먹밥 쥐어주며 잽히먼 안 된다 / 엄니는 암시랑토 않응게 호따고니 넘어가그라 / 지푸재 새앙바위 뜬 그믐달인 거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엄니’의 생생한 목소리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어머니는 모종의 이유로 고향 집 ‘해나무팅이’를 몰래 들어선 아들과 갑작스럽게 마주치지만, 이내 “아니다아니다” 하며 아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또 아들이 엄니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해나무팅이를 떠나오는 광경에 화자는 “숨죽이고 핀 꽃들 펀던 달려나갔겠는가”라고 말한다. “숨죽이고 핀 꽃들”은 아들이 무사히 귀환하기를 바라는 엄니의 “간절한 기운”을 표현하는데, 이 표현은 “시인의 시심 속의 지령이 조화의 기운과 접함을 통해 드러난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한 삶을 버텨낸 토착민들의 수난과 그 속에 자리한 깊은 어머니의 마음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시의 이야기라면, 도저한 진실은 고향 집에 서린 모심母心은 시인의 마음속 지령으로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시가 그릴 수 있는 해학의 지점
서정과 능청스러운 입담의 절묘함
“해나무팅이 삼얕 집 아줌니 어디 가시나 궂은 날 탱자나무 걸린 비닐봉지 걷어 쓰고 소쿠리는 끼고 개울물 토닥토닥 어딜 그렇게 고요히 가시나”
토속적인 것에 대한 그립고 정겨운 심상이란 현대인에게 희미해져 가는 가치 중 하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시가 다할 수 있는 의무를 지니고 가치를 지켜내는 시인은 그만의 고유한 언어로 어떤 경계도 없이 표준어주의 속에 번지고 스며들어 우리에게 잊고 있던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시인은 삶의 자리를 관찰하고 표현해내는 특유의 시선과 입말로 시가 그릴 수 있는 해학의 고유 지점에 다다랐다고 말할 수 있다. 충청 지방 토착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어도 자연스레 읽히는 시어들은 정겨움과 각기 자리한 ‘모어’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오는 동시에 기분 좋은 웃음을 만들어준다.
“벙거지 쓴 아이들 몰려와
지그린 문 두드린다
이것은 빠꾸 손자
조것은 개터래기 손녀
요것이 여울네 두지런가
베름빡 달라붙어 봄바람 타고
손 내밀어 문고리 잡아당기고
성황당 자리 맴돌다 솟아오른다
요놈들
요놈들
마당 한 바퀴 돌아
흩날린다”
시인은 “땅개”, “개터래기”, “삐깽이”, “똥지개이” 등을 소환해 “‘판’ 벌였다”고 말하는데, 「봄눈」에서 이 같은 ‘동무’들의 손자, 손녀 등이 등장한다. 자손을 이루고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서로를 ‘빠꾸’, ‘개터래기’ 등으로 부르는 화자와 동무들의 모습에서 다정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가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