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서를 읽으며 단단해지는 뿌리!
우리 정서를 흔히들 ‘한(限)’이라고 하지만, 우리 고유의 정서는 어떤 고난과 역경도 웃음으로 풀고 희망으로 삼는 ‘신명’입니다. 이 신명이 녹아 있는 우리 춤과 노래, 이야기는 격동의 역사와 함께 다양하게 발전했고, 지금의 콘텐츠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K-POP, K-콘텐츠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의 뿌리가 바로 우리 이야기, 민담입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 민담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텔레비전을 시작으로 2010년대에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OTT와 SNS 등 여러 오락거리가 늘어났고, 간단한 터치와 클릭만으로도 전 세계의 온갖 콘텐츠를 화면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민담은 듣는 이도 전하는 이도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하나 되는 시대인 만큼, ‘나’를 알고 방향을 잃지 않고 세계와 어울리는 것이, 이를 위해 우리 민담을 읽는 것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황석영 작가는 강조합니다. 민담을 읽는 것은 민초들이 쌓아 온 우리 역사와 문화, 정서를 읽으며 뿌리를 다지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황석영 작가는 어린이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민담이 미래로 전해질 수 있도록 우리 민담 복원에 나섰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지?”라는 어린이들의 궁금증에 답하는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 1. 우리 신화의 시작』을 첫 권으로 내세워,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이라는 긴 여정을 출발했습니다.
시대의 거장이 어린이들에게 남기는 선물!
황석영 작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형된 민담의 원래 이야기를 20여 년간 수집했습니다. 『한국 구비문학 대계』를 비롯하여 『한국 구전 설화』, 『대동야승』 등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관점으로 기록된 민담집들을 꼼꼼하게 탐색했습니다. 같은 내용이지만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을 찾아 비교하는 작업도 거쳤습니다.
이렇게 수집한 많은 민담 가운데, 우리의 뿌리를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 우리 고유의 ‘신명’이 잘 드러나는 이야기, 어린이나 동물이 등장하는 신비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고르고 골랐습니다. 아이휴먼이 펴내는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은 거장 황석영이 오랜 기간 수집하고 엄선한 이야기를 황석영의 시선과 문장으로 재탄생시킨 책입니다.
80세의 노작가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우리나라를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이자 머지않아 지구의 주역이 될 어린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 바로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희망
우리 민담 속 세상에는 사람뿐 아니라 다양하고 신비로운 존재들이 함께 어우러져 삽니다. 신선과 선녀부터 인간 세상이 아닌 곳에서 인간처럼 살아가는 존재도 있고, 특별한 재주로 사람을 골리거나 돕는 도깨비나 신령한 힘이 깃들어 있는 식물과 동물들도 등장하지요. 반면 사람을 해치고 괴롭히는 무시무시한 존재도 있습니다. 사람과 가축을 잡아먹는 호랑이 같은 맹수, 지하 세계 마왕이 된 이무기, 몇백 년 묵은 지네나 구렁이 같은 괴물도 나옵니다.
우리 민담에 등장하는 요물 중에 단골 캐릭터를 꼽아 보자면 단연 꼬리 아홉 달린 여우, 구미호라는 존재일 겁니다. 구미호는 신묘한 힘으로 사람들을 홀린다고도 하고, 여우구슬로 신통력을 부린다고도 해요.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의 간 백 개를 먹는다거나, 사람 남편에게 100일 동안 정체를 들키지 않으면 여우에서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모든 이야기의 공통점은 구미호가 사람과 동물의 간을 즐겨 먹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구미호에 관한 민담은 무시무시한 내용이 많아요.
그 가운데 여우의 혼에 씐 누이동생에게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은 장남의 이야기, 「여우 누이」가 대표적입니다. 누군가가 어미 여우와 새끼 여우를 해쳤고, 사람에게 새끼를 잃은 어미가 원한을 품고 사람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한 거예요. 옛날 사람들은 말 못 하는 풀과 짐승이라도 함부로 해치면 아파하며 분노한다고 믿었어요. 반대로 도와주면 감사함을 느낀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동물을 괴롭히면 그 원한이 돌아와 죗값을 치르고, 구해 준 동물이 은혜를 갚는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여우 누이」를 비롯한 우리 민담의 주인공들은 신통력을 가지고 요술을 부리는 살벌한 구미호와 요물 앞에서도 포기하는 대신, 대항하고 물리칠 방법을 찾아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보다는 저항과 극복을 시도하며 희망을 잃지 않은 조상들의 삶의 태도가 드러난 것이지요.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 17. 여우 누이』에서는 여우의 원한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장남이 신비한 힘을 가진 아내의 도움으로 구미호를 물리치고 행복한 삶을 완성하는 이야기를 통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은 우리 조상들의 용기를 느낄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