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평범함의 이야기
노년기 여성의 서사를 담아낸 읽을거리는 꽤 많았다. 극한의 삶을 이겨낸 인간극장식의 주인공이거나 ‘원래 잘나가던 여성’이 ‘계속 잘나가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 틈에서 이도 저도 아닌 보통의 생을 살아온 노년기 여성, 옆집과 크게 다를 바 없이 고만고만한 생을 살아온 여성의 이야기는 묻히거나 잊히거나 조용히 사라졌다. 그 어디에서도 ‘애매한’(이라고 쓰고 평범하다고 읽자) 노년기 여성의 이야기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시민사회의 주인공은 보통 여성들이었다. 누군가의 ‘엄마’이자 ‘집사람’이나 ‘안사람’, 혹은 ‘아줌마’나 ‘이모’ ‘할매’로 불렸던 대다수 여성은 유사 이래 늘 위기에 처할수록 빛나던 ‘주체’였다. 만세운동, 민주화운동, IMF 외환위기 등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마다 “최전선에 있던 전사들”은 바로 노인의 문턱에 막 들어섰거나 이미 노인이 된 여성들이다.
답답한 사람이 나서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들 여성(이제는 노년의 문턱에 들어선)이 무료로 제공했던 가사노동과 저임금 노동을 양분 삼아 발전했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의 노고에 정당한 대가를 치른 적이 없다. 대가는커녕 “가정의 평화와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라며 다시 돌봄노동을 떠안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대다수 여성 노인은 자기보다 더 나이 든 할매·할배를 돌보거나 아들딸의 아이를 돌봐야 한다. 노동의 강도로 치면 언제나 최고치를 찍는데도 사회는 이들을 그림자처럼 취급했다. 그만큼 조용히 살게 했으면, 누군가의 바람대로 인내하며 살아주었으면 나라꼴이라도 바르게 세웠어야 하거늘, 이게 대체 어쩐 일인가? 할매당 창당 선언사에 나오는 말처럼 “정치는 이전투구, 경제는 깜깜절벽, 사회는 혼란가중, 가정은 붕괴직전” 아닌가? 그래서 전국 방방곡곡의 할매들이 일어섰다. 유쾌하고 신나게 모처럼 “나”를 만나고, 강 건너 산 넘어 할매들과 연대하여 “우리”를 이야기하려고 말이다.
함께 놀고 함께 먹으면 더 단단해진다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필자는 모두 다섯 분이다. 서울 지부 권오자 씨, 경북 지부 서현숙 씨, 충남 계룡지부 손지영 씨, 경남 하동지부 홍마리 씨, 경기 고양지부 홍영미 씨이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뼈 빠지게 일했지만, 한 푼도 자기를 위해 써보지 못했던 권오자 님, 남편과 자식 둘에 손주 다섯, 고양이 세 마리까지 도합 열한 명의 목숨을 책임졌으나 지금은 손주 얼굴조차 마음대로 보기 힘든 손지영 님, 쌀을 뺀 거의 모든 먹을거리를 손수 농사지으며 밤낮으로 학자 남편을 내조한 서현숙 님, 지구를 떠도는 노마드 인생을 살다가 지리산 언저리에 정착한 홍마리 님, 고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사회복지사로 은퇴한 홍영미 님. 다섯 여성의 글은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낸다. 범접하기 어려운 유머 감각, 읽다 보면 절로 눈물을 닦게 만드는 솔직담백함……. 하지만 그들의 ‘고생 서사’에는 사랑과 인류애의 몫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