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인문학적 사유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대담한 기획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정희진 추천!
■ 우리 시대는 도금시대와 1차 세계대전 직후와 비슷
저자 미치코 가쿠타니는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경제 혼란, 사회 불안, 높은 물가, 양극화와 불평등의 문제가 19세기 말 미국의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도금시대’(鍍金時代)와 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분석한다.
도금시대 미국은 산업화에 성공하지만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자본주의의 폐해가 이미 나타나고 있었고, 반이민 열풍과 함께 흑인 권리의 후퇴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로부터 백여 년도 더 지난 21세기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 성소수자 권리의 후퇴, 아시아인 혐오 범죄의 횡행, ‘흑인 목숨이 소중하다’ 시위 발생 등은 도금시대의 사회적 문제가 그대로 재연되었음을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곤란은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 등 극단주의자들이 번성하는 토대가 되었는데, 백 년 후 미국에서는 극우주의 및 음모론 집단이 여론 형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전후(戰後) 유럽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극우 정치 집단이 유럽의 주류 정치로 진입해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미치코 가쿠타니는 한나 아렌트가 밝힌 전체주의의 특성을 인용하는바, 아렌트에 따르면 “사회적 원자화가 길을 잃고 외로운 개인을 폭력적 민족주의와 권위주의 운동에 대단히 취약하게 만든다.” 약 70년 전 한나 아렌트의 통찰은 오늘날 소셜미디어의 필터버블에 갇힌 현대인의 ‘부족 정체성’과 ‘확증 편향’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오늘날 격심하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혼란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왜 독재자가 하는 거짓말의 희생양이 되는지 설명해준다.”
■ 위기는 근본적 변화가 가능한 시간이기도 해
한편 위기가 새로운 시대의 전환을 예비하는 경우도 있었다. 1918년 스페인독감을 겪고 난 이후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확대되었고, 보건부처가 신설되었으며, 전염병에 대한 국제 협력이 비로소 합의되었다. 14세기 중반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감소했는데, 이 참혹한 전염병이 공중 보건의 탄생과 노동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기술 혁신을 낳았다. 흑사병이라는 전염병 위기가 중세 유럽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근대’라는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는 모멘텀이 된 것이다.
■ 프랑켄슈타인인가, 혁신을 주도하고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공유ㆍ전파하는 기술인가
디지털 기술은 정보 과부하, 소셜미디어의 필터버블, 인터넷 밈, 선정주의 등 여론 형성에 유해한 요소를 지닌, 현대 사회의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미치코 가쿠타니는 우려한다.
21세기의 많은 투쟁이 ‘지도자가 없다’는 특성을 공유한다. 디지털 기술에 의해 운동이 전파되고 공유된 것이다. 우리 시대 투쟁의 특징은 바로 뚜렷한 ‘지도자’나 ‘중심’이 없다는 것이다. 변방의 새로운 목소리가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서 기존 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통로를 연 데는 디지털 기술의 기여가 있었다. 그렇기에 위기의 국면에서 회복력을 키우는 데 “미디어 활용 능력”과 “미디어 및 역사 문해력를 갖춘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 변방의 아웃사이더가 틀 밖에서 새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위기 탈출의 동력을 제공, ‘탈중심화’ ‘수평적 구조’ ‘상향식 체계’도 중요 전략
미치코 가쿠타니는 변방의 아웃사이더들이 주류의 관성화된 틀 밖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위기를 뚫고 나갈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현재 미국의 문학계와 문화ㆍ예술계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목소리는 이민자, 여성, 소수 인종 등 ‘비주류’로부터 나오고 있음을 보여주며 ‘변방의 아웃사이더’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위기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전략으로 ‘탈중심화’와 ‘수평적 구조’, ‘상향식 체계’를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