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저명한 작가이자 사상가 그리고 무엇보다 당대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간 투사였다. 그의 저작은 소설 작품부터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담은 잡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그 중에서도 놓칠 수 없는 것은 그가 중국 최초의 소설사를 쓰고 이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 중국 고대소설 작품들을 수집 정리했다는 사실이다. 곧 만년의 투사 이미지가 강한 루쉰의 시작점은 성실한 고대소설 연구자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의 경우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것은 루쉰에 대한 연구가 주로 현대문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기에 고대소설 분야는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고, 또 고대소설 연구자들의 경우는 자신들의 연구 영역에 매몰되어 있었기에 루쉰에게까지 오지랖을 넓힐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루쉰의 고대소설 연구에 대한 분야는 묘하게 공백 상태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내가 루쉰의 고대소설 연구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중국소설사 분야의 기념비적인 저작 『중국소설사략』을 번역한 데 있었다. 약 5년여에 걸친 시간을 들여 번역한 『중국소설사략』의 출간은 나의 개인적인 학문 역정에서도 하나의 분기점을 이룬 일대 사건이었다. 『중국소설사략』을 번역하면서 중국소설사 전반을 조망할 수 있었고,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면서 중국 고대소설 작품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중국소설사략』의 번역을 하나의 출발점 삼아 루쉰이 이루어놓은 고대소설 분야의 연구 성과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게 된 것은 애초에는 생각지 못한 망외의 소득이라 한 수 있다.
그렇게 바늘 한 땀 한 땀 놓아가듯 루쉰의 중국 고대소설 분야에 대한 성과를 검토해 나간 게 바로 이 책에 실린 각각의 논문들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별개의 논문으로 시차를 두고 발표되었지만, 사실 이것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하나의 주제는 루쉰의 중국 고대소설 연구에 대한 개괄적인 검토이다. 이 말은 이 글들이 안고 있는 한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곧 국내에서는 이 분야에 대한 논의가 이제 첫걸음을 뗀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시작이 있는 법이니 여기서 제기된 문제들을 출발점 삼아 향후 좀 더 심도 있는 논의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발표된 시점을 포함한 구체적인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루쉰의 중국소설사학에 대한 비판적 검토」, 『중국소설론총』 제6집. 서울: 한국중국소설학회. 1997년 3월 31일
「루쉰의 중국 고대소설 연구 1-『고소설구침』과 『당송전기집』, 『소설구문초』를 중심으로」, 『중국소설론총』 제52집, 서울: 한국중국소설학회. 2017년 8월 31일
「루쉰의 중국 고대소설 연구 2-단편 논문들을 중심으로」, 『중국소설론총』 제58집, 서울: 한국중국소설학회. 2019년 8월 31일
「루쉰의 중국 고대소설 연구 3-일본 학자 마스다 와타루增田涉와의 학문적 교류」, 『중국소설론총』 제61집, 서울: 한국중국소설학회. 2020년 8월 31일
「루쉰의 중국 고대소설 연구 4-일본 학자 시오노야 온鹽谷溫과의 학문적 교류」, 『중국소설론총』 제64집, 서울: 한국중국소설학회. 2021년 8월 31일
「루쉰의 중국 고대소설 연구 5-『중국소설사략』 표절 논쟁을 중심으로」, 『중국소설론총』 제67집, 서울: 한국중국소설학회. 2022년 8월 31일
「루쉰의 중국 고대소설 연구 6-시오노야 온의 『중국문학개론강화』와 루쉰의 『중국소설사략』 비교」, 『중국소설론총』제70집, 서울: 한국중국소설학회. 2023년 8월 31일
이상의 논문들은 이 책에 수록하면서 제목을 모두 바꾸었다. 그것은 ‘루쉰의 중국 고대소설 연구’라는 제목이 불필요하게 중복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 뿐만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중복되는 것을 제거하고 편집상 문제가 되는 것들과 오류들도 모두 바로잡았다. 이 모든 것들이 각각의 글들을 시차를 두어가며 별개의 논문으로 발표하다 보니 일어난 문제들인데, 이번 기회에 이런 잘못들을 바로잡은 것이다.
아울러 이렇게 논문들을 발표하는 사이 연구의 주요 대상인 마스다 와타루의 저서와 시오노야 온의 저작에 대한 번역도 진행하여 모두 세 권의 번역서가 나왔다는 사실도 특기한다. 곧 마스다 와타루가 직접 상하이에 가서 루쉰으로부터 『중국소설사략』을 강독하던 과정을 술회한 『루쉰의 인상』(청아출판사, 2022년)을 필두로 시오노야 온의 『중국문학개론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