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를 마음을 빼앗는 공감의 언어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마음에 대하여
무언가를 관찰하는 화자들의 시선은 마음을 뺏는다. 둘러앉은 이들 사이에서 혼자 몰래 빠져나가 조용히 흐느끼는 사람의 뒷모습이 신경 쓰여 “내가 다 잘못했어요/말하고 싶어”(「수」)하는 모습이나, 편의점 옆 테이블에서 컵라면을 먹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이 신경 쓰이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빈 박카스 병을 이리저리 굴”(「24시」)리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순식간에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감정이 이입된다. 물론 저마다의 방식으로. ‘왜 그때 다정한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을까.’ ‘왜 그때 무심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을까.’ ‘왜 주변을 향해 화를 내지 않았을까.’ 과거의 어떤 장면을 향한 ‘왜’가 연달아 떠오른다. 그것은 『수옥』이 그만큼 공감의 언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수옥』의 화자는 무언가를 바라보기만 하지는 않는다. 움직이고, 생각하고, 또 반성한다. “‘삶은 여행’이라는 말,/‘여행’이 꼭 ‘미행’ 같아 지금껏 몰래 누군가의 뒤를 밟아온 것만 같아/그래서일까/이토록 죄지은 기분”(「서해」) 같은 구절을 읽다보면 ‘살아 있다’는 의미를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정서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삶의 상실이 주는 슬픔이 지나간 이후, 삶이라는 것이 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인식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선임 소설가가 “소란 속에서 침묵을 지키다 돌아올 때, 병원 복도에 홀로 앉아 호명되기를 기다릴 때, 봉분 앞에 바래버린 조화를 새것으로 바꿔놓을 때, 알 수 없는 허기에 식당을 찾아 어두운 골먹을 헤맬 때, 미래라는 것이 너무 어렵고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면 시인의 시집을 꺼낸다”(추천사)고 쓴 것도 이러한 정서와 맞닿는다.
시인은 “내 시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물 수(水)에 구슬 옥(玉)을 써야지 생각했다./아주 오래전부터”라고 「시인의 말」에 썼다. 그만큼 이번 시집은 시인의 한 시기를 매듭짓는 동시에 박소란 시의 정수를 보여주는 한권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바닥을 어루만지며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위로를 건네던 시인은, 이제 자신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을 좀더 따뜻하게 보듬기 시작했다. 그 따뜻함이 물처럼 구슬처럼 흐르고 또 머무른다.
“바닥의 표정은 어둡습니다. 고단합니다. 어쩌면 정말 위험하겠지요. 미끄러질 수도, 크게 다칠 수도 있겠지요. 철철 피를 쏟게도 되겠지요. 그래도 가끔은 이 어두운 물기가 삶의 신호 같다고 느낍니다. 살아 있음의 적나라한 신호.”(산문, 「병과 같이」 부분)